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그릿 - 청소년을 위한 꿈과 자신감의 비결
매슈 사이드 지음, 토비 트라이엄프 그림, 장혜진 옮김 / 다산에듀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년하고도 3개월 전에 엔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읽었다.

http://hyemi2353.blog.me/221200261354

<그릿>과 <10대를 위한 그릿>의 다른 점은 목표가 청소년에 맞추어져 있고 재미있게 스토리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성인도 <10대를 위한 그릿>만 읽어도 그릿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전문적으로 접근해보고 싶다면 <그릿>을 읽는 걸 추천한다.

그릿은 끝까지 노력하는 끈기, 추지, 집념, 열정을 말한다.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재능 타고나는 것이니 노력을 하지 않는다. 성장형 사고방식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먼저 고정형 사고방식을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속 부정적인 언어를 지우기 위해 종이에 자신이 느끼는 바를 써 보고 어떻게 성장형 사고방식의 언어로 바꿀 것인지 적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넘사벽이라고 느끼기에 그들의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재능과 주변 환경이 빼어나서 성공한 것이라 결론 내린다. 우리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으니 꿈꾸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인데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되고자 했던 사람으로 말이다. 거창한 목표를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끝까지 해내는 것을 목표로 해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시험일 것이다. 전 과목 만점 받기라는 목표를 가졌다면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세부 목표를 세워놓고 차근차근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릿이 가득한 뇌를 만드는 방법

연습 일지 쓰기

1단계 연습 일지에 그날의 달성 목표를 쓴다

2단계 현재 내 상태를 살펴 고칠 점을 적는다

3단계 연습 후 달성률을 파악하고 2단계에서 적은 고칠 점이 사라졌는지 확인한다

4단계 오늘의 달성률을 바탕으로 다음번 연습의 달성 목표를 새로 쓴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이 결과물을 만드는 일엔 작업 기간 동안은 일지를 써 어떤 날 슬럼프에 빠졌고 어떤 날 작업 능률이 올랐는지 적는다. 결과물들은 날짜별로 차곡차곡 스크랩하고 스크랩할 때는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걸린 기간을 적는다. 3개월에 한 번씩 모은 결과물을 시간순으로 확인하면 뇌 가소성이 발달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런던의 블랙캡 택시기사들은 복잡한 런던 거리를 다 외우고 있다고 한다. 시험 또한 매우 어려워서 몇 년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들이 천재라서 그런 걸까? 결코 아니다. 끈기를 가지고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참 신기해서 노력하는 만큼 기능을 발휘한다. 다만 잠시라도 노력을 게을리하면 다시 원상태가 되어버린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도 한국에 돌아와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먹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될 수 있는 한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끝까지 해내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끝까지 가봐야 한다.

유명인들의 실패함, 그 유명인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내용 중간중간 삽입하여 읽는 동안 재미를 더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접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어렵게 느껴졌다.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아, 문학은 정답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학문이라기도 그렇다. 예술이다. 나는 자꾸만 20년 동안 배워왔던 교육 방식에 정직하게도 자꾸 답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답이 없는 문학을 접할 때마다 방황하고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일반 글만 죽 나열되어 있는 시집과는 달리 이 시인은 사물의 사진을 찍고 사물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 우리는 사실 제 혼자 잘난 맛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수한 사물 과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아마 작가는 그 사실을 사진과 글로 풀어내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우산을 쓸 때 우리가 잡아야 하는 우산 손잡이 부분은 제대로 쥐었을 때는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곡선이 되고 머리를 거꾸로 쥐면 침묵하는 어느 자세가 된다. 흡사 예의를 차리는 자세라고나 할까. 결국 우산은 제대로 쥐었을 때나 거꾸로 쥐었을 때나 묵묵히 비를 받아주는 존재다. 지탱하는 일을 마다 않는 이가 끝내 견고한 품을 갖게 되는 비밀(p87) 제대로든 거꾸로든 받아주는 이가 견고한 품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삶에 지쳐 힘이 들 때 흔히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얘길 한다. 나무를 보면 어차피 다 떨어질 건데 왜 그렇게 힘들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다 비워놓아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의 마음도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 법. 사람의 마음도 미니멀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감정을 채우기 때문에 소모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속내가 되지 말자

