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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전문적이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매우 쉽게 쓰여진 책.

1985년 'We Are The World' 를 발표해서 일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씨는 1991년 "Dangerous" 음반에 'Heal The World' 곡을 수록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Earth Song' 등의 메시지송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Bad" 음반의 'Man In The Mirror' 도 있다) 흠. 그는 정말 열심이었다. 아아.. 훌륭하신 양반. RIP. 덕택에 한 개인으로서 아마존 밀림벌채, 기아, 전쟁 등의 세계적 주제에 관심을 조금 더 갖게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다. 분명 그리고 아주 작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은 하고 있다고도 말하고 싶다. 이건 절대 내 과시나 자랑이 아니라.. 이건 다음 얘기를 적기 위한 언급이다. 또한 Michael Jackson 이 분의 개인적인 노력과 그 결과에 비하면 한없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절대 자랑도 아니다. 90년대 공중파에서 방송되어 한국에서 꽤 주목받았던 '월드비전' 의 '사랑의 빵 그리고 기아체험' 프로젝트에서도 그의 음악이 내내 흘렀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분명 무엇인가 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온통 마이클 잭슨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여전히도 그와 같은 존재가 또 다른 'Heal The World' 를 부르고 'Earth Song' 을 쓰고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2013년 현재까지도 그러한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85년, 91년의 'We Are The World' 와 'Heal The World' 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김혜자씨가 소말리아에서 기아에 시달리던 아이를 안고 찍었던 사진이 여전히 생생한데, 또한 불행히도 그것은 여전히 현실이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기아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할 법도 하지만, 살다보면 기아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세상에서도 삶의 무게에 눌려서, 또 여러가지 이유로 생각을 못 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흠. 미국을 강타했던 태풍 '카트리나' 같은 것도 물론 매우 끔찍한 일이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오늘도 사람들은 오로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에 시달리다 죽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뭐랄까, 매일 일어나는 그러한 죽음에는 점차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국외를 도와야 하는가' 라는 방식의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내 알 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나는 이런저런 활동을 조금은 하니까' 하고 위안 삼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면서 나날을 보내는 경우도 있고, 그렇다. 양심의 가책이란 어쨌든 무거운 법이니까.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잠자던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세상에 대한 눈을 새로 뜨게 한다.
강대국의 횡포, 제국주의의 잔재,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실패, 내전, 약육강식(패자탈락)의 논리, 다국적기업, 금융자본의 득세.. 이렇게 원인은 크게 몇 가지로 진단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대통령 암살, 칠레정부의 분유제공 후 다국적기업과 강대국에 의한 정부 고립, 제국주의로 인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인한 자급자족 불가, 시카고 곡물거래소로 상징되는- 곡물 거래에 대한 대규모 자본의 투자와 투기, 그리고 오직 이윤창출을 위한 식량처리, 내전, 환경난민.
그러나 한 미미한 개인으로서 책을 덮고 가슴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훌륭한 책들은 개인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변화한 시각으로 보자 너무나 큰 벽이 보여, 어떻게 해야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그만 답답해지는 심경만 들고 마는 것이다. 아..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무덤으로 직행해야 하는 아기들이 있는 한 작금의 현실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기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나로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라고 말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도 식량에 있어선 기득권자 쪽에 섰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시장에서 몇백원짜리, 몇천원짜리도 수십번 들었다 놨다 하는 신세지만 말이다). 과연, 기득권자로서 "어쩔 수 없어, 그냥 그대로 죽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 인류의 식량생산능력은 전체 인류를 먹여살리고도 남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되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도 그 점에 있어서는 슬프게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지 못한다. 인류가 개발한 자본주의와 권력 시스템, 그리고 인간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현재 전체적으로는 최선을 향해 가지 못하고 있으나 그 시스템은 더욱 공고화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강대국의 시민들이 모두 깨어나고 내가 비록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세계의 기아라는 문제를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며 그에 따른 정책 변화와 사회 변화, 글로벌 사회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인식" 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확산되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으로 읽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쉬울 것인가? 인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불행히도 쉬울 것 같진 않다.
강대국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총기난사, 태풍, 테러.. 이런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 세계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며 그를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몇십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끝없이 방대한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 기아문제는 '만성' 이 되어가며 사람들을 무감각하게하고 시급한 과제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가면 이 문제를 또다시 잊을 지 모른다. 일상 속에서 지금의 이 감정이 녹아버릴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구호대상이 되는 표시인 비닐 발찌를 받지 못한 아기의 어머니의 심정.. 이것을, 그저 하룻밤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비극의 카타르시스와 그를 통한 일종의 쾌감'이라는 최악의 독후감과 독자라는 결말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인데, 마음이 무척 무겁다.
인간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지구 전체의 문제들 - 환경, 기아, 전쟁 등- 을 돌본다면 세상은 바뀌리라. 그러나 어디 그러한가. 세계사적으로 타국을 노예국가로 예속시켜 본국의 경기를 살릴 수 있다면, 본국의 사람들은 타국의 사정에 상관없이 그러한 정권을 지지하여 왔다.
다시 한 번 쓰지만, 마음이 무겁다. 어떠한 분석도, 결론도.. 오늘 밤에도 굶어죽은 아이를 보고 있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꾸 돌아가 생각하면, 더 이상 적어나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