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소강석 지음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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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하는 나의 유년의 뜰엔

항상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술만 드시면 포악해지는 아버지

어머니를 향한 무서운 호통 소리가

어린 가슴을 조여들게 하였지만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었지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별 아양을 다 떨어도

내심으론 아버지를 증오하였습니다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밤새 아버지 옆에서 거친 손을 잡고 잠들어야 했던

어리고 슬픈 소년

그러다가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녘

소년의 몸이 불덩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등에 업고

눈길을 단숨에 달려

이웃 마을의 간이 약방에 도착해서야

아들을 내려놓고 급한 숨을 몰아 쉬셨지요

소년은 지금 그 아버지의 나이를 지내면서

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허리가 휘도록 키우고

애끓는 심정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어도

부부싸움을 하면 언제나 엄마 편이 되어버리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야

아버지 편이 되어 봅니다

오늘도 나의 눈앞에는

아버지께서 함박눈을 맞은 모습으로

말없이 서 계십니다


꽃씨

​

언제부턴가

꽃씨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뜨락에 꽃씨를 심습니다

세상 가득 향기로 덮고 싶기에

​

이젠 꽃을 꺾어

선물하지 않으렵니다

그보다

꽃씨를 나누어주고

그 마음에 뿌려주기로 했습니다

​

더딜지라도

코끝에 물씬 풍기는 향기 없을지라도

한 아름 안겨주는 화사함 덜할지라도

오늘도 꽃씨를 뿌립니다

마음의 밭을 일구어

열심히 꽃씨를 뿌립니다

​

그날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

향내 가득하고

이 세상 꽃들로 가득하게 될 때를

기다리며

​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이 꽃씨들을 천국에 가져가렵니다.


바람의 언어

​

오늘 밤

바람의 소리는 들어왔지만

바람의 첫 언어를 듣습니다

네 인생도 이젠 가을 산을 닮았노라고

​

아직 가을이 문턱에 서 있는데

벌써 산속에선 단풍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바람의 언어에 동글동글 여문

밤알들이 톡톡 떨어지고 있습니다

​

머지않아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질 가랑잎들은

떨어진 밤알들을 덮어 줄 것이며

또 다시 바람의 언어는 꿈을 꾸는 밤알들에게만

내년 봄 밤나무의 새싹으로 태동하게 할 것입니다

​

나는 오늘 밤에야 바람의 언어를 들었습니다

떨어지는 밤알과 바람에 굴러가는 마른 잎새를

모두가 나의 삶입니다

​

겨울이 오면 나는 다시 바람의 언어를 듣겠습니다

삶과 죽음이 악수하는 계절에

다시 바람의 새 언어를 듣고

저 산 너머 새로운 영토에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겠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시 세 개를 꼽자면 <눈 내리는 날의 아버지>, <꽃씨>, <바람의 언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에는 내 아버지가 겹쳐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술 마시고 포악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다혈질인 아버지가 무서워 기분을 맞춰주곤 했었고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감정표현이 서툴러 내가 다쳤을 때 화를 냈던 아버지가 그땐 그리도 미웠는데 지금은 마음이 많이 아픈 걸 표현하지 못해 그랬다는 걸 안다. 또 자라고 보니 아버지의 사랑이 가까이에 있었음을 안다. 나는 엄마지만, 아이들이 엄마 편을 들 때 내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도 조금 짐작이 간다. 소강석 목사도 함박눈이 내리던 날 자신을 업고 약방으로 뛰어가는 아버지의 등 위에서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느꼈으리라. 그랬기에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있으리라.

​

<꽃씨>를 읽다 보면 소강석 목사가 어떤 나라를 이루고 싶은지 엿볼 수 있었다. 시에 대한 해석은 모르지만 혼자서만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기적인 세상이 아니라 예쁜 꽃은 잠시 미뤄두고 꽃씨를 열심히 심어 모두들 그 꽃을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