서로에게 어떠한 속내도 되지 말자

서로에게

서로가 아닌 무엇도 되지 말자

마침내 우리는 우리에게 수렴하기 시작했다

너와 나를 분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 너와 내가 같기를 바라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사랑이다. 집착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일 뿐 무엇이 되려고 하려고 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은 마음속을 알아주길 바라지 말자. 그것은 그야말로 '속내' 나의 속마음일 뿐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속내가 되어주길 바라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엇나갔을까

시인의 사진은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을 때 꼭꼭 눌러 찍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비 내리는 사진들 앞에서는 내 마음속 물때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을 다해 찍고 애써서 글을 쓴 시인의 등이 아른거린다.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공간들 찰나의 순간들의 사진을 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으로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자림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긍정적으로 살고 싶고 사실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 이런 내가 어른들은 대책 없어 보이긴 하다 보다. 헬조선이라는 곳에 돈도 빽도 없는데 아들을 셋이나 낳아놨으니 먼저 살아본 어른들은 걱정이 되시나 보다. 걱정을 달고 사는 내가 걱정 따위는 한동안 안 쓴 컴퓨터 위에 쌓인 먼지 따위로 치부하여 털털 털어내버릴 수 있었던 건 책의 힘이 크다. 책을 읽을수록 헬조선이지만 세상은 아름다우며 내가 할 일이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다는 거대한 책임감마저 생긴다. 책이 있기에 지름의 기쁨도 느끼고 있다. 대부분 단 돈 2만 원도 안 하는 가격으로 작가의 지식을 살 수 있다니. 가성비 최고가 바로 책이다.


내 아이의 질문이 지금은 귀찮고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만약 질문이 사라진다면 그 풍경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서로 말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그림이 그려지려나. 그때가 되면 삶이 지금보다 몇 배는 재미 없어질 것 같다.


다 먹은 과자 박스, 구겨진 색종이, 찢다 남은 종이 등 첫째는 대부분의 모든 물건을 엄마 선물이라고 준다. 처음에 고마워하면서 책상에 보관해두었지만 이내 책상은 내가 보기엔 쓰레기장을 방불케한다. 그 뒤 고맙지만 그것은 물건이 포장되어 있던 종이이니 마음만 받고 쓰레기통에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실망하던 아이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아, 이 문제는 정말 매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돌려 말할까 고민한다. 내 눈엔 그것이 쓰레기에 불과할지라도 아이의 눈엔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예뻐 보이는 건 아닐까


임신 출산의 반복으로 내 인생 최고치의 몸무게를 찍는 요즘, 예전에 입었던 바지는 당연히 안 들어가고 입었던 상의는 팔이 잔뜩 끼어서 마치 근육 다 빠진 운동선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덩이가 커져서 좋고, 팔 살이 흔들리는 게 재미있어서 좋고, 얼굴살이 올라 조금 어려 보이는 게 좋은 나는 내 예쁜 맛에 사는 사람이다

어른들 기준에서 나는 보통의 삶에도 못 미칠 것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집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더군다나 아들만 셋. 불쌍하거나 무식하게 여기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렇지만 엄마가 최고고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치켜세워주는 나의 어린왕자들이 있다. 어른의 눈에, 사회적 시선으로는 내가 보통도 안될지 몰라도 우리 집에서는 내가 최고니까 평균으로 치자면 보통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보통을 살아가는 법이란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보통으로 살도록 노력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욱이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가족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예를 들어 사고, 실직, 건강, 이혼, 장애, 폭력 등)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진다.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현실이 '우리' 가족, 즉 '가족은 마지막 보루'라는 믿음과 개인을 가족 집단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마지막 보루가 가족 구성원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개인이 마지막 보루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본말전도 현상을 야기한다._8p

가족 구성원의 잘못을 그 일과 아무 상관없는 가족 전체에게 덮어씌우는 사회적 연좌제가 종종 일어나는 건 누군가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기보다 어떤 가족 집단의 한 단위로 인식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_26p

다 큰 성인이 저지른 잘못에 부모가 나와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사실 어릴 때나 부모가 통제가 가능하지 커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 중학교 때 이후의 모습은 정확히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릴 때 잘못된 교육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사죄해야한다? 과연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집단으로 싸잡아 인식한다는 개념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가족 중 누가 잘못되면 저 가족은 다 그럴거야 라는 편견과 가족 중 누구 하나만 성공해도 가족 통채로 지위가 올라갔다는 착각을 한다.

