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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파스칼 메르시어, 두행숙 옮김, 『레아』, 상상공방 동양북스, 2008.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눈빛은 묘하게도 청록색이다. 물론 그녀의 이름은 레아일 것이다. 표지에 그려있는 그림을 본 것이니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떠오른 이미지는 표지 그림과는 상이했다. 좀 더 가녀린 외모에 섬세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검고 긴 머리카락에 하얗고 긴 목을 가진 모습, 내가 떠올린 눈동자의 색깔은 당연하다는 듯이 검정색이었지만, 뭐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광기가 어른거리는, 집중과 집착, 천재와 광기 사이의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모습을 표지그림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별다른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보다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그만큼 시각적인 요소가 상당히 신선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아버지(반 블레이트)의 고뇌가 간접적이나마 느껴지고, 잘 알지도 못하는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E장조는 상상조차 안되곤 하지만, 레아의 연주하는 모습, 중얼거리는 모습 등등은 아주 생생하게 보이는 듯 했다. 신선한 작품이다.
딸아이에게 헌신하는 아버지는 정말 레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중반 이후부터 나오는 ‘과르네리 델 제수’라는 바이올린을 구해주는 과정은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 인지를 단면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생각했어요. 맙소사, 이 남자는 딸을 위해 모든 걸 다 했구나, 정말이지 모든 것을.”(327쪽)이라는 반 블레이트에 대한 음악사 직원의 평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레아의 행복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저지르고, 헌신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행복해지지 않으니까 즉, 레아가 더이상 연주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중에 후회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아와 음악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허탈감을 느껴온 그로서는 레아와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 선택의 폭이 좁았을 것이다. 자기파괴적 성향을 보이는 레아를 보는 반 블레이트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했다고 보지만, 결국 그는 죄책감과 허무함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도, 레아도 행복해지지 않는 결말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의아하게도 묘한 공감대를 느낄 수가 있었다.
* 내 마음대로 밑줄 긋기
- 연주가 끝났다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의 태도에는 무한한 감동이 담겨 있었어요. (34쪽)
- 고통을 무시하며 걷는 아이의 걸음은,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결정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걸 분명히 말하고 있었어요. (41쪽)
- 차라리 연습할래요. (80쪽)
- 그때 내 마음속 무언가가 그 사실을 인지하기를 거부했음이 틀림없다. (128쪽)
- 균열 없는 내면을 체험하는 것, 그건 우리가 수은처럼 유연하게 변화하는 기술로 모든 균열들을 즉시 수정해 제거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런 기술은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더욱 완벽해집니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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