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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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가족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예를 들어 사고, 실직, 건강, 이혼, 장애, 폭력 등)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진다.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현실이 '우리' 가족, 즉 '가족은 마지막 보루'라는 믿음과 개인을 가족 집단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마지막 보루가 가족 구성원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개인이 마지막 보루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본말전도 현상을 야기한다._8p

가족 구성원의 잘못을 그 일과 아무 상관없는 가족 전체에게 덮어씌우는 사회적 연좌제가 종종 일어나는 건 누군가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기보다 어떤 가족 집단의 한 단위로 인식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_26p

다 큰 성인이 저지른 잘못에 부모가 나와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사실 어릴 때나 부모가 통제가 가능하지 커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 중학교 때 이후의 모습은 정확히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릴 때 잘못된 교육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사죄해야한다? 과연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집단으로 싸잡아 인식한다는 개념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가족 중 누가 잘못되면 저 가족은 다 그럴거야 라는 편견과 가족 중 누구 하나만 성공해도 가족 통채로 지위가 올라갔다는 착각을 한다.

한국에서 가족이 '정상' 대우를 받으려면 나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 순수 한민족이고, 사지 육신이 멀쩡해야 한다. 부부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 제도를 거친 사람에게서 태어나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이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비정상'이고, 사람들은 암암리에 나름의 기준에 따라 가족을 서열화한다._33p

'정상'대우를 받기 위한 기준 또한 까다로운데 '비정상'으로 낙인 찍히면 살아가기도 힘든 곳이 한국이다. 외국인이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다고 놀란 것은 그만큼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민 가기를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차피 조국에서 주류가 되기 어렵다면 비주류라도 '비정상'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 즉 삶의 개인적 의미에 자유롭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는 곳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일테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그런 헌신적인 모습에 가족은 커다란 감사를 느낀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 생계를 의지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아버지가 당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데서 오는 미안함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고마워할 뿐,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_43p

누구 하나가 가족을 먹여책임지는 형태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없다.

한국 가족이 살아남으려면 각자 '대리 인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남편은 아내나 부모에게 자신이 해야 할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달라고 '구걸'하고, 아내는 자녀에게 자기 꿈을 대신 이뤄달라고 강요한다. 자녀도 부모에게 자기 인생을 대신 책임져달라고 요구한다._44p

'희생'이라는 고결한 명칭을 붙여서 서로에게 내가 할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강요한다. 대리 인간 사회에서 당연히 '나'는 없다.

자기 욕망을 대신 이룬 자녀의 성공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동일시는 한국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가족을 한 인격체로 보는 게 외부의 사회적 시선이라면, 서로를 서로에게 의존해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혀닐적 여건은 가족 구성원을 자기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무의식적 관념을 촉직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_44p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대리 인간도 대리 인간을 만든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집단의 좀엄과 존재 이유를 집단적 동일성에 둘 때 그 집단 구성원은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집단 구성원 주류 혹은 다수와 '다름'은 그것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방법으로 그 다름이 유발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_63p

일심동체라는 말, 가족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관념을 염두에 두면 그냥 한몸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무방할 테다. 이런 집단에서 다른 의견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것, 심지어 반발은 집단의 존재를 위협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_64p

시댁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시어머니가 한 말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집이 이렇게 큰 소리 나는 집이 아닌데."라는 말. 그 말은 마치 굴러들어온 돌 때문에 우리 집에 균열이 생겨났다는 말로 해석했다. 대화하는 순간에도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이 집안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우리'가 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서구와 한국을 다르게 보는 이유는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아니냐에 있다. 한국의 결혼 생활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상대 가족(과의 관계)이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결혼 결정과 과정에서 그렇다. 한국에서 결혼을 말할 때 표면적으로 '당사자(개인) 의사'가 중요하다는 데 누구나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결합이라기보다 가족(딥단)의 결합에 가깝다._88p

결혼 허락을 받았냐는 말이 이해가 안 간다. 다 큰 성인이 개인의 개인으로 결합하여 살아가는 것인데 왜 부모의 허락을 받고, 심지어 허락을 안해주면 결혼을 하지 않을까. 그것은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허락하지 않을 때 부모의 단골멘트는 "힘들어도 도와달라고 찾아오지마!"다. 음. 집단의 결단력에 감탄한다.