한국에서 가족이 '정상' 대우를 받으려면 나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 순수 한민족이고, 사지 육신이 멀쩡해야 한다. 부부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 제도를 거친 사람에게서 태어나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이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비정상'이고, 사람들은 암암리에 나름의 기준에 따라 가족을 서열화한다._33p

'정상'대우를 받기 위한 기준 또한 까다로운데 '비정상'으로 낙인 찍히면 살아가기도 힘든 곳이 한국이다. 외국인이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다고 놀란 것은 그만큼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민 가기를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차피 조국에서 주류가 되기 어렵다면 비주류라도 '비정상'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 즉 삶의 개인적 의미에 자유롭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는 곳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일테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그런 헌신적인 모습에 가족은 커다란 감사를 느낀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 생계를 의지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아버지가 당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데서 오는 미안함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고마워할 뿐,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_43p

누구 하나가 가족을 먹여책임지는 형태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없다.

한국 가족이 살아남으려면 각자 '대리 인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남편은 아내나 부모에게 자신이 해야 할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달라고 '구걸'하고, 아내는 자녀에게 자기 꿈을 대신 이뤄달라고 강요한다. 자녀도 부모에게 자기 인생을 대신 책임져달라고 요구한다._44p

'희생'이라는 고결한 명칭을 붙여서 서로에게 내가 할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강요한다. 대리 인간 사회에서 당연히 '나'는 없다.

자기 욕망을 대신 이룬 자녀의 성공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동일시는 한국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가족을 한 인격체로 보는 게 외부의 사회적 시선이라면, 서로를 서로에게 의존해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혀닐적 여건은 가족 구성원을 자기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무의식적 관념을 촉직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_44p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대리 인간도 대리 인간을 만든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집단의 좀엄과 존재 이유를 집단적 동일성에 둘 때 그 집단 구성원은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집단 구성원 주류 혹은 다수와 '다름'은 그것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방법으로 그 다름이 유발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_63p

일심동체라는 말, 가족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관념을 염두에 두면 그냥 한몸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무방할 테다. 이런 집단에서 다른 의견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것, 심지어 반발은 집단의 존재를 위협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_64p

시댁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시어머니가 한 말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집이 이렇게 큰 소리 나는 집이 아닌데."라는 말. 그 말은 마치 굴러들어온 돌 때문에 우리 집에 균열이 생겨났다는 말로 해석했다. 대화하는 순간에도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이 집안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우리'가 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서구와 한국을 다르게 보는 이유는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아니냐에 있다. 한국의 결혼 생활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상대 가족(과의 관계)이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결혼 결정과 과정에서 그렇다. 한국에서 결혼을 말할 때 표면적으로 '당사자(개인) 의사'가 중요하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결합이라기보다 가족(딥단)의 결합에 가깝다._88p

결혼 허락을 받았냐는 말이 이해가 안 간다. 다 큰 성인이 개인의 개인으로 결합하여 살아가는 것인데 왜 부모의 허락을 받고, 심지어 허락을 안해주면 결혼을 하지 않을까. 그것은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허락하지 않을 때 부모의 단골멘트는 "힘들어도 도와달라고 찾아오지마!"다. 음. 집단의 결단력에 감탄한다.

