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기>에서 알바생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1년 넘게 일하고 권고사직 당했으니 퇴직금을 요구했고, 그동안 4대보험을 안들어줬으니 지불한 만큼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퇴직금으로 발목 인대 수술받았으나 여전히 아프고, 학자금 대출금 독촉을 받고 있다.
<대기 발령>사람을 함부로 자르지 못하는 법이 있다면 회사는 법 위에 있다. 스스로 나가게끔 만드는 것, 그중 하나가 대기발령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게 느껴지게 하는 것, 그로 인해 존엄을 잃게 하는 것. 회사는 무조건 갑, 직원은 을 구조가 너무나 선명하다.
어디 나가서 청소를 하는 게 차라리 낫겠어. 실존적 고민이 들더라니까.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는. 이거 아주 실존적 형벌이야.(p59)
"무의미하고 수치스러워. 몸도 마음도 감금된 기분이지. 화장실에 갔는데 줄을 서야 하면 '준수 사항'을 어기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나. 그런 자신을 자각할수록 스스로가 더 한심하게 느껴져. 삶의 의미를 박탈하고, 자존감을 깎고, 사회에서 격리하는 벌이야."(p66)
<공장 밖에서> 읽는 내내 현대자동차 노조가 생각이 났다. 예를 든 것도 자동차 공장이기도 했고.
"대기업 자동차 회사 직원이라고 호의호식할 때에는 우리 중소기업 직원들이 얼마나 울분 삼키고 서러움 참으면서 일하는지 몰랐지이! 그렇게 말로만 상생 협력 상생 협력 외치다 이제 와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공장 문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 있느냐, 이 비겁한 놈들아아!" (p99)
대기업 자동차 회사 직원이 파업을 하면 그 아래에 있는 하청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회사는 망할 것 같으니 직원을 줄이려 하고 직원은 사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고. 어려운 문제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 고만고만한 동네에 프랜차이즈 빵집 두 개 개인 빵집 하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았다. 프랜차이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똑같은 지침들. 을의 입장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점주 사장들. 고객 나눠 먹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은 죽어나는데 이윤은 남아나지 않지만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사장들.
장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영이 이해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이었다. 장사는, 돈을 쓰려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했다. (p135)
주영은 동굴에서 사는 물고기들을 상상했다. 빛이 없고 먹을 것이 모자란 좁은 공간에 오래 살면서 눈이 퇴화하고 피부도 투명해진 작고 불쾌한 생물들.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 주영은 하중동 사거리와 구수동 사거리가 그런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맑고 깜깜한 물속에 갇혀 있었다. (p137)
"그게 정말 우리 손에 달린 일 맞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되면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그러면 여기 장사 잘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틀림없어요. 저는 가게 망할지 안 망할지는 그냥 다 운인 거 같고요, 가게 문을 몇 시에 닫느냐,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 이건 저희가 정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p149)
<사람 사는 집> 재개발해야 한다고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생긴 입주민들. 긴 싸움 끝에 결국 선녀와 선녀어머니, 그리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 하나만 남았다. 결국 자살로 마무리가 되는데 전혀 극적이지 않다. 너무 사실적이다. 중간중간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뉴스는 씁쓸하기만 하다.
이 나라에는 모든 땅과 집에 주인들이 있다. 땅과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 땅 위에 있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권리가 있다. 한 동네에 사는 주인들이 모여, 동네를 통째로 허물고 새로 짓자고 결의할 수도 있다. 그 집을 갖지 못한 채, 거기서 살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 (p163)
<대외 활동의 신> 계급을 철저하게 나뉘어 지방대생을 루저로 바라보는 사람들. 지방대생들은 과잠 입고 다니면 쪽팔리지도 않냐고 조롱을 당한다. 신은 지방대 들어가 대외활동을 열심히 한다. 누군가 어차피 스펙 쌓기 위한 것이 아니냐 비꼰다. 그는 자신이 J대학교를 다니는 이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100군데 이상 이력서를 썼으나 다 떨어졌다. Y 제약 공채에 붙었는데 Y 제약 국토대장정 스태프로 일했던 것이 과연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방대생들은 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방대 학생들과 대화를 좀 길게 나눠 보시면 서울 애들과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실 겁니다. 뭐랄까,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 앞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하는 일은 없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내내 수도권 학생들을 의식합니다." (p235)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열패감과 무력감.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듯한 소외감과 고립감.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돌이켜 보자 금방 답이 나왔다. 그는 대외 활동을 다시 해야 했다. 그를 반겨 주고 인정해 주는 곳에 가야 했다. 설사 그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이유가 값싼 노동력 때문이라 해도. (p263)
"제가 놓친 게 뭡니까? 애초에 뭔가 괜찮은 걸 노려볼 기회가 저한테 있기나 했습니까? 처음부터 컵에 물은 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 컵의 물을 마시느냐, 아니면 그마저도 마시지 못하느냐였습니다. 다시 대학교 1학년이 된다 해도 똑같이 할 겁니다. 대외 활동이 아니었다면 저는 대학 생활 내내 빌빌대면서 허송세월했을 겁니다. 그렇게 빌빌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단 말입니다!" (p268)
<음악의 가격>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한 곡당 가수가 가져가는 돈이 1원이라고 한다. 그것마저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 가격에 결제해서 들었을 때다. 언더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은 가난하고 힘들어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다. 다 알고 선택했지 않았느냐는 비난 때문이다.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1만 원 크게는 3만 원 이상도 쓰면서 책은 잘 사지 않는다. 책에 있는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말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참석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사용한다. 그 아우라를 경험하면 온몸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나는 책에 있는 내용을 거의 똑같이 육성으로 말하는 데에 그만한 가치를 못 느낀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팔아 버는 돈 보다 강연에서 훨씬 더 돈이 된다고 하니 사람들의 니즈에 맞추는 수밖에...
강연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내용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은 콘텐츠가 아니라 아우라를 원한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을 직접 만난다는 경험은 콘텐츠보다 더 큰 주관적 효용을 주며, 공급량이 적고, 복사나 전송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책보다 강연에 더 큰 금액을 지불하는 것 역시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소비였다. (p314)
"가 보면 엄청 열광적이야. 우리가 노래하면 밑에서 사람들이 환장하면서 좋아해. 그런데 다음 날에 CD가 한 장이라도 더 팔리느냐 하면 아니더라고. 거기 온 사람들 대부분은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니야. 그냥 록 페스티벌에 있는 자기 자신이 좋아서 오는 거야. 온 김에 셀카도 몇 장 건지고 SNS에서 자랑도 하고. 여행 상품 같은 거야." (p320)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급식 비리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기준과 친구들. 다른 사람들은 잘못되었다는 걸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준의 어머니도 잠시만 참으라고, 언젠가는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내게 불이익이 가면 어쩌냐고 걱정하고 누구는 이걸 이용해서 S대 가려고 하는 거라고 비난한다. 나는 불의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p378)
장강명 작가는 늘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문제가 있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고 싶은 사회문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모두 버티고 있다. 버텨내야만 하는 삶이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제목의 <산 자들>은 <공장 밖에서> 단편에서 해고자 명단에 올라와 있지 않은 사람들을 일컸는데 살았던 사람들로도 받아들여진다. 희망이 없는 삶이 살아있는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