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의 가정 - 하나님과 동행하는
러셀 무어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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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누구도 이 폭풍에서 예외일 수 없다

폭풍에 시달리는 가정에게 유일하고 안전한 항구는 십자가의 상처를 가진 가정이다(21p)

우리 가족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많은 부분은, 그것이 불편한 감정의 대립이 되었건 가족 간의 비밀인 매우 실질적인 트라우마가 되었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이유는 미국 문화와 다른 많은 문화에서 종종 가족이란 의미가 자신의 성취를 전시하는 장이기 때문이다.(25p)

가족은 영적 전쟁이다.(29p)

가족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38p)

가족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가족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 가족은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왜냐하면 가족은 말이나 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싸우도록 우리를 작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45p)

그러나 가족은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이기도 하다.(56p)

많은 교회 안에서 가족이란 개념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점이 되거나 사람들이 맨 처음 교회를 탐색하게 되는 유인책이 된다.(85p)

이단을 분별할 때 첫 번째 핵심은 그들이 사람들을 가족과 분리시키느냐는 것이다. 부모자녀 간의 접촉을 끊게 한다면 해로운 무리로 의심된다.(89p)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 가족의 복리를 더 잘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 자유를 얻게 되어 가족을 어느 때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가족에 대해 움켜잡고 숨 막히게 하던 것을 놓게 되면, 그것이 현재의 가족에 대한 기대이든, 오래전 가족에 대한 향수든, 가족 안의 상처에 대한 흔적이든, 미래의 가족에 대한 걱정이든, 자유로운 가족이 되어, 교회 가족이라는 새 피조물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가족은 축복이다. 그러나 가족이 최우선이 아닐 때 축복이 된다.(95p)

- 가족이 최우선이 아닐 때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축복이 될 수 있다

part 2 가정의 가치, 십자가로 재해석하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독신은 기본이다.(122p)

여자가 돕는 배필인 것은 남자보다 밑에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가 단독으로는 맡은 사명을 수행하지 못해서이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나온 다른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는 것이다.(128~129p)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를 '진짜 남자'와 진짜 여자'로 만드시는 데 있다기보다 우리를 자아에서 끌어내어 서로를 향해, 십자가를 향해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135p)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로 새로운 범주의 복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수많은 범주에 대한 복종을 폐했다.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만일 일반적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남편에게 복종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복종하려면 최소한 다른 하나에 복종하기를 거절해야 한다.(……) 성경은 여자들에게 '남자'혹은'남자친구' 혹은 '연인'이 남자이므로 복종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는 남편과 연합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요구들을 거절한다.(137p)

우리는 성경의 머리됨이라는 용어를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로 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기희생의 짐을 누가 우선적으로 지느냐 하는 문제이다.(142p)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긴 인생 동안 함께 사랑하고 사랑받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짝을 선택할 때 지혜로운 방법은 신혼여행 때 함께 기뻐하는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의 침상을 지키는 상대방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169p)

나는 그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 삶은 우리가 함께하는 삶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결혼을 '한 몸'의 연합, 머리와 몸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분리된 삶이 각자의 계획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연합해 한 삶을 이루는 것이다.(173p)

친밀함은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것과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178p)

성적 연합은 두 사람이 각각 구별되는 개인으로 남으면서도 즐거운 신비 속에서 하나로 합해지는 복음의 실체를 생생히 보여 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적 연합은 지속적으로 영적 전쟁의 장이 된다.(189p)

배우자가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으로 더 자유롭게 행동하게 된다.(194p)

불륜은 오르가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향수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213p)

성적 연합은 결혼생활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데, 어떠한 잠재적 경쟁자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단순한 신체적 밀착을 뛰어넘는 일종의 친밀감 쪽으로 두 사람을 뜰어들이기 때문이다.(215p)

하나님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이 일종의 폭력 행위라고 말씀하신다.(250p)

이혼할 정당한 사유는 전혀 없으며 이혼한 사람은 계속 독신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으로 최초의 결혼이 진정한 결혼이 아니었다고 교회로부터 인정되어 무효화되지 않는 이상,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은 영구적인 간통 상태에 있다고 가르쳤다.(252!253p)

결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종교라고 생각된다. 진정한 결혼의 정의는 무엇이며 폭력, 간음 같은 특수한 경우의 이혼은 인정해주고 다른 경우는 인정을 안해준다고 하니 그렇다면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혹시나 이혼을 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됨이고 재혼을 하면 영구적인 간통 상태로 회개받지 못한다. 혼전순결이나 이혼 같은 문제를 봤을 때 기독교는 요즘 세대와는 좀 맞지 않는 너무 보수적인 성향으로 비쳐진다. 결혼 연령이 늦어진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진정한 결혼임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다들 결혼할 때는 진정한 사랑, 이 한 사람과의 평생을 상상하고 결혼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커플마다 다르니까. 이혼 가정의 남겨지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알겠지만 교회가 곧 가족이라는 말처럼 그 아이들을 교회에서 정서적으로 보듬어줄수는 없는 것일까.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말이 무조건 참고 살으라는 말로 생각되는 건 내 심보가 꼬여서일까

