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신학하기
구미정 지음 / 서로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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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신학하기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림으로 신학한다. 많은 미술작품들, 비슷한 주제의 그림들을 한데 엮어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 작품의 작가들의 생각, 그리고 자신의 생각, 성경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 각 주제에 따른 나름의 신학을 전개해 간다.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볼 줄' 모르는 나로선, 이미 알고 있었던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이해가 책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또한 동일한 주제를 각 작가마다, 각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생각을 엿보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떻게 관점이 변해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성서를 바라보는 관점도 미술작품을 통해 각 시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볼 수 있다. 카라바조의 <마태와 천사 2>의 작품에서는 교조주의적 관점인 '기계적 받아쓰기'의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면,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의 작품에는 '유기적 영감설'로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나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성경을 보는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참 재미있다.

또한 작가의 삶과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서, 하나의 신학적 주제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반 고흐나 렘브란트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작가들의 삶과 그 삶의 여정 속에서 나온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많은 작가들의 그림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성경적 진리를 탐구해가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이를 신학 놀이라고 표현했는데, 놀이라는 표현에서 신학이 딱딱하게만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하고 놀 수 있는 한 영역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좋아하는가? 신학하기를 즐기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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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별이 된 다니엘처럼 청년이 희망이다 3
조영민 지음 / 죠이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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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극을 왔다갔다하는 기독교 세력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오히려 그러한 극단적인 모습에 기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독특한 삶에 대해 비그리스도인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 안에서 조롱적인 어조도 있었겠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은 그만큼 세상과는 다른, 그들이 따르는 '그리스도'라는 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특징지어 말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모습을 특징지어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일까?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일컬었다.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 세상을 맛갈나게 하고,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다니엘서에서도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 그들을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3


코로나 기간을 지나며 더욱 세상에서 '천덕꾸러기'같은 신세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다시금 그 소망 가운데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게 한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포로기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다니엘과 그 세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이상 그 나라 속에서 주류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잃고, 낯선 땅에 살아간 나그네 였으며, 포로였다. 바벨론 제국의 질서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켜가야 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이뤄가야 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쳐야 했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지금 우리의 시대와도 많이 닮아 있다. 기독교는 더이상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아니다. 크리스텐덤은 이미 끝났고, 우린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를 살아간다. 이러한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에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린 어떻게 우리의 부르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린 다니엘의 삶을 통해 이러한 질문의 대답에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니엘은 바벨론 안에 살았지만, '바벨론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속에 거한다. 그로인한 엄청난 고난과 죽음의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세상에 새로운 대안, 진정한 답이 된다. 그의 삶은 결국 제국의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찬양하게 한다. 불안의 삶,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 준다. 다니엘은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과 선을 긋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따라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고유하고 독특한 삶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은 별이다.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근데 어느 순간 그 빛을 잃어버리고,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다. 빛을 잃은 별은 소멸될 뿐이고, 맛을 잃은 소금은 땅아 버려질 뿐이다. 지금의 기독교가 세상 가운데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그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그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의 기독교에 대한 적대시는 이로 인한 것임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별은 반짝여야 한다. 소금은 그 맛을 간직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떨 때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을까? 그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그분을 향해 자라가는 삶. 그 삶을 소망하는 가? 그 힌트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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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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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누군가는 고전을 '고전하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고전을 읽는 것이 부담이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라는 고전을 접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아나타시우스는 우리가 교회사에서 '아리우스 논쟁',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에 대해 배울 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의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덜컥 겁내기 쉽다. 그래서 그의 글을 직접 읽기보다, 그에 대해, 그의 신학에 대해 설명하는 책에 먼저 손이 간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쓴 C.S 루이스는 이야기한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현대 주석가들의 글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라고 말이다. 실제로 책은 분량도 많지 않고, 간결하며, 이해하기 쉽다. 또한 아타나시우스의 글을 직접 읽음으로 글 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열정과 확신을 피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부담이지만, 몸으로 부딪쳐보면, 고전이 주는 명확함과 힘을 느낄 수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드로스의 비서가 되면서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고, 이때 아리우스의 이단설을 단호하게 물리침으로써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 주교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30세의 나이에 로마 제국 최대 교구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어 46년간 섬긴다. 그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고, 정통 신학의 개진하고 옹호하는 데 힘썼으며, 특히 성서의 정경화 과정에서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 (책의 저자 소개 부분 참조)

아타나시우스는 무엇보다 아리우스 논쟁에서 아리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했을 때, 이에 대한 반박을 함으로써 명성을 얻는다.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는 영원한 존재가 아닌 단지 인간일 뿐이고 성부에게 종속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박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님의 신성을,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님의 삼위일체 신앙교리를 확립한다.

이 책, <말씀이 성육신에 관하여>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아타나시우스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창조 때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성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온 만물을 창조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취하셔서 친히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아나타시우스는 이어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부패에 휩쓸려 소멸하게 내버려 두실 수 없었다. 또한 인간을 써어짐에서 구출하는 일은 자신 외에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말씀이신 성자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 죄로 인한 사망의 법을 종식시키고, 부활의 소망을 주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말씀의 성육신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열정과 확신은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논박과 이방인에 대한 논박으로 이어진다. 유대인들은 성육신하신 말씀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성경에 그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린다. 이방인들은 신이 인간의 몸으로 온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책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마카리우스에게 쓴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복음의 내용,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신성에 대한 진술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복음의 진리는 성경을 연구함으로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올바른 성경연구를 위해서는 선한 삶과 정결한 영혼, 그리고 그리스도를 좇아 행하는 덕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생각이 이러한 삶의 인도를 받아 말씀이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단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사랑의 삶을 통한 전인격적인 앎이기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반드시 삶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타나시우스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열정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열정과 사랑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과 교리를 바르게 세우는 원동력이 됐음을 보게 됐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며 수많은 이단적 진리와 삶으로 마구 흔들리고 쓰러지고 있는 기독교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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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 자전 고전 - 아버지와 아들, 책으로 말을 걸다
김기현.김희림 지음 / 홍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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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빠에겐 꿈이 있다.

