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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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이나 글을 읽고 있으면 가끔씩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작가는 시종일관 가벼움으로 일관하다가도 의미심장한 몸짓으로 뒤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며 '요건 몰랐지?'라는... 내가 간과했던, 사물과 사건과 현상의 다른 이면을 간파한 백어택(back-attack)을 날리곤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가... 그러나 항상 그 갑작스런 일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나는 나의 굳어버린 사고를 뒤집어 흔들어버리는 그의 공격을 늘 받고 싶다.

길을 지나다가도 개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할 정도로 개를 좋아하는 그, 뇌가 머릿속이 아닌 손가락 끝에 위치해 있다는 그(키보드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하니까...^^), 겉으로는 냉정하고 차가운 인물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연인에게 냉소적인 남자친구 연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그저 내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길, 내 잘못을 보듬어주길,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주길, 따뜻하게 위로 받기를 애절하게 원하면서도 그럴 자신도, 능력도 없었기에 마음을 닫아걸어 버린 그, 도시에서 자라나 시골의 풀내음보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더 익숙했고, 별 문제 없는 부모 덕택에 가족보다는 다른 사회적 관계에 더 몰두할 수 있었으며, 문학과는 별 관련 없는 길을 걸어왔기에 컴퓨터와 대중문화에 더 친근감을 느꼈고, 구경꾼으로 살아왔기에 80년대에 별로 빚진 것도 없었다는 그, 이런 그의 모습에서 나도 이러한 면들에서만은 그와 동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글을 아무런 관심 없는 타인의 것처럼 무심하게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독일인 같은 회색 빛으로 머리를 온통 물들인 그, 지난날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표징에서 오늘날 페티시즘의 표출구가 되기도 하는 귀걸이며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그, 가슴에 易地思之라는 칼을 품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칼이 돼버려 문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그.... 이런 그의 모습은 내가 오래도록 꿈꾸었던 바였으나 결코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서글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글이 부러운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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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 - 루이제 린저의 38가지 이야기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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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내가 무척 좋아하던 작가가 루이제 린저였다. 딱 꼬집어 이러이러 하기에 그를 좋아했다...라고 할만한 이유가 지금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의 작품만을 골라 읽으면서 친구한테 뭐라고 열심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대면서 작가예찬론을 펼쳤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는 나의 학창 시절과 함께 묻혀진 작가가 되어버렸다.스무살이 넘어서는 그의 글을 단 한줄도 본적이 없으니... 그러다 우연히 얼마전 루이제 린저가 쓴 소설이 아닌 이 산문집을 발견하고 빌려봤는데.... 글쎄, 책소개를 보고 막연하게 이 책이 루이제 린저의 삶의 다양한 모습이나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냈을 거라고 짐작해서인지 책을 읽어가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엄밀하게 말해 이 책은 삶의 면면을 그려낸 수필이아니라 신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인생상담 컬럼과 유사한 형식으로, 잡지에 실었던 인생의 제반 문제에 관한 독자와의 대화를 정리해 책으로 펴낸 것이었다.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로 다가갈 수 있는 인생의 제반 문제이기에 제목은 정말 간단하다. 사랑, 신뢰, 친구, 용기, 인내, 태연함, 독선, 죽음, 우울, 감사, 행복... 등등등 그외에도 수많은, 누구나 삶의 문제를 거론할 때 항상 등장하는 약간은 구태의연한 제목들을 가지고 저자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운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내용까지 구태의연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치 정권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도 신념으로 가득차 전혀 굽힘이 없었던 저자의 성정답게 그녀의 조언이 매우 딱딱하게 느껴진다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나 할까...

