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그걸 통해서 지금 내가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혹시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접근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들 혹은 그 상황을 단지 ‘특이한’ 것으로 치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저는 앞선 반응을 하는 것은 ‘환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동성부부’ 혹은 ‘혼외아동’ 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를 보았습니다. 도대체 ‘정상적 가정’이라는 것이 뭐기에 그것이 깨지는 것을 이리도 두려워 하는 걸까요?
대한민국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위 이야기 하는 ‘국민’이라는 사람들에게만 어떠한 권리가 주어집니다. 물론 그 ‘국민’도 어떤 혜택을 받으려면 - 예를 들어 장애인 판정이나 부양의 도움 - 내가 그 도움을 받을만큼 내 가족이 충분히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면서, 그들은 이웃이 아니라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 존재 가치가 낮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를 기본으로 구성되는데, 그 아버지, 어머니는 반드시 남성, 그리고 여성이어야 합니다. 성별이 이미 정해진 이 가족이라는 각본에서 아버지가 여성이 되든지, 어머니가 남성이 되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말입니다.
저는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 출산율 저하를 대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6까지 낮아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낮은 출산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이가 태어나서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출산율이 낮으면 나중에 보험금 부담이나, 연금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출산율을 늘여야 한다는 논리는 철저하게 지금의 기성세대들의 이기심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럼 아이들은 이런 의료보험이나 연금부담을 지기 위해서 태어나야 하는 거냐는 질문이 가슴에 남습니다. 저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일갈합니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엄하게 여기지 못하고 도구로 취급하는 사회에 기꺼이 태어날 아이가 있을까. 자신이 어떤 삶의 제비를 뽑을지 모르는 불평등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먹는 일이 쉬울까. 어쩌면 지금의 낮은 출생률은,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존엄하고 평등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아이들의 절박한 집단행동일지도 모른다. (p.64~65)
대한민국은 각 개인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과연 관심이 있는 것일까. 를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데, 부양의 의무나 혹시나 발생하게 될 상황은 오로지 가족이 떠맡아야 됩니다. 도대체 ‘국가’란 무얼 하는 곳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