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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 자전 고전 - 아버지와 아들, 책으로 말을 걸다
김기현.김희림 지음 / 홍성사 / 2020년 11월
평점 :
모든 아빠에겐 꿈이 있다.
‘최고의 아빠’
모든 아빠가 가지고 싶어 하는 타이틀이다. 아빠는 언제나 엄마에게 밀리기 십상이다. 늘 가까이 있지만 쉽게 다가가기엔 집에 있는 아빠는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 아빠들의 마음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고, 인생의 깊은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마음과 다르게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나도 아빠다. 두 어여쁜 공주들 둔 아빠다. 지금은 아이들과 사이도 좋다. 밤마다 날 찾는 아이들이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내 안에 두려움이 하나 있다. 이 두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거실 쇼파에 홀로 앉아 있고, 두 아이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갈까 봐 두렵다. 그렇게 서로 담을 쌓고 살까 봐 겁난다. 지금은 ‘아빠 없이 못 살아!’,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곧 이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고, 어떻게 하면 오랫토록 아이들과 함께 벗 삼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부전, 자전, 고전>을 만났다. 이 책은 신학자인 아버지와 철학도인 아들이 신학과 철학을 오가며 삶에 대해 이웃에 대해, 정의와 진리에 대해 주고받는 책이다. 이들의 신학적 깊이, 철학적 사유도 놀랍지만, 아버지 된 자로서 가장 부럽고 놀라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그 자체다. 부자는 이미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SFC)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었다. 그때에도 둘은 서슴없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글로써 나눈다. 그때 당시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다. 보통의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특별히 청소년기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둘이 서슴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넘어 서로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논한다. 그것도 신학과 철학의 고전들로! 일단 이것만으로도 모든 아빠의 부러움을 살만한 책이다.
고전을 부자의 대화를 엿보고 있으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웃으로 향하고, 이웃할 수 없는 자들과의 관계로 이어져, 국가로 확장된다.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정의, 사랑, 진리, 자유로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세상과 그곳에서 신학하기, 철학하기까지로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 모든 대화가 억지로 이어지기보다, 대화 속에서 각자의 사유 속에서 확장되고, 이어진다. 부자간의 대화 그 자체도 신선하지만, 그 대화의 깊이는 대화를 엿보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확장하게 한다. 두 부자 역시 서로의 대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유와 관점에 대해 놀라고 배운다.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둘의 대화는 권위적이지 않다. 서로가 사유의 동반자가 되고, 친구가 된다. 이렇게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이 역시 아버지 된 자로서 부럽기 그지없다.
책을 덮으며, 책의 내용에도 깊은 영감을 얻지만, 책 자체, 두 부자의 대화에서도 큰 도전을 받는다. 책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 그 이상이다. 아들에게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그곳을 넘어 더 큰 그림을 상상하게 해준다. 아들 역시 ‘착한 아들’ 그 이상이다. 아버지의 생각을 받아 이를 확장하고, 다시 아버지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대화로 서로의 사고를 확장해가는 관계 말이다. 내 두 딸의 청소년기, 그리고 이들은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