삶에 대한 조언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참으로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터인데, 자신의 일상생활의 작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서서히 어려운 인생 문제에 접근하여 정답은 아닐지라도 바람직한 해제가 될 수 있도록 조심스레 충고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수필들이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의 스폰지 케잌이라면, 루이제 린저의 이 책은 유난히 딱딱한 바게뜨빵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개인적 취향의 문제로 바게뜨의 팍팍하고 건조함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저자의 이런 건조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해법을 권고 받는 것을 더욱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아마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나는 남과 같지 않아...라는 어리석은 우월감으로 린저의 이러한 건조함을 이해하는 척 하며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은 학교를 다닐 때와 달리 현실의 삶이 그토록 팍팍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린저의 건조함과 냉정함을 쉽게 소화해내기가 조금은 힘겹다. 루이제 린저가 이 책에서 아무리 다함께 사는 세상의 지혜를 소상히 알려준다 해도, 그건 내겐 그녀의 말처럼 진정으로 도달하기 힘든, 성숙하고, 현명한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뜬구름같은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 모처럼 만난 린저의 글이 행복한 경험으로 끝나질 못 해 조금은 안타까운 맘으로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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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김정희 지음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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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뭔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때... 항상 악몽을 꾸곤한다. 그런데 그 악몽이란게, 한결같이 수학시험을 보는 상황이다. 아직 문제를 반도 못 풀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나가고, 선생님은 시간 다 됐다고 뒤에서 답안지를 걷으러 오시고... 잠깐만요... 아직요...를 다급하게 외쳐대는 내 모습... 수학시험지를 받아들었는데 하나도 아는게 없어서 0점 받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물 흘리는 내 모습... 시험을 보려고 교실에 앉아 애들 얘길 들어보니, 전혀 다른 수학 시험 범위를 공부하고 와서 거의 울상이 된 내 모습... 상황도 다양했는데... 꿈속인데도 그 좌절감이나 낭패감이 너무 커 대성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저런 악몽같은 일이 실제 상황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수학 시험 전날이면 난 늘 저런 일이 정말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늘 달고 살았다. 그랬다. 난 언어쪽에 재능을 보인 반면, 수학시간만 되면 도통 머리 회전이 안 되는, 유독 수학을 못 하고,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오만가지 변명을 해대면서 '그래서 난 수학이 지긋지긋해.'..'내가 다시 수학책을 잡으면 인간이 아니지..'라고 떠들어대는 것처럼, 나 또한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몇 십가지씩 주워섬기며 대학 입학과 동시에 더 이상 강요된 수학시간이 없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던 한심한 인간이다.

그런데... 참 우스운건.... 지금 내 생활에서 없어도 그만인, 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다가 악몽 같은 존재인 수학이 다시 그리워진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하라고 멍석 깔아놨을 때는 도망다니더니 이 무슨 늦바람인지?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이 수학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 등의 이유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한 가지는, 철학, 문학 등의 서적에 관심이 많아 계속 책읽기를 하다보면, 철학, 예술, 문학, 역사를 수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대의 철학자 중에 수학자이며, 과학자이고, 동시에 음악가인 사람들이 많았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깨달음은 수학에 다시 관심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고른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에서도 저자가 '왜 수학이 중요한가'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아마추어 수학서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 일반적인 상식과 참 어울리지 않게도 그녀는 수학이 취미이고, 수학을 좋아해, 수학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주고 싶어 수학 전도사로 발벗고 나섰다.

책 서두는 저자의 수학과 관련된 경험담과,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실려있고, 둘째 장에는 수학사의 흐름을 따라서 중요한 수학자의 소개와 그들의 업적을 (실제 수식과 도형과 증명이 잔뜩 등장한다. ㅡㅡ)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고, 마지막에는 아마추어 수학자가(말은 거창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매일 인수분해 몇 개씩이라도 꾸준히 풀고 수학적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은 모두 아마추어 수학자란다..) 되려는 사람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있다. 일반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수학 시간마다 어둠의 자식들이 되어 버리는 중,고생들을 위한 책이기도 해서 문체는 소설가의 그것 답지 않게 평이하고, 일반적인데... 아마 실용서쪽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수학을 해봐야겠다... 공부라기 보다는 취미삼아서... 이런 처음의 생각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됐다. 연습 많이 해서, 내 언젠가 꼭 멋들어지게 피아노 연주곡들 메들리로 하루 종일 연주하고 말거야...라는 실천은 없고 공상만 하는 막연한 소망처럼, 수학을 취미삼기도 사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악몽이 더 이상 수학시험 보는 상황이 아니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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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든 20인 - 세계의 여성들
박석분 지음 / 새날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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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 중 20여 명의 여성들의 삶을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가 여성 운동 단체에서 일을 했던 전력과, 과거 여권 신장을 위한 여러 저작 활동을 펼쳤다고 말씀드리면 이 책의 전개 방향이 쉽게 짐작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있는 과거 역사 속의 수많은 여성들 중 여자의 몸으로 한 나라의 군주가 되었거나,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몸바쳐 싸운 여성 운동가들, 혹은 어리석은 관습과 시대적 한계에 맞서 자기 영역을 개척한 여인들, 그리고 여성이란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안타까운 여성들 20인을 골라내 엄청난 양의 전기와 역사서, 참고서적 등을 읽고 그들의 삶을 이 책 속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답니다.

