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비언 사회주의 대우학술총서 신간 - 사회과학(번역) 580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고세훈 옮김 / 아카넷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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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페이비언"이란, 오늘말로 "점진주의자"란 뜻이다.  페이비언(Fabian)이란 이름은, 카르타고의 침략에 대항해서 지구전을 주창했던 고대 로마의 파비우스(Fabius)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당면한 사회적,경제적 모순에 대해서 급격한 혁명과 투쟁에 의해서보다는, 꾸준한 연구와 작업들을 통해 대중과 지도층을 설득해서 점차적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더 옳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자신의 이론을 완성시키고, 엥겔스가 이를 출판하였으나 정작 마르크스의 이론은 영국에서는 결국 환영받지 못했다. 극단적인 혁명에 의해서만 자본주의의 계급적 사회구조와 질서를 깨뜨릴수 있다는 발상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한 혁명보다는 점차적인 개량을 더 선호하는 영국인들로부터 거부되었기도 하지만, 사실 거기엔 사상적이고도 철학적인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수십년동안 미래 영국사회를 준비했던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두뇌집단(Thinktank)인 페이비언 협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의 주축을 이루었던 버나드 쇼는 유명한 극작가이자, 사회개혁가였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은 당시 노동문제에 관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회개혁가들로, 이들에 의해 1895년에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가 세워지기도 했다. 당대에 그들은 지성이었을 뿐 아니라, 방법적으로도 사회의 급격한 변화나 갈등을 막는 행동방식을 채택함으로서, 비록 수십여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거친 영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급격한 변혁이 초래하는 혼란이나 반개혁적 흐름을 차단하고, 한번 사회가 방향을 정하면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확실히 지식층과 일반대중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하에서 영국을 위기에서 구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페이비언들의 명백한 거부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 ....협회 출범 당시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자로 추앙받던 월리엄 모리스가 "노동자들에게는 혁명외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페이비언 협회의 명실상부한 지성으로 간주되던 쇼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동자들에게는 진정 희망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는 촉구했다. 노동자들은 의회, 지방정부 그리고 선거권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이 책은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만큼이나, 개량에 의한 변혁을 확신한 페이비언들의 연구들을 모은 것으로, 1889년에 초판이 나왔고, 계속하여 발간되었으며 저자들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버나드 쇼가 살아있던 1948년 다섯번째 최종적인 개정판이 나왔다. 페비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초석을 닦은 복지국가의 모델은 그후 전세계 여러나라로 퍼져 자본주의에 대한 중대한 수술을 단행함으로써 이제는 복지국가는 하나의 확립된 정치사상이 되어, 사실상 전후 영국사회뿐만이 아니라, 현대 복지국가의 모든 사상적인 지주역할을 담당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시간적으로는 백년이 넘는 거리가 있지만, 당시의 영국지성들이 고민하던 문제는 자본주의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이기에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의미심장하다. 더우기, 제도와 법률이 본래의 "정신성"과 "철학적인 뿌리"를 망각하고 점점 기술적이거나 사변적인 사안으로 환원되는 이 시기에, 다시 그 본질을 돌이켜볼 생각이라면, 오래되었다고 낡은 책으로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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