<바람의 언어> 아이들은 바람이 말을 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의 기준에선 바람은 바람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성인이 되어서 가만히 앉아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무시하여 자연에게 벌을 받기도 한다. 겨울은 죽음을 연상하지만 그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강석 목사는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과 함께 한 삶 그 뒤에 시온 성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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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여파로 성인이 되어 시를 접할 때도 종종 '숨은 의미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든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과 친해지라고 하지 않는다. 시는 다른 사람의 세상에 빠져들기에 좋은 수단이다. 미사여구도 많지 않고 부연 설명도 없지만 빠져들게 하는 매력. 이 책을 통해 소강석 목사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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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지 않는 연습
조호준 지음 / 자화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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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롤러코스터 같다. 언제든 다시 높이고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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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반성이 없으니 발전도 없을뿐더러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니 자존감 또한 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존감이 오르지 않는다면 혹시 나처럼 남 탓의 늪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발밑을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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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그 무엇도 의지하지 않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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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미워 죽겠는데 그런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니. 순서가 잘못됐다.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미워하는 일부터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예전의 나처럼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최소한 자신을 미워하지는 마세요, 모두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요."(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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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주행 현상을 보며 힘을 얻는다. 하다 보면 언젠가 내 차례가 온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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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쌓기 위한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를 분석해주고 속 시원하게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은 자존감을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쌓게 해주기 위한 작가의 경험담을 실어놓았다. 작가는 올해 서른이 되었다고 한다. 별거 없이 지나간 20대를 뒤로하고 서른이 되었는데 나이 숫자 앞에 3자가 들어서니 기분이 이상하더랜다. 내 나이가 서른 줄에 들어섰을 때도 나이가 확 많아진 느낌에 앞으로의 인생이 훨씬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한 느낌을 가졌던 게 기억이 났다. 서른 이후의 삶은 피부의 활기는 점점 잃어가고 키는 줄어들 일만 남았으며 기억력은 떨어진다. 아이를 낳았다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이동해버리는 신기함을 겪어보기도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중 가장 쉽고 효과가 좋은 것이 타인의 칭찬, 인정을 받는 것인데 평생 들을 칭찬을 어릴 적에 다 받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 성인이라는 말이 실패와의 동의어가 돼버린 것과 같은 세상에서 자존감을 높이기란 쉽지 않을 테다. 저자는 사업 실패로 돈에 쪼들려도 보고 갑자기 나빠진 피부 때문에 집 안에만 웅크려있던 시절도 있었다. 실패는 하지 않을수록 좋지만 그는 실패를 통해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회복 가능할 정도의 실패를 겪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다른 성공한 사례들을 보고 부러워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기 전에 역주행 현상을 보며 언젠가 내 차례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고 있자. 저자는 심리학자도, 의사도 아니다. 서른 해를 살은 남자의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자존감에 대한 에세이다. '다들 비슷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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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플리즈
장유리 지음 / 프로젝트A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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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고 GS건설에서 근무하다 일에 지쳐 퇴근 후 집에서 베이킹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 지금은 디저트 개발과 컨설팅 일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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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그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 그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기는 일. 그 에너지가 무더운 여름에도 더 뜨거운 오븐 앞에 서 있게 하고 매일매일 부엌을 쓸고 닦는 힘이 된다.(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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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많이들 꿈꾸는 일을 작가가 해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완벽하게, 아니 마음에 들 때까지 끈기 있게 연습했구나. 남들 레시피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타인의 인정까지 받았다. '구황작물 시리즈'를 애정 한다는 작가. 읽으면서 '어! 나도 흑임자, 인절미, 팥 들어있는 거 좋아하는데...!' 했다.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디저트들이 다 내 스타일이었다. 할매 입맛 떡순이 취향이라는 작가, 취향대로 가게를 오픈하면 대박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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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디저트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재료다. 맛을 내는 것도 물론 설탕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머랭이나 크림을 만드는 데 적당한 텍스처를 부여하기도 하고, 촉촉함을 높여 좋은 식감을 만들어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디저트를 만들고 나서 먹는 사람의 앞에 도착할 때까지 디저트가 맛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고 적절한 색과 향을 부여해 다양한 감각으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완성품의 종합적인 맛과 설탕의 다른 기능들의 밸런스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을 때 설탕이 필요한 만큼 알맞게 들어갔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적당함의 정도'에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정답은 없다. 나의 취향을 찾아가면 된다. 그게 만드는 쪽이든 먹는 쪽이든.(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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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만큼의 서로의 시간과 생각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것. 이제는 핸드폰으로 나누는 안부와 인사가 더 많아진 세상에서 무릎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시간은 더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밥집을 고르는 일보다 카페를 고르는 일에 더 신중해지고 밥 한 끼 가격을 훌쩍 넘는 디저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 아닐까.(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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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포인트는 의외로 아주 작은 것이다. 디저트를 만드는 과정의 작은 차이와 세심한 배려는 고스란히 그 결과로 나타난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낸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선명하고 그래서 포크를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나만의 것. 그런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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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마카롱이 확 유행이었다가 이젠 구움과자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자주 갔던 가게에서 구움과자만 내놓는 통에 발길을 끊었는데. 그 이유는 크기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쌀디저트라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한 입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하나 만들기 위한 노동값이었다. 작가도 빵과 케이크를 포기할 수 없어 '노버터'와 '노밀가루'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 밀가루'라고. 쌀디저트를 찾게 된 이유가 모유수유때문이었지만 빵순이 엄마를 둔 덕분에 우리 아들들도 빵돌이라 여건이 된다면 쌀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어 책까지 사두었는데 칼로리와 맛은 비례한다고 한다. 디저트 이름을 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어 모양만 보고 고르기 일쑤였는데 디저트 이름에 대한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초콜릿 쿠키나 브라우니, 그리고 가나슈가 실수에서 탄생한 거라니 역시 실수를 겪어야 새로운 것이 탄생하나보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디저트만 봤을 때는 이 디저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왜 프랜차이즈 디저트 가게에서는 특이한(?) 디저트 종류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만들기 엄청나게 손이 가고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는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면 그만큼의 지불을 할 용의가 있다. 그러지 못한 곳이 많아서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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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많아 직접 베이킹을 해서 먹이겠다는 마음으로 디저트 관련 책만 수두룩 사놓았는데 이 책을 보니 쉽게 덤벼들 게 아니구나 싶다. 좋아해야 잘 할 수 있을 텐데 먹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재미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가 가게를 연다면 꼭 한 번 가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 '구황작물 시리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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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가정 - 하나님과 동행하는
러셀 무어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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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누구도 이 폭풍에서 예외일 수 없다

