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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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누군가는 고전을 '고전하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고전을 읽는 것이 부담이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라는 고전을 접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아나타시우스는 우리가 교회사에서 '아리우스 논쟁',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에 대해 배울 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의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덜컥 겁내기 쉽다. 그래서 그의 글을 직접 읽기보다, 그에 대해, 그의 신학에 대해 설명하는 책에 먼저 손이 간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쓴 C.S 루이스는 이야기한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그 위대함 때문에 현대 주석가들의 글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라고 말이다. 실제로 책은 분량도 많지 않고, 간결하며, 이해하기 쉽다. 또한 아타나시우스의 글을 직접 읽음으로 글 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열정과 확신을 피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부담이지만, 몸으로 부딪쳐보면, 고전이 주는 명확함과 힘을 느낄 수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드로스의 비서가 되면서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고, 이때 아리우스의 이단설을 단호하게 물리침으로써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 주교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30세의 나이에 로마 제국 최대 교구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어 46년간 섬긴다. 그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고, 정통 신학의 개진하고 옹호하는 데 힘썼으며, 특히 성서의 정경화 과정에서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 (책의 저자 소개 부분 참조)

아타나시우스는 무엇보다 아리우스 논쟁에서 아리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했을 때, 이에 대한 반박을 함으로써 명성을 얻는다.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는 영원한 존재가 아닌 단지 인간일 뿐이고 성부에게 종속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박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님의 신성을,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님의 삼위일체 신앙교리를 확립한다.

이 책, <말씀이 성육신에 관하여>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아타나시우스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창조 때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성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온 만물을 창조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취하셔서 친히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아나타시우스는 이어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부패에 휩쓸려 소멸하게 내버려 두실 수 없었다. 또한 인간을 써어짐에서 구출하는 일은 자신 외에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말씀이신 성자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 죄로 인한 사망의 법을 종식시키고, 부활의 소망을 주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말씀의 성육신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열정과 확신은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논박과 이방인에 대한 논박으로 이어진다. 유대인들은 성육신하신 말씀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성경에 그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린다. 이방인들은 신이 인간의 몸으로 온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책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마카리우스에게 쓴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복음의 내용,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신성에 대한 진술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복음의 진리는 성경을 연구함으로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올바른 성경연구를 위해서는 선한 삶과 정결한 영혼, 그리고 그리스도를 좇아 행하는 덕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생각이 이러한 삶의 인도를 받아 말씀이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단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사랑의 삶을 통한 전인격적인 앎이기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반드시 삶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타나시우스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열정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열정과 사랑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과 교리를 바르게 세우는 원동력이 됐음을 보게 됐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며 수많은 이단적 진리와 삶으로 마구 흔들리고 쓰러지고 있는 기독교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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