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창세기 - 1.2권 합본
데이비드 롤 지음, 김석희 옮김 / 해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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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의 <문명의 창세기>는 그의 전작 <시간의 풍상>에 이어 구약성서 창세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방대한 고고학적 발굴과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문헌기록에 대한 치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입증해 보이는 야심에 찬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야심 차다고 하는 것은 성서학 내부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창세기 1-11장까지는 이른바 역사이전의 시대, 원역사, 혹은 선사시대라고 분류해놓았기 때문이다. 역사이전의 시대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역사적 실재(實在) 여부를 따질 수 있는 학문적 대상의 범위를 벗어난 시대라는 뜻인데 사실 그 말은 역사적 실재를 확실하게 입증할만한 역사적 유물의 부재, 혹은 그것에 대한 무지를 감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도대체 역사 이전의 역사라는 게 말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역사 이전이고 어디서부터가 역사인가? 저자는 그동안 성서학과 역사학이 창세기의 1-11장에 대해선 원역사시대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그 역사적 실재성을 탐구하려는 학문적 접근 대신에 오직 믿음이라는 관문을 통해서만 접근할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다고 비판하고 이는 학문적인 무사안일주의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시간의 안개 속에 가려진 창세기의 역사적 실체의 복원에 야심에 찬 삽을 뜨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시간의 안개를 헤치고 1권에서는 창세기의 낙원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아,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 문명이 동터오던 창세(創世)의 시간으로 떠난다. 그리고 2권에서는 고대 이집트문명의 기원이 메소포타미아의 땅에 일찍이 선진문명을 일구었던 수메르 문명이었음을 밝혀내고 수메르문명의 뿌리에 노아 홍수 이후 시날(쉬나르-수메르)땅에 정착해서 도시문명을 일군 노아의 후손 셈의 자손들이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수메르문명에서 발견되는 지구라트(계단식 신전)는 산악지대였던 에덴을 떠나 평야지대로 내려온 아담의 후예들의 신전이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은 이 지구라트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1.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었나?
저자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바탕으로 에덴의 실제 위치를 추적한다. 네 개의 강(피숀, 기혼, 히데겔, 페라트)의 기원이 되는 강이 흐르며 온갖 나무와 식물이 풍성한 그 곳은 어디인가? 고대지명과 지리적 특성에 대한 연구 결과 성서의 에덴은 오늘날 이란의 북서부에 있는 아드지 차이(옛 이름 메이단) 골짜기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2.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수메르문명의 고대도시 우루크의 왕이었던 길가메쉬의 영웅담을 그린 길가메쉬서사시에는 성서의 홍수 이야기를 떠올리는 홍수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길가메쉬는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신들에 의해 영생을 얻고 신처럼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쉬팀(수메르어는 지우수드라)이라는 영생자를 찾아 나선다. 에아는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신들의 모의를 우트나피쉬팀에게 누설하고 우트나피쉬팀은 에아신의 권유대로  방주를 지어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결국 이 사건은 수메르문명에 대한 발굴 결과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중동지역에 토기와 문자가 출현하기 직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의 고대문헌들이 한결같이 대홍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과 충격을 안겨 주었을 이 대홍수 사건은 수메르인의 서사시 길가메쉬서사시에 기록되었고 이것은 다시 고대 바빌로니아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로, 히브리문명의 노아 홍수 이야기로 전해지게 되었다. 

3.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문명을 일으킨 자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나일강의 압바드 와디와 함마마트 와디에 대한 발굴을 토대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은 당시 이미 선진적인 도시문명을 이루고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집트 동북부지역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쳤던 수메르인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와디의 암각화는 수메르인들이 역청을 칠한 갈대배를 타고 페르시아만을 건너와 나일강을 거슬러 이집트의 북부지역으로 올라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암각화에 새겨진 배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네모나고 이물과 고물이 높으며 뱃머리에 동물의 뿔의 형상을 올린 것으로 당시 수메르인들이 제조한 배의 양식과 동일하다. 이런 모양의 배를 사람들이 끌고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모양이 나일강의 와디 암각화에 새겨져 있는 것은 수메르인들이 페르시아만을 타고 건너온 배를 나일강까지 운반하기 위해 배를 끌고 사막을 횡단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바로 이들이 고대 이집트 선왕조 시대 위대한 파라오문명을 일으킨 지배엘리트 집단이라고 본다. 이집트는 바로 이 시기 갑작스런 문명의 도약을 이루게 되는데 이전에 볼 수 없던 원통형 인장이라든가, 상형문자의 출현, 그리고 흙벽돌건축물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수메르문명에서 시기적으로 앞서 출현한 것들이다. 에덴에서 놋땅으로, 다시 시날 땅으로, 산악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의 기름진 평야지대로 내려온 아담의 후손들이 우루크와 같은 도시국가건설을 통해 위대한 수메르문명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를 건너 이집트로 건너가 토착종족과의 전쟁을 통해 지배권을 확립하고 위대한 피라오문명을 이룩한 셈이다.

저자는 창세기가 신화의 옷을 입고 있는 듯 하나 그 옷 속에는 우리가 이제껏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진정한 역사가 숨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문명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성서 창세기의 이른바 원역사시대의 이야기가 단순히 설화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대인의 진실한 기록이었음을 알 게 해준다.
나는 이 책이 성서를 맹목적 신앙의 눈으로만 보는 이에게는 성서의 역사적 진실에 눈뜨는 감격적인 경험을 안겨주고, 성서를 소설책 정도로만 여기는 이에게는 성서의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는 수천년 역사의 무게와 숨결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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