가족에 대한 진짜 사랑은 절절한 '우리'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날개를 가진 온전한 '너'로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서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_136p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고', 나와 '다른' 성격이나 생각, 취향, 욕구, 삶의 방식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가족 구성원이 스스로 존엄해지는 건 '다름'을 서로 존중할 때라는 리처드 세넷의 지적을 고려해도 그렇다._139p

나는 많이 변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좀 거슬려(?)하시지만 '신여성'이라고 웃으며 대꾸해주신다. 그러나 시댁에서는 분위기를 망치는 인간이 된다. 어른이니까 그냥 네 네 하면서 기분 좋게 맞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건 모르는 어른들과의 단편적인 대화에서 그렇지 않을까? 결혼을 하면 우리집 며느리가 되었으니 너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단다 말하면서도 20년 넘게 다른 곳에서 살다 온 다른 사람인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는 곧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가 하는 일 가운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살림은 하찮은 일이지만, 엄마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엄마가 가족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정서적 지원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인 살림하는 여자(사람)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많은 주부가 '살림(이나) 하는 사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살림에 대한 편견 탓에 가족 안에서 엄마의 존재는 모순적이다.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이면서도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 엄마르 성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마음에는 살림 같은 하찮은 일을 엄마에게 미루면서 드는 죄책감도 한 몫 하는 것 아닐까.(……) "가사 노동이 여성의 노동으로 파악돼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진다면, 이는 여성의 정체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사실은 사회적 불평등이 가정에 반영될 뿐만 아니라, 가정의 평등 관계가 가정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불의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_175~177p

시어머니나 우리 엄마를 보면 시대가 그럴 수 밖에 없다지만 참 안타깝다. 그나마 엄마는 평생 일을 해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방황을 하시지만 어머니는 '나 하나가 희생해서 자식들 다 잘 키웠고 가정이 평화로우니 괜찮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내가 밥만 하는 사람이냐' 불만을 비추기도 한다. 살림을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살림을 어머니 혼자 하신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세탁기 탈수 버튼 하나 못 누른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살림은 여자의 몫으로 정하는 게 아닌 손이 되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함 께 할 때 가정의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분이 해체되면서 사회적 성공의 문이 모두에게 활짝 열리자, 자식의 잠재적 유용성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부모는 자식에게 지나칠 정도로 투자하고, 그 부담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희생'적 양육으로 변질됐다._205p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올인을 했다. ㅇㅇ대학 보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아들은 이제 가정을 꾸렸고, 당연히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누구든지 인풋을 하면 아웃풋을 기대한다. 부모라고 다를 바 없다. 희생적 양육의 희생자는 자식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희생'한다고 생각들 정도로 양육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인생은 내 인생, 자식의 인생은 자식 인생이다.

엄마들은 간절하지 않은 이상 좀처럼 먹는 거라든지 뭐든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너희가 원하는 거 해"라고 하면서 말이 아니라 뉘앙스나 태도 등 다른 식으로 에둘러 의사 표현을 한다. 우리는 그 뜻을 잘 알아채야 하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어머니들의 이런 화법은 전형적인 고맥락 문화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고맥락 문화란 사람들이 서로 깊이 개입돼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고맥락 문화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상대가 알고 있다고 넘겨짚고, 말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홀은 고맥락 문화에서 no는 yes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명절 당일 안 와도 된다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그러하고, 선물 받을 땐 세 번 사양하는 게 예의라는 한국의 전통 관습도 대표적일 것이다.<<갈등 해결과 한국 사회>>를 쓴 정주진은 한국인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건 자기 체면을 세우고 상대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_213p

