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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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손원평 작가는 나에게 소설 『아몬드』로 처음 다가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이야기였던 『아몬드』는 ‘원북원부산’ 선정 도서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신선한 소재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손원평이라는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고, 이후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인의 집』, 『프리즘』, 『서른의 반격』, 『튜브』에 이어 이번에 만난 신작은 『젊음의 나라』다. 마침 서평단 특별가제본으로 조금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먼 듯 가까운 미래,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인이 된 사회를 무대로 한다. AI 로봇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젊은이들은 기계와 경쟁하다가 일자리를 빼앗기기 일쑤다. 저출생과 고령화는 이미 현실이지만, 손원평은 이를 한발 더 나아가 ‘곧 닥칠 현실’로 그려낸다. 소설은 스물아홉 청년 나리의 일기로 펼쳐진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나리의 일기는 하루하루 그가 마주한 삶의 무게와 작게나마 품은 희망을 기록한다.

주인공 나리는 자신보다 더 어린 세대와 AI로봇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다. 숨이 막히는 현실 속에서 가상공간으로 도피해 남태평양 어딘가에 실재로 존재하는 인공섬 ‘시카모어섬’을 꿈꾼다. 한때 쓰레기로 뒤덮였던 이 섬은 세계 곳곳의 초부유층 노인들이 호화롭게 여생을 보내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나리의 목표는 이 섬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 꿈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해 나리는 국내 최대 노인복지시설 ‘유카시엘’에 상담사로 들어간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섬과 연계되어 있어 이곳에서의 경력이 섬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나리는 유카시엘에서도 가장 상위 등급 시설인 ‘사파이어 레이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지만, 한 입주 노인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계급이 낮은 시설로 강제 발령된다. 나리는 점점 열악한 환경으로 내려가면서도 스스로 더 낮은 곳으로 옮겨가며, 노인 돌봄의 민낯을 목격한다. 나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사회를 살아간다. 노인요양병원 간호사이면서 동시에 노인 혐오 시위를 주도하는 친구 엘리야, 고액 연봉을 받으며 ‘선택사(합법적 존엄사)’를 집도하는 재희, 북에서 내려와 불법 선택사를 알선하는 수현까지—이들의 모습은 극단적 고령화가 불러온 윤리적·사회적 균열을 그대로 드러낸다.

손원평 작가는 이번에도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노인을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 일자리를 잃은 청년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선택사의 제도화는 인간다운 죽음을 보장할까, 아니면 편리한 정리일 뿐일까? 소설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을 통해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나리라는 인물을 통해 세대 간 대립뿐 아니라 ‘가족’의 의미도 다시 묻는다는 것이다. 나라의 가족은 형식적 혈연으로만 묶여 있지 않다. 어린 시절 배우라는 꿈을 심어준 민아 이모, 그를 불편하게 대하는 친모 유진, 그리고 한때 가족이었던 이모와의 끊긴 연은 복잡한 감정의 지도를 만든다. 작가는 이 가족 이야기를 통해, 유사 가족·대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변형 속에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젊음의 나라』에서 선택사는 가장 논쟁적인 장치다. 더 이상 죽음을 은밀히 숨기지 않고, 존엄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해버린 사회. 그러나 그 ‘선택’은 과연 온전히 개인의 것일까?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이 디스토피아는 죽음마저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나리는 이 모순을 온몸으로 겪고, 결국 시카모어섬에서 치러지는 마지막 면접에서 자신이 본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독자들은 그 고백을 통해 이 소설이 말하려는 진짜 질문과 맞닥뜨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소설이 ‘유토피아’를 완성된 이상향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카모어섬은 완벽하지 않다. 그것은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돌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예술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그래서 언젠가는 조금은 더 나은 세상에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젊음의 나라』는 통계와 데이터로만 예측하던 고령화 사회의 그림자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덕분에 독자는 숫자가 아닌 얼굴과 이야기를 만난다. 손원평 작가는 이번에도 묻는다. 진정한 미래는 무엇으로 만들어질 것인가? 기술의 발전? 자본의 논리?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와 믿음?

올해의 마지막 날, 나리가 일기에 적은 소망처럼—상황이 나아지기를, 희망이 사라지지 않기를—이 책을 덮으며 나는 조용히 빌어본다. 이 불편한 미래가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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