폭풍에 시달리는 가정에게 유일하고 안전한 항구는 십자가의 상처를 가진 가정이다(21p)

우리 가족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많은 부분은, 그것이 불편한 감정의 대립이 되었건 가족 간의 비밀인 매우 실질적인 트라우마가 되었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이유는 미국 문화와 다른 많은 문화에서 종종 가족이란 의미가 자신의 성취를 전시하는 장이기 때문이다.(25p)

가족은 영적 전쟁이다.(29p)

가족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38p)

가족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가족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 가족은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왜냐하면 가족은 말이나 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싸우도록 우리를 작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45p)

그러나 가족은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이기도 하다.(56p)

많은 교회 안에서 가족이란 개념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점이 되거나 사람들이 맨 처음 교회를 탐색하게 되는 유인책이 된다.(85p)

이단을 분별할 때 첫 번째 핵심은 그들이 사람들을 가족과 분리시키느냐는 것이다. 부모자녀 간의 접촉을 끊게 한다면 해로운 무리로 의심된다.(89p)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 가족의 복리를 더 잘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 자유를 얻게 되어 가족을 어느 때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가족에 대해 움켜잡고 숨 막히게 하던 것을 놓게 되면, 그것이 현재의 가족에 대한 기대이든, 오래전 가족에 대한 향수든, 가족 안의 상처에 대한 흔적이든, 미래의 가족에 대한 걱정이든, 자유로운 가족이 되어, 교회 가족이라는 새 피조물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가족은 축복이다. 그러나 가족이 최우선이 아닐 때 축복이 된다.(95p)

- 가족이 최우선이 아닐 때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축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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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가정의 가치, 십자가로 재해석하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독신은 기본이다.(122p)

여자가 돕는 배필인 것은 남자보다 밑에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가 단독으로는 맡은 사명을 수행하지 못해서이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나온 다른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는 것이다.(128~129p)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를 '진짜 남자'와 진짜 여자'로 만드시는 데 있다기보다 우리를 자아에서 끌어내어 서로를 향해, 십자가를 향해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135p)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로 새로운 범주의 복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수많은 범주에 대한 복종을 폐했다.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만일 일반적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남편에게 복종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복종하려면 최소한 다른 하나에 복종하기를 거절해야 한다.(……) 성경은 여자들에게 '남자'혹은'남자친구' 혹은 '연인'이 남자이므로 복종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는 남편과 연합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요구들을 거절한다.(137p)

우리는 성경의 머리됨이라는 용어를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로 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기희생의 짐을 누가 우선적으로 지느냐 하는 문제이다.(142p)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긴 인생 동안 함께 사랑하고 사랑받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짝을 선택할 때 지혜로운 방법은 신혼여행 때 함께 기뻐하는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의 침상을 지키는 상대방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169p)