친정엄마 시어머니 두분 다 이런 화법을 구사하시지만 시어머니가 정말 심하다. 친정엄마는 나의 엄마니까 대놓고 말 한다. "먹고 싶은 걸 말해!" 라고.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에둘러 말을 해도 결국은 "너희 먹고 싶은 거 먹어라~"라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결국 어머님이 드시고 싶은 걸로 먹게 된다. 물건을 살 때도 그렇다. 결국 어머님이 원하는 걸 하게 된다. 문자를 해도 늘 말을 끝까지 맺지 않으신다. "그럴지도...", "뭐 했..." 이런식의 화법이 정말 너무 속 터진다. 알았다는 대답도 알았다가 아닌 "알았..." 이런 식이다. 딱 잘라 말씀해달라고 말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해도 어른에게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분에겐 소 귀에 경 읽기다. 에둘러 의사 표현의 뜻을 잘 알아채야 하는데 그 때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도 이해해야겠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우리' 라는 말은 족쇄와도 같다고 느껴진다. '나'와 '너'를 분리하지 않은 '우리'는 '나'는 당연히 없다.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아이... 데이트 폭력이 존재한다면 가족 폭력이 그런게 아닐까?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는 것. 이 '우리'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품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엔 가족밖에 없다, 가족이 최고다라고 하는데 존속 살해 등 가족이 끔찍한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의 복지는 가족 단위라 가족이 끔찍한 존재가 되면 사실상 낭떠러지에 걸터있는 것과 같다. 또 정상 가족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낀다. 비주류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는 사회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시를 쓸 때면 삽질하는 기분이 든다._5p

고 말하지만 이미 그녀는 시집을 낸 경력이 있는 시인이다. 저 문장이 바로 눈에 꽂혔던 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도 삽질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몇 번을 써도 늘 마음 같지 않고,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나의 감정과 느낀 점을 도저히 글로 옮겨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내 손가락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글들은 대부분 내 블로그에 올렸던 일기들이다. 갓 20대가 되었을 때 쓴 일기가 주를 이루며, 그 이후의 일기들도 섞여 있다. 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다. 나에게 일기는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다._9p

왜 일기는 무조건 사실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일기와 글쓰기를 따로 두었기 때문에 글쓰기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닫아놓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단단히 닫혀있는 그 문 앞에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혼보다 이혼을 먼저 할 것 같다는 예감, 결혼을 하고 보니 결혼을 잘 하는 것보다 이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할 때는 다들 사랑에 눈이 멀어 불구덩이인지 혹은 에덴동산인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뛰어든다. 이혼율을 보면 결혼이 그다지 행복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건 자명하다. 이혼을 잘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설명 없이도 사랑받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지 못했다._121p

어느 날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러니까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시구나 싶어서 시를 썼다.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누군가가 생겼구나, 믿으며. 그러면 앞으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쓰자. 독자가 찰떡이기를 바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이기 때문에._121p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기에 시를 썼다니, 3번의 출산 이후 원래도 좋지 않던 머리가 건망증이 심해져 "그거, 있잖아."라고 개떡같이 말하면 내가 말하는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차리는 남편이 있다. 설명 없이도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 작가 말대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써야겠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 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_173p

나는 시를 쓰지도 않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여러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책을 읽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공상은 나만의 세계에서 떠돌기만 한다. 편협한 사람은 나를 특징짓는 말로 어울린다고 느낀다. 조직생활을 한지 오래되었고 육아와 가정만 있는 삶이 지속되고 있다. 내가 태어난 30년 전보다 세상은 더욱 빨리 바뀌고 있고 나는 거북이걸음으로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외로울수록 책을 더 많이 찾게 되는데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더 외로워진다. 우물 안 슬픈 개구리가 될 거라면 글이라도 매일 쓰는 노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나는 노력도 하지 않는 우물 안 슬픈 개구리.

작가들이 정신과 진료를 본 경험들을 풀어내주니 누구에게는 숨기고 싶은 아픈 기억일지 몰라도 그들의 글로 인해 사람 사는 것은 많은 것들이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단 걸 알았다. 자체 진단으로 화병을 앓았던 것 같은데 결국 지금 내 위치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기에 '곧 꺼내줄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곤 마음속 깊숙한 곳에 꽁꽁 묻어놓았다. 만약 내가 글로 풀어 낼 재주가 있다면 내 마음속 상처에게 후시딘 정도는 발라줄 수 있을까.

대부분 일기라고 하는데 좋은 글은 좋은 일기 쓰는 습관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뭐 했다 같은 초등학생도 쓸 수 있는 일기나 반성으로 가득 찬 자기파괴적인 일기 말고 잘 쓰고 싶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냥 잘 쓰고 싶다. 문보영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작가의 시집 <책기둥>도 읽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