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세계를 팬데믹으로 이끈 코로나는 우리의 삶에 너무도 많은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치료제는 개발중에 있고, 언제 끝날지 알수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2차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수보다 더 많은 이들이 현재 바이러스로 죽어가고 있고, 확진이나 확진자와의 밀접접촉으로 격리된 삶은 코로나 블루에 이어 코로나 레드나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종 우울병을 양상해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평범했던 과거의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 때의 기억을 추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읽은 <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은 이러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름만 조금 다른 치커바이러스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삶에 커다란 변화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책 <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의 도입부분에서 박초이작가님이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으나 온라인상으로 알고 지내며 작품으로 쓰기를 동의를 구해 허락을 받았다는 블로그 이웃의 비밀글을 토대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분의 부고소식에 작가님이 받은 충격도 고스란히 전해들을 수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삶은 물론이고 죽음조차도 배웅하지 못하게 된 우리 삶에 대해 나 역시도 쓸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책의 제목에서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이 책은 민간인들에게는 개방된 적이 없는 휴가철 장교들이 사용하는 용호별장에 양천지역의 부대로 채혈을 하러 나온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운전기사와 관리팀장 6명이 갇히며 고립되며 지낸 끔찍했던 겨울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영미는 필리핀에서 발생한 치커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다는 뉴스를 보지만 정작 정부의 확진자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 눈으로 고립된 양천지역으로 채혈을 나왔다가 용호별장에 머물러 잠시 들른 마트에서 만난 사람들의 발병징후를 보고 양천시 전체가 격리된 사실을 뒤늦게 직감하게 된다. 보안지역이라 외부와 단절된 채 그들 역시도 용호별장에 격리되고 그들 역시도 치커바이러스에 예외가 아님을 인지하면서 결국 관리팀장 최 역시도 바이러스로 사망하게 된다. 원형감옥처럼 별장을 얼음탑으로 쌓아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어느 누구도 대위의 명령에 거절할 수 없이 보낸 용호별장에서의 그녀들의 기억은 현실이라기에는 너무도 끔찍하고 처참했다. 그 겨울, 용호별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바이러스로 시작된 고립과 격리는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정부의 신뢰할 수 없는 발표와 대응책들은 불안감과 공포를 더욱 조장시키는 느낌을 받았고, 시 전체가 고립되어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상황들은 우한이나 대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실 바이러스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한 인간의 잘못된 성적 욕망의 비뚤어진 분출이 낳은 범죄가 중심이 된다 보여졌다. 수영장에서 유리의 목을 조이며 쾌감을 느끼는 몸짓이나 아무도 없는 새벽에 속옷을 훔치러 들어오는 숨겨진 욕망과 누구도 성취할 수 없는 게임을 소원성취게임이라 말하던 비논리적인 모순 등을 통해 본 이 이야기속 대위라는 인물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화된 n번방사건의 바로 그 인물,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비춰져 읽는 내내 화가나고 울분이 금할 길이 없었다. 또한 독특한 성장배경으로 본능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대위와 동질감을 느꼈던 유리 역시도 우리 사회가 낳은 일종의 피해자 같은 느낌으로 비춰져 안타깝게 느껴졌다. 몸부림쳐도 사방이 바닥이고, 모든 순간들이 영원이 된다는 책에 인용된 방탄소년단의 '블랙스완'의 가사처럼 그곳에서의 아프고 힘겨웠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표현을 한 그녀들의 삶을 같은 인간으로서 응원하게 된 시간이었다. 아프고 슬프고 쓸쓸하고 가슴저리면서도, 순식간에 읽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