나는 그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 삶은 우리가 함께하는 삶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결혼을 '한 몸'의 연합, 머리와 몸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분리된 삶이 각자의 계획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연합해 한 삶을 이루는 것이다.(173p)

친밀함은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것과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178p)

성적 연합은 두 사람이 각각 구별되는 개인으로 남으면서도 즐거운 신비 속에서 하나로 합해지는 복음의 실체를 생생히 보여 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적 연합은 지속적으로 영적 전쟁의 장이 된다.(189p)

배우자가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으로 더 자유롭게 행동하게 된다.(194p)

불륜은 오르가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향수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213p)

성적 연합은 결혼생활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데, 어떠한 잠재적 경쟁자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단순한 신체적 밀착을 뛰어넘는 일종의 친밀감 쪽으로 두 사람을 뜰어들이기 때문이다.(215p)

하나님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이 일종의 폭력 행위라고 말씀하신다.(250p)

이혼할 정당한 사유는 전혀 없으며 이혼한 사람은 계속 독신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으로 최초의 결혼이 진정한 결혼이 아니었다고 교회로부터 인정되어 무효화되지 않는 이상,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은 영구적인 간통 상태에 있다고 가르쳤다.(252!253p)

결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종교라고 생각된다. 진정한 결혼의 정의는 무엇이며 폭력, 간음 같은 특수한 경우의 이혼은 인정해주고 다른 경우는 인정을 안해준다고 하니 그렇다면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혹시나 이혼을 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됨이고 재혼을 하면 영구적인 간통 상태로 회개받지 못한다. 혼전순결이나 이혼 같은 문제를 봤을 때 기독교는 요즘 세대와는 좀 맞지 않는 너무 보수적인 성향으로 비쳐진다. 결혼 연령이 늦어진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진정한 결혼임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다들 결혼할 때는 진정한 사랑, 이 한 사람과의 평생을 상상하고 결혼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커플마다 다르니까. 이혼 가정의 남겨지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알겠지만 교회가 곧 가족이라는 말처럼 그 아이들을 교회에서 정서적으로 보듬어줄수는 없는 것일까.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말이 무조건 참고 살으라는 말로 생각되는 건 내 심보가 꼬여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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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기에는 우리가 자녀를 갖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가 자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두 경우 모두 나는 틀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다각도로 나를 깨뜨리시고 재구성하였다. 만일 임신을 피했던 것처럼 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나쁜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271p)

아무리 많은 책과 기사를 읽어도, 아무리 경건한 모범을 따르더라도, 모든 부모는 결국 무력함과 절망의 지점에 이를 것이다.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로서 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290p)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게 될 시간들이, 그것이 언제 무엇이건 간에, 갖가지 고난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직접 함께할 것이라고 미리 말해 주셨다.(마 28:20)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고난이 없는 삶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가끔 절실한 신자들에게 어쩜 저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 같으면 무너질 법한 일들도 그들은 신앙으로 극복해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의 고난이 이미 예견되어 있으며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짐이 더 이상 예전만큼 많이 누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노력과 성취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97p)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축복이면서 짐도 된다. 사실 아이들은 짐이라서 축복이고, 축복이라서 짐이다. 짐은 축복이다. (308p)

임신했을 때 다운증후군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정상 아이로 출산했다. 누군가 말했다. "총알을 피한 기분이겠어요."그러나 이 부부는 다운증후군은 아니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가 선물이라는 것과 그들의 계획이 틀렸다는 것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아이는 주말 아침을 방해했지만 삶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우리의 계획이 뒤엎어질 거라는 걸 깨닫는 것, 아이를 대할 때 중요하게 느껴진다.

훈육은 곧 제자 훈련이다. 함께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그들의 미래에 필요할 애정이나 직관,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세대를 훈련시킨다.(318p)

자녀를 훈육하려면 우리 자신을 먼저 훈육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양육을 받아야 한다.