결혼 초기에는 우리가 자녀를 갖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가 자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두 경우 모두 나는 틀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다각도로 나를 깨뜨리시고 재구성하였다. 만일 임신을 피했던 것처럼 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나쁜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271p)

아무리 많은 책과 기사를 읽어도, 아무리 경건한 모범을 따르더라도, 모든 부모는 결국 무력함과 절망의 지점에 이를 것이다.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로서 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290p)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게 될 시간들이, 그것이 언제 무엇이건 간에, 갖가지 고난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직접 함께할 것이라고 미리 말해 주셨다.(마 28:20)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고난이 없는 삶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가끔 절실한 신자들에게 어쩜 저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 같으면 무너질 법한 일들도 그들은 신앙으로 극복해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의 고난이 이미 예견되어 있으며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짐이 더 이상 예전만큼 많이 누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노력과 성취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97p)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축복이면서 짐도 된다. 사실 아이들은 짐이라서 축복이고, 축복이라서 짐이다. 짐은 축복이다. (308p)

임신했을 때 다운증후군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정상 아이로 출산했다. 누군가 말했다. "총알을 피한 기분이겠어요."그러나 이 부부는 다운증후군은 아니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가 선물이라는 것과 그들의 계획이 틀렸다는 것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아이는 주말 아침을 방해했지만 삶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우리의 계획이 뒤엎어질 거라는 걸 깨닫는 것, 아이를 대할 때 중요하게 느껴진다.

훈육은 곧 제자 훈련이다. 함께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고, 그들의 미래에 필요할 애정이나 직관,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세대를 훈련시킨다.(318p)

자녀를 훈육하려면 우리 자신을 먼저 훈육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양육을 받아야 한다.

양육과 훈육은 그런 것이다. 최종 목표는 아이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행동이 올바른 사람이 지옥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재 가장 힘 있는 사람 앞에 굴복하는 법을 배운다면, 이 시대에 강해 보이는 마귀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회개 없이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절망하거나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할 것이다.(346p)

Part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에 붙들리지 말라

부모가 복음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인 것이 모두 헛수고였다는 의미는 아니다.(363p)

나 또한 방황의 길을 걸을 때 어릴 적 교회 설교 말씀과 찬송가가 나의 양심을 계속해서 건드렸기 때문에 적정선은 지켰다고 생각한다. 모태신앙에 대해 말이 많다. 아이는 종교를 선택할 수 없는데 부모가 강제로 종교를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힘든 시기에 새벽 기도로 나와 동생을 길러내셨고 어릴 적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어릴 때는 잘 모르면서도 어쨌든 나가서 열심히 찬송 부르고 말씀 구절 외우고 그랬다. 그러다 세상에 눈이 뜨이면서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폭풍의 시기를 지났다. 그때도 더 나쁜 짓을 할 수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반항하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진짜 비극은 부모가 그들 때문에 받는 상처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그들을 부끄러워하는 데 있다. 만약 '착한'아이들이 단순히 테크닉의 결과였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의를 자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368p)

사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지시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 전혀 아니고, 성인들이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감사의 정서적 표현이라기보다(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 물질에 대한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401p)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듯이 폭풍에 시달리고 있지 않다. 다른 것을 멈추고 주목한다면, 당신을 붙잡은 그 손에서 못 자국을 볼 것이다. 두려워 말라. 상처는 남겠지만 폭풍은 지나갔다.(427p)

430페이지로 결코 책이 가볍지 않다. 폭풍 속의 가정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늘 폭풍 속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살고 있으며 한 발자국이라도 잘 못 뻗는 날엔 폭풍이 휘몰아친다. 우리의 가정을 성령 안에서 어떻게 잘 이끌고 갈 것인지 알려준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가 평온해 보이는 가정에도 작은 문제라도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 가족만 힘이 든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모든 가정은 폭풍 속에 있으며 우리는 늘 그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족이 잘 되면 나의 자랑이 되는 것처럼 가족은 내게 수치심을 줄 수도 있다. 가족은 내가 싫다고 가족이 아닐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빚어내야 할지 하나님이 바라보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족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게 우리는 너무 집착하는 면이 있다. 가족이 등 돌리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든지 그러하지 않는가, 집착을 좀 내려놓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족문제에도 여김 없이 그렇게 드러난다. 우리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길 것이다. 가족끼리의 상처에서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잘 지내게 된다. (물론 안 그런 가정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비록 우리 마음속의 상처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폭풍은 지나갔다. 예수님 손에 못 자국은 남아 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책을 읽는 동안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함을 느꼈고 또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 되기도 또는 이단이 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를 나가고 싶어도 내 마음을 울리는 설교 말씀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많은 교회들이 사업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쨌든 교회는 힘들도 지칠 때 힘이 되어주는 존재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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