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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시크릿, 그림자 인간 - 세계 1%만이 알고 있는 어둠의 실력자들
손관승 지음 / 해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손관승, 『탑 시크릿, 그림자 인간』, 해냄, 2008.
마르쿠스 볼프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냉전의 시대에 필요악으로 존재했던 스파이의 세계를 그린 작품인데, 생동감 넘치고 긴장감 있는 스파이 소설을 떠올렸던 나로서는 적잖은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르쿠스 볼프의 생애를 구구절절이 묘사하기 보다는 냉전 시절 동독의 해외정보 수집 기관인 HVA의 수장으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 나름대로의 흥미 요소가 있었지만 기대가 깨져서 그런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스파이의 세계는 참 신기하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여러 요인 중 포섭 대상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궁극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바 -정보를 얻어내는 것- 를 성취해내는 미묘한 세계이다. 특히 볼프는 요즘 첨단화된 전자기기를 사용한 도청, 감청 등 보다는 인간이 직접 그 도구가 되는 휴민트 방법을 잘 사용했다. 이는 전자정보 보다는 인간정보가 보다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 그의 스파이 철학이 반영된 정책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여러 방법 -이데올로기, 자존심, 돈, 이성, 술 등- 중 표적 대상에게 무엇이 가장 효율적으로 통할지 파악하는 능력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절하지 않도록 부하 직원들을 인간관적 관계로 관리하는 등의 모습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보기관장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비밀과 악수해야 했던 숙명을 지닌 ‘얼굴없는 사나이’, 마르쿠스 볼프는 이렇게 말했다. “정보 기관의 책임자가 되어서 겪어야 하는 비극 중 하나는 당신이 아무리 정직해도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97쪽) 책을 읽는 기간중에 미국 드라마 ‘24’를 보며 슈퍼 스파이-로미오-를 떠올렸고, 괜히 내 주위 사람들을 한번 의심해보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중요한 인물을 아니라 아무런 문제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자가 서두에 언급한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도 찾아 보았다.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고 평생 타인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것이 타인에게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하는 주인공의 삶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남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기쁨도 잠시, 이를 지켜내야 하는 또 하나의 비밀을 안게됨으로써 그의 생애는 엄청난 스크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물건을 사는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 자존감의 저하 등 심리적인 갈등 속에서도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삶을 보며 스파이라는 직업이 매체를 통해 본 것처럼 마냥 화려하고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해보이는 그림자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 다소 역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약간이나마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으니 유용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 내 마음대로 밑줄 긋기.
-“정보 기관의 책임자가 되어서 겪어야 하는 비극 중 하나는 당신이 아무리 정직해도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