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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수학 4컷 만화 - 수학사를 뒤흔든 결정적 한마디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수학과학 6
이인진 지음, 주영휘 그림 / 자음과모음 / 2025년 8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이미 증명했지만, 여백이 부족해서 쓸 수 없다.”
수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말은,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가 남긴 전설적인 문장이다.이 얼마나 건방지고 기고만장한 발언인가. 화딱질이난 여러 수학자는 머리를 쥐어짜며 도전하였지만 어떠한 증명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그의 문제는 무려 350년이나 학계의 숙제가 되었고, 결국 1994년에야 앤드루 와일스라는 수학자에 의해 풀렸다. 단 한 문장으로 수많은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던 페르마. 이 놀라운 일화가 귀여운 4컷 만화와 함께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 줄 수학 4컷 만화』는 바로 그런 책이다. 4컷 만화라는 간결한 형식을 빌려, 총 26명의 수학자와 그들이 남긴 명언, 그리고 수학적 발견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수학이라는 학문에 흥미를 잃어버린 중·고등학생, 또는 이제 막 수학의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다. (저학년이 읽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한 계산과 공식 암기가 아닌, 수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상을 통해 수학을 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신이 내린 아이디어 천재’라는 부제 아래 뉴턴, 데카르트, 푸앵카레, 튜링 등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특히 뉴턴이 첨단 장비 하나 없이 책상에 앉아 중력과 우주의 원리를 분석했다는 사실, 데카르트가 방 안을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 좌표를 떠올렸다는 에피소드는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일화는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라는 감탄을 넘어, 수학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수학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2부 ‘오차를 모르는 완벽주의자’에서는 아르키메데스, 오일러, 가우스 같은 거장뿐 아니라 낯선 이름들도 등장한다. 예컨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나이팅게일은 통계와 수학을 활용해 병원의 사망률을 낮추고 정책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수학이 단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아, 이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은 조금씩 녹아내릴 것이다. 도대체 수학을 배워서 어디다 써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될 수 있다.
3부는 고대의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을 조명한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히파티아, 칸토어 등 철학과 수학을 넘나들던 사상가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히파티아처럼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사회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했던 인물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수학은 오직 ‘남자 천재들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깬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의미가 깊다.
책은 ‘한 줄 명언’과 ‘4컷 만화’라는 독특한 구성 덕분에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각 장의 시작에는 수학자들의 명언과 그를 압축적으로 그려낸 만화가 실려 있어 독자가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이론이나 수식은 과감히 건너뛰고, 이해를 돕는 삽화로 대체해 독서의 부담을 줄였다. 덕분에 수학에 흥미가 없거나, 심지어 수학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철학자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수학과 철학을 동시에 배운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수학을 단지 ‘공부 과목’으로만 생각해온 독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덧붙여,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16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저자 이인진 선생님의 진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수많은 학습만화와 웹툰을 그려온 주영휘 작가의 센스 있는 그림 덕분에 이 책은 지루할 틈이 없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4컷 만화가 각 장의 시작뿐만 아니라 끝에도 있었다면 내용을 복습하거나 마무리하는 데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읽은 후 수학에 흥미를 느낀 독자들을 위한 심화버전이 따로 출간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순한 입문서를 넘어 수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하루에 수학자 한 명씩 읽어도 좋고, 단숨에 다 읽어도 좋다. 중요한 건, 이 책이 수학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다. 계산기 없이도, 공책 없이도, 오직 호기심만으로 수학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수학은 더 이상 차가운 숫자들의 집합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열정과 상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인문학적 탐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