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거침없는 것 같으면서도 정갈하게 계산된 듯한 시인 함민복 씨의 언어가 참 좋다. 시집 <말랑말랑한 힘>에서도 유연하게 풀어놓은 시들이 힘있게 와닿는다. 길, 그림자, 죄, 뻘... 이렇게 총 네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색깔과 향기가 뚜렷하다. 추상적인 "길"이 아닌, 우리가 늘 다니고 있는 그 길 위에서 쓴 듯한 시는 참으로 현실적이다. 지금껏 내 분신처럼 따라다녔지만 한번도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없었던 내 "그림자"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경건해야 할 단어임에도 어느덧 무디어져 있는 "죄"에 대해 칼날 선 죄의식을 심어준다. 말랑말랑한 "뻘" 위에서 짭쪼름한 바다내음 맡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만큼 시의 말랑말랑한 향기를 확실히 전해준다. 그의 작품을 모조리 다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마음이 분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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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시 구절들>

소낙비 쏟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수직을 경험해 보셨으니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르실 수 있는 게지요
-시 <물> 중에서-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듯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시 <그림자> 중에서-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칼날처럼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시 <죄> 중에서-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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