가족에 대한 진짜 사랑은 절절한 '우리'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날개를 가진 온전한 '너'로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서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_136p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고', 나와 '다른' 성격이나 생각, 취향, 욕구, 삶의 방식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가족 구성원이 스스로 존엄해지는 건 '다름'을 서로 존중할 때라는 리처드 세넷의 지적을 고려해도 그렇다._139p

나는 많이 변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좀 거슬려(?)하시지만 '신여성'이라고 웃으며 대꾸해주신다. 그러나 시댁에서는 분위기를 망치는 인간이 된다. 어른이니까 그냥 네 네 하면서 기분 좋게 맞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건 모르는 어른들과의 단편적인 대화에서 그렇지 않을까? 결혼을 하면 우리집 며느리가 되었으니 너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단다 말하면서도 20년 넘게 다른 곳에서 살다 온 다른 사람인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는 곧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가 하는 일 가운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살림은 하찮은 일이지만, 엄마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엄마가 가족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정서적 지원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인 살림하는 여자(사람)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많은 주부가 '살림(이나) 하는 사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살림에 대한 편견 탓에 가족 안에서 엄마의 존재는 모순적이다.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이면서도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 엄마르 성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마음에는 살림 같은 하찮은 일을 엄마에게 미루면서 드는 죄책감도 한 몫 하는 것 아닐까.(……) "가사 노동이 여성의 노동으로 파악돼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진다면, 이는 여성의 정체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사실은 사회적 불평등이 가정에 반영될 뿐만 아니라, 가정의 평등 관계가 가정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불의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_175~177p

시어머니나 우리 엄마를 보면 시대가 그럴 수 밖에 없다지만 참 안타깝다. 그나마 엄마는 평생 일을 해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방황을 하시지만 어머니는 '나 하나가 희생해서 자식들 다 잘 키웠고 가정이 평화로우니 괜찮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내가 밥만 하는 사람이냐' 불만을 비추기도 한다. 살림을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살림을 어머니 혼자 하신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세탁기 탈수 버튼 하나 못 누른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살림은 여자의 몫으로 정하는 게 아닌 손이 되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함 께 할 때 가정의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분이 해체되면서 사회적 성공의 문이 모두에게 활짝 열리자, 자식의 잠재적 유용성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부모는 자식에게 지나칠 정도로 투자하고, 그 부담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희생'적 양육으로 변질됐다._205p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올인을 했다. ㅇㅇ대학 보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아들은 이제 가정을 꾸렸고, 당연히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누구든지 인풋을 하면 아웃풋을 기대한다. 부모라고 다를 바 없다. 희생적 양육의 희생자는 자식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희생'한다고 생각들 정도로 양육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인생은 내 인생, 자식의 인생은 자식 인생이다.

엄마들은 간절하지 않은 이상 좀처럼 먹는 거라든지 뭐든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너희가 원하는 거 해"라고 하면서 말이 아니라 뉘앙스나 태도 등 다른 식으로 에둘러 의사 표현을 한다. 우리는 그 뜻을 잘 알아채야 하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어머니들의 이런 화법은 전형적인 고맥락 문화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고맥락 문화란 사람들이 서로 깊이 개입돼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고맥락 문화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상대가 알고 있다고 넘겨짚고, 말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홀은 고맥락 문화에서 no는 yes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명절 당일 안 와도 된다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그러하고, 선물 받을 땐 세 번 사양하는 게 예의라는 한국의 전통 관습도 대표적일 것이다.<<갈등 해결과 한국 사회>>를 쓴 정주진은 한국인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건 자기 체면을 세우고 상대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_213p

친정엄마 시어머니 두분 다 이런 화법을 구사하시지만 시어머니가 정말 심하다. 친정엄마는 나의 엄마니까 대놓고 말 한다. "먹고 싶은 걸 말해!" 라고.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에둘러 말을 해도 결국은 "너희 먹고 싶은 거 먹어라~"라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결국 어머님이 드시고 싶은 걸로 먹게 된다. 물건을 살 때도 그렇다. 결국 어머님이 원하는 걸 하게 된다. 문자를 해도 늘 말을 끝까지 맺지 않으신다. "그럴지도...", "뭐 했..." 이런식의 화법이 정말 너무 속 터진다. 알았다는 대답도 알았다가 아닌 "알았..." 이런 식이다. 딱 잘라 말씀해달라고 말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해도 어른에게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분에겐 소 귀에 경 읽기다. 에둘러 의사 표현의 뜻을 잘 알아채야 하는데 그 때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도 이해해야겠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우리' 라는 말은 족쇄와도 같다고 느껴진다. '나'와 '너'를 분리하지 않은 '우리'는 '나'는 당연히 없다.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아이... 데이트 폭력이 존재한다면 가족 폭력이 그런게 아닐까?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는 것. 이 '우리'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품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엔 가족밖에 없다, 가족이 최고다라고 하는데 존속 살해 등 가족이 끔찍한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의 복지는 가족 단위라 가족이 끔찍한 존재가 되면 사실상 낭떠러지에 걸터있는 것과 같다. 또 정상 가족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낀다. 비주류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는 사회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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