최고의 아빠

모든 아빠가 가지고 싶어 하는 타이틀이다. 아빠는 언제나 엄마에게 밀리기 십상이다. 늘 가까이 있지만 쉽게 다가가기엔 집에 있는 아빠는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 아빠들의 마음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고, 인생의 깊은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마음과 다르게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나도 아빠다. 두 어여쁜 공주들 둔 아빠다. 지금은 아이들과 사이도 좋다. 밤마다 날 찾는 아이들이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내 안에 두려움이 하나 있다. 이 두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거실 쇼파에 홀로 앉아 있고, 두 아이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갈까 봐 두렵다. 그렇게 서로 담을 쌓고 살까 봐 겁난다. 지금은 아빠 없이 못 살아!’,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곧 이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고, 어떻게 하면 오랫토록 아이들과 함께 벗 삼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부전, 자전, 고전>을 만났다. 이 책은 신학자인 아버지와 철학도인 아들이 신학과 철학을 오가며 삶에 대해 이웃에 대해, 정의와 진리에 대해 주고받는 책이다. 이들의 신학적 깊이, 철학적 사유도 놀랍지만, 아버지 된 자로서 가장 부럽고 놀라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그 자체다. 부자는 이미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SFC)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었다. 그때에도 둘은 서슴없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글로써 나눈다. 그때 당시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다. 보통의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특별히 청소년기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둘이 서슴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넘어 서로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논한다. 그것도 신학과 철학의 고전들로! 일단 이것만으로도 모든 아빠의 부러움을 살만한 책이다.

 

고전을 부자의 대화를 엿보고 있으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웃으로 향하고, 이웃할 수 없는 자들과의 관계로 이어져, 국가로 확장된다.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정의, 사랑, 진리, 자유로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세상과 그곳에서 신학하기, 철학하기까지로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 모든 대화가 억지로 이어지기보다, 대화 속에서 각자의 사유 속에서 확장되고, 이어진다. 부자간의 대화 그 자체도 신선하지만, 그 대화의 깊이는 대화를 엿보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확장하게 한다. 두 부자 역시 서로의 대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유와 관점에 대해 놀라고 배운다.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둘의 대화는 권위적이지 않다. 서로가 사유의 동반자가 되고, 친구가 된다. 이렇게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이 역시 아버지 된 자로서 부럽기 그지없다.

 

책을 덮으며, 책의 내용에도 깊은 영감을 얻지만, 책 자체, 두 부자의 대화에서도 큰 도전을 받는다. 책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그 이상이다. 아들에게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그곳을 넘어 더 큰 그림을 상상하게 해준다. 아들 역시 착한 아들그 이상이다. 아버지의 생각을 받아 이를 확장하고, 다시 아버지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대화로 서로의 사고를 확장해가는 관계 말이다. 내 두 딸의 청소년기, 그리고 이들은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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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걷고 있는 그대에게 - 세상의 기준에 저항하고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라 청년이 희망이다 2
김유복 지음 / 죠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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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곳이다. 사방이 모래로 뒤덮여있어, 사나운 모래바람과 낮의 더위, 밤의 추위와 싸워야 한다. 쉴 곳을 찾아 헤매지만 마땅히 쉴 곳을 찾기도 힘들다. 물도 찾을 수 없고, 먹을 것도 찾을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풀 한 포기도 자라기 힘든 곳이 광야다.


하지만 성경에서 광야는 단지 절망의 공간만은 아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이 샘솟듯이,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곳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보호과 인도, 그리고 채우심을 경험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셨다. 성경에서 광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새롭게 하시고, 창조하는 공간이다.


광야는 단지 공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금 우린 풍족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욕심만 더하지 않는다면, 먹을 것, 마실 것이 넉넉하고, 유흥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풍족함 속에서도 광야를 걷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만의 광야를 헤매고 있다. 광야는 공간이 아니라 각 사람마다 겪고 있는 삶의 문제, 어려움과 고난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 속에서 광야를 걷고 있는 자들을 위한 책이다. 광야가 늘 절망의 공간이 아니듯,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와 어려움도 그렇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를 변화하고 새롭게 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광야의 시간이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시도하고,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저자는 대학교에서 IVP 간사로 오랫동안 섬겼으며, 청년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청년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경험들과 청년들을 향한 열정은 청년의 삶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과 더해져 현대 사회에서 각자의 광야를 걷고 있는 청년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신학 외에도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다윗의 삶과 지금의 청년들의 삶을 비교하며 어떻게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책의 표지에도 나타나있듯이, "세상의 기준에 저항하고,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라."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윗의 삶을 돌아보며, 일과 소명이 점점 분리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지, 불안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붙잡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광야의 시간 속에서 우정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광야의 시간은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과 소명을 회복하는 장소다. 하지만 광야의 시간이 그러한 시간이 되기 위해선, 사막을 지날 때 나침반이 필요하듯, 광야를 잘 걷기 위한 지침서가 필요하다. 광야를 걷고 있는 바로 그대에게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p.s. 교회 청년들과 함께 복음이 무엇인지 잘 정리하고 싶다면,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복음을 제시하고 있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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