페미니즘 소리만 들어도 무조건 흥분부터 할 나이는 지났고, 그렇다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큰 것도 아니고...(아마도 하층의 삶을 마지 못해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이익은 대변하지 못 하고 먹고 살만한 유한 부인들끼리 모여 앉아 여권 운동가라는 허울 좋은 감투에 현혹되어 기득권을 쥔 남성 권력자들에게 도리어 아부를 하는 일부 부르주아 여권 운동에 관한 실망일 수도 있고... 혹은 현 세대를 남성 상위로 규정하고 전복과 파괴를 통해서만 여성 상위를 이루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운동가들에게 질려버려서 일수도 있겠죠.. 사실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알지도 못 한 타자로서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서두요..) 그냥 세계사를 연대순이나 사건순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간단하게 정리된 문헌으로서 다시 보고자 하는 맘에 선택한 책입니다. 읽다보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대부분 기억이 나서 다행이란 안도감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살고 있는 현실은 아침에 지각 않고 제 시간에 직장 가고, 점심,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고, 하는 일이 원만히 잘 풀렸음 하는 걱정들, 혹은 사람들 때문에 받은 상처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삶이 장미빛 인생으로 활짝 피어날 것인지에 관한 세속적 생각들이 우선이죠. 학교에서 배운 거창한 세계사 따위는 제가 사는 일상에는 끼어들 틈이 거의 없다가,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거나, 퀴즈 프로를 볼 때만 간간히 그 어렴풋한 존재를 드러내곤 하지요. 매우 희미하게...

책에 관해선 그다지 할 말이 많진 않네요. 저자가 방향은 그렇게 잡아다손 치더라도 많은 참고문헌을 보기좋게 정돈해서 짜깁기 한 리포트 같은 느낌인데... 중요한 건 과거 여성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살았다, 이렇게 여권을 위해 노력을 했다...라는 동어반복 외에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단 점입니다.

어쨌든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를 복습할 좋은 기회였고, 대개는 유명한 여인들이지만 여태껏 제가 전혀 몰랐던 몇몇 여성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근데 한국 여성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질 않아 궁금하게 여겼더니만 같은 저자의 한국편 여성사가 또 있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봐야지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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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나라 - 버지니아 출신 작가 데이비드 리치씨의 서울 탐험기
데이비드 리치 글.그림 / 늘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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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어떤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과 한국인에 관해 집필한 책을 출간하면, 평가 받길 좋아하는 우리네 국민성 답게 그 책을 금세 화제에 올리고, 그 책은 으레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게 되는 일이 많던데, 이 <호랑이 나라>도 같은 과정을 거친 책이지요. 저도 T.V에 소개된 걸 보고 관심을 갖고 읽게되었는데, 작은 크기에, 반은 저자가 직접 쓴 영문으로, 반은 그 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같은 글이 실려 있기에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도 앉은 자리에서의 일독이 가능하더군요.

책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예찬 혹은 한국인 예찬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 사람이 일부러 겉으론 칭찬이란 틀을 씌우고, 그 기저에는 냉소적인 풍자를 깔아 한국인과 서울의 나쁜점을 비난하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에~ 서울의 택시를 좋다고 마구 칭찬하다니!!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의 한국인과 서울 칭찬은 순수한 칭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게 되더군요. 긍정적이고 바른 마음 가짐을 가진 저자의 눈에 보이는 서울은 그의 성품대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모습의 도시였습니다. 참 당황스러웠죠. 우리의 눈에 비치는 서울은 그런 모습이 결코 아닌데.... 그의 글을 먼저 읽고 평을 한 사람들이 말을 하듯,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들에 관한 낯설게 하기...를 파란눈의 외국인인 저자가 시도하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어쩌면 저자의 나라인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 서울이 안전하고, 깨끗하고, 비.교.적!! 살기 좋은 도시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서울에 관해, 한국인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많더군요. 제 생각엔... 이 회색 수염을 기른 하얀 얼굴의 미국인 아저씨가 이토록 서울 예찬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상당히 운이 좋아 질이 좋지 않은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거니와, 외모에서 풍기는(저자에겐 미안스럽지만 백발에 대머리니까...) 위엄(?) 덕분에 한국적 정서상 어딜 가나 함부로 대하는 이가 없었던 탓이겠고, 둘째,... 좀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백인에 한해서, 특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방인에 대해서는 예우가 깍듯한 한국인들에게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겐 별로 베풀지도 않는 친절을 그는 많이 받았기에 이러한 칭찬 일색의 책을 펴낼 수 있던 이유가 있지 않나 혼자서 그저 생각해봅니다. 더구나 영어 식민지인 한국에서 그가 영어를 내세워 거둬 들일 수 있는 상당한 금전적 소득 덕분이라도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겠지요. 근데... 미국보다 우리와 지리적으로나 유색인종이라는 점에서나 가까운 동남아 불법 체류 노동자한테 서울과 한국인에 관해 글을 써보라고 하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예찬론을 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흠... 제가 너무 부정적인데다 저자의 의도를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곡해한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그러나 이유야 뭐든, 저는 이 책을 쓴 저자의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만은 진심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우리 주변에 너무 보잘 것 없고, 흔해빠진 것들에 관해 감사할 기회를 잠시나마 가지길 바란다면, 또 쉬운 영어로 독해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운율을 잘 맞춘 쉬운 영시를 몇 편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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