양육과 훈육은 그런 것이다. 최종 목표는 아이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행동이 올바른 사람이 지옥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재 가장 힘 있는 사람 앞에 굴복하는 법을 배운다면, 이 시대에 강해 보이는 마귀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회개 없이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절망하거나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할 것이다.(3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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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에 붙들리지 말라

부모가 복음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인 것이 모두 헛수고였다는 의미는 아니다.(363p)

나 또한 방황의 길을 걸을 때 어릴 적 교회 설교 말씀과 찬송가가 나의 양심을 계속해서 건드렸기 때문에 적정선은 지켰다고 생각한다. 모태신앙에 대해 말이 많다. 아이는 종교를 선택할 수 없는데 부모가 강제로 종교를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힘든 시기에 새벽 기도로 나와 동생을 길러내셨고 어릴 적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어릴 때는 잘 모르면서도 어쨌든 나가서 열심히 찬송 부르고 말씀 구절 외우고 그랬다. 그러다 세상에 눈이 뜨이면서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폭풍의 시기를 지났다. 그때도 더 나쁜 짓을 할 수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반항하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진짜 비극은 부모가 그들 때문에 받는 상처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그들을 부끄러워하는 데 있다. 만약 '착한'아이들이 단순히 테크닉의 결과였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의를 자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368p)

사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지시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 전혀 아니고, 성인들이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감사의 정서적 표현이라기보다(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 물질에 대한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401p)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듯이 폭풍에 시달리고 있지 않다. 다른 것을 멈추고 주목한다면, 당신을 붙잡은 그 손에서 못 자국을 볼 것이다. 두려워 말라. 상처는 남겠지만 폭풍은 지나갔다.(4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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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페이지로 결코 책이 가볍지 않다. 폭풍 속의 가정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늘 폭풍 속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살고 있으며 한 발자국이라도 잘 못 뻗는 날엔 폭풍이 휘몰아친다. 우리의 가정을 성령 안에서 어떻게 잘 이끌고 갈 것인지 알려준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가 평온해 보이는 가정에도 작은 문제라도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 가족만 힘이 든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모든 가정은 폭풍 속에 있으며 우리는 늘 그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족이 잘 되면 나의 자랑이 되는 것처럼 가족은 내게 수치심을 줄 수도 있다. 가족은 내가 싫다고 가족이 아닐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빚어내야 할지 하나님이 바라보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족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게 우리는 너무 집착하는 면이 있다. 가족이 등 돌리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든지 그러하지 않는가, 집착을 좀 내려놓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족문제에도 여김 없이 그렇게 드러난다. 우리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길 것이다. 가족끼리의 상처에서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잘 지내게 된다. (물론 안 그런 가정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비록 우리 마음속의 상처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폭풍은 지나갔다. 예수님 손에 못 자국은 남아 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책을 읽는 동안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함을 느꼈고 또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 되기도 또는 이단이 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를 나가고 싶어도 내 마음을 울리는 설교 말씀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많은 교회들이 사업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쨌든 교회는 힘들도 지칠 때 힘이 되어주는 존재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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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터지는 언어놀이 - 2~5세 내 아이를 위한 두뇌발달 놀이법 ㅣ 말문이 터지는 언어놀이
김지호 지음 / 길벗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기다리면 말을 한다고 하는데 말이 전혀 늘지 않는 아이를 키운다면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말문이 터지지 않는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부모는 조급하겠지만 놀이를 통해 아이의 말문을 트이게 해줄 수 있다. 거창할 줄 알았으나 일상생활에서 부모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것들이 많아 접근하기 쉬웠다. 공감과 경청, 그리고 본 보이기가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되겠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본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공감과 경청을 받아 본 적 있는 아이가 공감과 경청을 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고 올바른 말을 듣고 자란 아이가 올바른 말을 하는 어른으로 클 테니 말이다. 아이는 자라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할 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버벅거리고, 했던 말 또 하고, 틀리게 말하고, 그럴 때 당장 고쳐주지 말고 일단 끝까지 들어주라고 한다. 다 듣고 나서 가르치기 보다 올바른 말로 다시 한 번 말해주는 거다. 그때 아이들은 다 배운다. 질문을 유도하여 대화를 확장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 책은 5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언어 발달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시를 들어 나와 있다. 2,3,4부는 어휘력을 기르는 놀이, 표현력을 이끌어내는 놀이를 소개, 5부에는 말을 배울 수 있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의 반 이상이 어휘력과 표현력을 이끌어내는 49가지 놀이를 소개한다. 매우 단순하고 쉽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이라 나의 무관심함 때문에 아이들이 언어 발달을 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미안했다. 말 많은 부모 아래 말 많은 아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혼자 하면 빠르단 이유로 아이들을 집안일에서 배제시켜 아이들의 언어 확장을 막았다. 말문이 터지게 하는 방법은 힘들지 않다. 일상생활을 언어발달에 유용한 놀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아이의 말이 트이길 바란다면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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