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방 - 우울의 심연에서 쓰다
메리 크리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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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잘 다루려면, 잘 알아야 하므로.

평소처럼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한 북트리거의 신간, <내면의 방>을 읽었다. 읽고 난 감상을 한 줄로 말하자면 그렇다. 마음을 잘 다루려면,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하며 달았던 댓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우울증의 바닥까지 경험해 본 사람이 적은 에피소드와 치료 과정, 자신의 병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병에 대한 지식들, 감정의 편린들이 되레 나의 깊고 어두운 곳을 내려다보게 해주었다.

책의 저자인 메리 크리건은 자신의 아이를 태어난 지 며칠만에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똑같이 자식을 잃은 입장인 남편이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을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저자는 여러번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로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혀 지내던 저자는 우울증 증상이 점차 심해지다 결국 자살 시도를 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후로 겪는 또 한번의 자살 시도와 치료 과정,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문장들과 그 상태에서 자신이 영영 회복할 수 없을까 봐 불안해하던 마음들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그래서 읽기 힘들었다. 처음엔 담담하게 읽어가던 마음이 점차 흐트러진 건 정신분석학과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저자가 설명하는 부분을 읽다 나의 지난 경험들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전공 수업 시간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잘 알고 있는 말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조차도 잊고 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다소 요동쳤다. 어쩌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 에피소드를 겪어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단지 취약한 마음을 타고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여러가지 사건들의 영향으로 회피적이고 수동적인, 벽이 높은 마음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이 들어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담담한 마음과는 달리)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겪었던 상실의 경험, 생을 꺾어버릴 기세로 몰아치던 우울증의 생생한 경험과 감정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내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이 책의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우울과 자기혐오를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자신의 병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듯 나 역시 힘들어도 내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참 나약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어떤 순간에는 가장 강해질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그렇게 생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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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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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자꾸만 '퓨즈란 무엇인가' 라고 제목을 잘못 외게 되는 책..! <퓨즈란 무엇인가>. 한양대 교수이자 의학자인 신영전의 다양한 칼럼을 모아 엮은 책이다. 내게는 생소한 저자였지만 한겨레출판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카드뉴스를 보고 홀린듯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다. 사회의 취약계층을 가장 끊어지기 쉬운 퓨즈에 비유하여, '가장 약한 사람들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총 8가지로 구성된 파트는 각각의 주제에 맞는 칼럼들을 분류하고 있지만, 최근의 글부터 멀게는 15년쯤 된 글들도 실려있다. '건강정치학'이라는 큰 물 안에서 저자는 (칼럼이 쓰인 당시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취약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실질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칼럼들을 읽다보면 내가 자세히 몰랐던 우리나라 공공의료 부문의 굵직한 흐름과 사건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1장 '성찰' 파트와 4장 '건강' 파트이다. '성찰' 파트에는 비교적 최근 칼럼인 '없다' 시리즈가 수록되어 있다. 우월한 생은 없다, 희망은 없다, 건강은 없다, 자살은 없다 같은 제목의 칼럼들은 얼핏 보면 세상에 대한 회의주의를 담고 있는 말인가 싶지만 사실 세상의 비뚤어진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말들이다. "자살은 없다. 타살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40분마다 1명, 하루 38명, 한 해에 1만 4000명이 자살하는 나라"라는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건강' 파트에서는 주로 '건강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전에 읽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많이 생각났다. 질병의 요인은 다인적이라는 것, 특히 개인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모두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김승섭 교수가 말한 바와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취약계층이 아픔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질병의 표면적인 요인만 제거하려는 안일함이 결국 취약계층이 겪는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건강정책들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은 아니어서 그런지, 묶어놓은 글들의 흐름이나 구성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 사람이 15년간 여기저기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엮는다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울퉁불퉁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러나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이다.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 끊어지기 쉽고, 더 민감하고, 더 아플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가져야 한다는 것. 그게 국가의 책무이고 인간의 도리라는 것. 타인으로부터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개인은 아무도 없으므로,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한 사회가 되자는 것. 내가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잘 소화해가며 읽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국내외 건강정치학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다짐은 할 수 있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가 말하는 '아픔의 연대'를 나 역시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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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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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모두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당신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소설의 시작인 ‘준’의 시선이 그러했던 것과 비슷하다. ‘준’은 아주 어릴 때 폴란드에 입양 와 지금의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게 되고, 지금껏 한 번도 다가선 적 없었던 기억의 문턱에 발을 들이밀게 된다. 자신의 고향에 대하여, 자신의 출생에 대하여, 자신의 어머니, 은희에 대하여.

준은 편지 속 장소인 아우슈비츠 박물관에서 동양인 여성인 ‘미연’을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미연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들려달라고 말하지만 미연은 그런 준을 피한다. (“시간 지나고 나면, 모르는 게 나을 수 있어. 진실이란 게 그래. 알면 알수록 괴롭고 귀찮아져. 네 나이 때는 진실이 너를 치료할 거라고 착각할 수 있어. 젊을 때는.”) 사실 미연은 그 ‘진실’로 인해 평생을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준 또한 진실을 알게 되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연이 그토록 묻고자 했던 진실이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기억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작품의 줄기가 되는 사건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이다. 형제복지원은 군사정권 당시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세워진 사회복지시설이었다. 하지만 허울 좋은 명분과는 다르게 실제로 부랑아나 고아가 아닌 아이들도 납치하여 시설에 감금하기가 부지기수였고, 시설 내에서는 강제 노역과 성폭행, 살인 등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이 만연했다. 실제로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형제복지원에서 살해 및 고문으로 사망한 피해자 수가 513명에 달하고,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돌아온 생존자들 중 대다수가 당시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로 현재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다.

소설 속 은희와 미연 역시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감되었던 아이들이었다. 은희는 형제복지원에서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고, 미연은 살아나왔다. 미연은 가족과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가고자 노력했지만 사실은 그때의 기억에 붙잡혀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었다. 미연을 통해 되감기되는 그때, 그 날의 기억들은 소설을 읽는 나에게도 슬픔보다 더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유 없는 죽음들, 아니, 이유 있는 죽음들과 그 이유를 모른채 해 온 국가와 재판부와 언론에 대한 분노가, 그리고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 자신에게 밀려오는 부채의식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한 번씩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게 했다.

소설은 모두에게 기억하기를 종용한다. 소설 속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방인곤’ 원장은 시간이 지나 치매로 자신의 죄와 기억을 모두 잊었다. 미연은 기억을 묻어두고 일상을 살아나가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여전히 기억에 붙잡혀 고통받고 있다. 준은 어쩌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을 자신의 탄생과 은희의 죽음을 알게 됨으로써 그 기억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나. 독자는 이 작품을 읽음으로서 또한 과거의 참혹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된다. 이 책의 독자로서 내가 갖는 고통은 분명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갖는 고통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은희>를 읽음으로서 이 불행의 조각을 작게라도 나눠 갖게 되는 것은 지난 시대가 만들어낸 고통을 함께 감수하려는 최소한의 반성이며 노력이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은희>는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ps.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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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은 악기를 개량해 흠결 없는 소리를 만들자, 이제 그 불안을 놓칠까 두려워졌던 게 아닐까. 불안을 제거한 것이 도리어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지나치게 막연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그걸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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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유란 선명하고 매혹적이지만, 때로는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미혹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이를테면 네가 망쳐온 그 화분들은 결코 네가 얻게 될 생명과는 등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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