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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전혜진 지음 / 니들북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들어가기 전에 사진 한 장. 이 부부의 뇌내 패턴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컷이라 할 수 있어 넣었다. 와 놔^_^;; 재무상담, 예비부부 신체검사, 부부재산약정등기에 별표 두 개.

 

  머리털 나고 결혼식을 가본 건 어릴 적 축가 때부터 끌려다닌 걸 합하면 스무 개쯤 되겠다. 이모 많고 삼촌 많은 집 조카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월 백만 원 이상 벌어서 통장에 차곡차곡 적금 부으며 다닌 결혼식, 그러니까 내 돈으로 축의금 낸 결혼식은 열 번이 채 못 된다. 내 나이가 올해 이십대 후반이긴 하지만 아직 사회물은 한 컵밖에 안 마신 새내기란 얘기.

 

  결혼식에 다니는 일이 많아질수록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다양해졌다. 아버지가 개척교회 목사라 식장과 주례를 한 큐에 해결한 친구부터 고기 썰며 결혼식을 보게 해 준 언니들까지. 다양한 결혼이 있고 다양한 삶이 있다. 그러나 정작 내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썩 부유하지 않은 통장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지금 통장 잔고가 적금 포함 딱 천이백만원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저자는 천이백만으로 결혼식 전 과정과 월세 보증금까지 해치우는 위엄을 보여주셨다. 솔직히 천만원대로 결혼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 보통 결혼하려면 여자는 3천만원, 남자는 그 배 이상 든다고 하는 게 대부분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세요. 용의 가슴살, 라플레시아, 절대반지...'를 가르치는 요리 프로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아무튼.

 

이 책은 재미있다. 나는 '희생하라 너는 잘 될 거야' 하는 힐링 서적에도 취미가 없고 남성잡지의 쿨워터 원샷하신 에디터 말투에도 흥미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도 마찬가지인지^_^; 꽤나 담백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가 발로 뛰며 수집했다는 유부녀, 유부남들의 경험담도 쏠쏠하다.

 

그리고 '그래도 남들 다 하는데' '일생에 한 번뿐인데' 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정확히 제시해주고 있다. 양측 부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예비부부는 서로의 부모님에는 하나의 통로다. 저쪽 부모님은 내 연인을 통해 나를 보고 들으며 우리 부모님은 나를 통해 내 연인을 보고 듣는 것.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미룰 일도 아니고 결혼을 하고 둘이 부부가 되는 것은 결국 내 연인과 나이므로, 둘이 손 꼭 잡고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 결혼 선언부터 웨딩 커뮤니티, 블로그, 웨딩 관련 서적이나 박람회를 통한 정보 얻기

- 결혼식장으로 거론되는 전문 예식장, 호텔, 종교시설, 공공기관, 대학 동문회관과 전통혼례

- 신부의 로망이라는 드레스와 메이크업

- 스튜디오 촬영부터 본식 촬영까지

- 예단과 예물

- 신혼여행과 신혼집 마련부터 단장까지

- 답례품과 결혼식 후 혼인신고 전입신고 주소변경

다 읽어보고 내가 새로 알게 된 지식들은 다음과 같다.

 

- 서울시청 시민청이 예쁘던데, 하지만 난 경기도민이라 안 되겠다.

- 종교시설 결혼식은 예비부부가 모두 그 종교여야 한다고? 와, 교회 결혼식 안 해도 된다!

- ???? 스드메는 3백이 기본이라던데 더 아래로도 되는구나????

- 예단... 예물... 이건 상호 보조가 필요한데 어 음 에라 결혼할 때 고민하자

- 스촬... 아놔 스촬... 난 증명사진도 싫은데 생략할까...

 

개인적으로는 손윗형제가 3년 전에 결혼을 했다. 그때 오가는 전쟁;을 보면서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며 집단과 집단의 결합이라는 알바트로... 아니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게다가 결혼식 한번 끝났으면 됐지 왜 그리 말들이 많은지. 신랑 신부 양측 모두 멀쩡한 직장에 멀쩡한 사람들임에도 그 사단이 났으니, 손윗형제에 비해 하자 많은 나는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싶었더랬다. 사실 지금도 좀 걱정이다.

 

모름지기 윗사람을 설득할 때는 근거가 필요한 법이라. 블로그를 잘 뒤져보면 결혼하기까지 지출 내역을 엑셀로 올려주신 분들도 있다니 나중에 윗어른들을 설득할 때는 그 부분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손윗형제 결혼식 때도 느낀 거지만, 스촬은 진짜 케바케. 사진 보는 취미가 없는 사람들 결혼일 때는 딱 한 시간 동안 '식장 앞에 우리 결혼한다고 붙여놓는 사진'외에는 쓸모없는 아이템이 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예쁠 때 스튜디오 가서 커플촬영 하고 후보정을 맡기든 해서 그걸 거는 쪽으로 하고야 말겠다. 물론 결혼 상대자가 사진찍기 좋아하면 좀 더 생각해 보겠지만, 난 친구 결혼식 때 드레스 고르는 걸 구경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 본식 드레스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고르고 사진찍고 하라니 저 여기서 나갈래요 으아아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걸 굳이 다 따를 필요야 없다.  모두 천만원으로 결혼하려면 결혼업체나 예식장은 뭘 먹고 살아요. 이 부분은 여기서 따르고 꼭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그러는 거지. 일단 결혼식 때 하객이 200명정도 온다 치면 120명이 수용인원인 시민청 결혼식은 탈락이고, 자기들이 집안의 첫 결혼인 개혼이라면 양가 부모님 한복도 맞춰야 하고 그러는 거죠. 티비도 큰 거 놓고 싶으면 놓는 거고. 내 친구네 커플은 둘 다 게임계열 종사자라 웬만한 냉장고만큼 조립컴 가격이 들었다고 하고.

 

다만, 우리가 일반적이고 보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따져 보면 빠져나가고 메꾸고 깎을 여지가 많다는 점은 꼭 기억해 보자는 것.

 

내 결혼은 천만 원이 아니라 이천만 원이 되고 삼천만 원이 될 수도 있지만, 알 건 알고 하자는 거죠.

 

 

지금은 낄낄대며 신나게 읽었지만,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상대자와 이 책을 펴놓고 메모해가면서 읽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 전에도 결혼하겠다는 친구들이 생기면 꼭 선물해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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