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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지다정 외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평점 :
단편소설의 매력은 ‘짧고 강렬한 울림’에 있다. 방대한 세계관이나 수십 권짜리 장대한 서사로 승부하는 장르와 달리, 단편소설은 단 하나의 사건에 집중한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압축적인 전개, 마지막 한 줄까지도 예리하게 벼려진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찌른다. 마치 점 하나 찍는 듯한 결말로도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그래서 단편소설은 종종 ‘문학의 에스프레소’라 불리기도 한다. 짧지만 진하다. 잠시 들러 마시는 커피 한 잔 같지만, 혀끝에 남는 여운은 오히려 더 깊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이런 단편소설의 진수를 선보여왔다. 벌써 12번째다.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매번 색다른 시도, 다양한 장르,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2,900여 편이 접수됐고, 그 중 단 5편이 최종 선정됐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기성 작가부터, 무명의 신예 작가까지 대거 참여했다. 예심은 강지영, 정명섭, 조영주 소설가가 진행하였고 본심과 최종심은 박인성 평론가와 배상민 소설가가 진행하였으며 수상작가로는 지다정, 최홍준, 김지나, 이건해, 이하서 작가 총 5명이며,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호러, 미스테리, 좀비, SF, 드라마로 5편 모두 다른 장르로 만들어 졌다.
첫 번째 작품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주인공 영서가 이사 간 아파트 이름이 ‘돈망시민아파트’. 얼핏 들으면 돈까스 망치의 줄임말처럼 들리는 이 기묘한 이름부터 분위기가 묘하다. 그런 곳에서 매일 저녁 7시 40분,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쿵쿵쿵쿵’ 소리. 그런데 윗집도, 아랫집도 비어있다. 도대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은 이 단순한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주인공 영서와 친구 소영이 그 소리를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전개는 단편소설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짧지만 강렬한 반전,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두 번째 작품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고령화 사회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좀비물이라는 장르로 풀어낸 수작이다. 노인을 돌볼 인력이 부족해지자,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좀비화’시켜 동결해둔다는 설정. 도발적이지만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다. 마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리며 겪었던 사회적 불안을 빗댄 듯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다. 인간 존엄성과 사회적 책임, 생명 윤리까지 아우르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사회풍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세 번째 작품 [청소의 신]은 팬데믹 시기의 모텔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생활밀착형 소설처럼 보이지만, 점차 스릴러적 긴장감을 높여간다. 모텔이라는 한정된 공간, 방역과 청소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밀도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을 겪은 지금, 이 소설은 더 큰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는 미스터리와 생태 다큐멘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장어의 생태적 신비를 인류 기원과 맞물려 풀어내는 이 소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닌 ‘장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신선함이 돋보인다. 과학적 탐구와 문학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독자에게 묘한 경이감을 안긴다. 단순한 ‘생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진화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 [톡]은 바다에 잠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소수의 생존자가 폐쇄된 잠수정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그린 이 작품은,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인간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물리적 공간의 한계가 심리적 압박감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은 독자로 하여금 숨죽이게 만든다. 미래적 배경이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결국 ‘인간’이다. 제한된 자원, 좁은 공간,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5편의 작품은 모두 장르도, 색깔도, 주제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측할 수 없음’. 단편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 이 요소를, 올해 수상작품집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짧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한 편 한 편 모두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또한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이라, 부담 없이 구입해 읽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장르적 실험, 사회적 메시지, 문학적 상상력까지. 매번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깊이를 선사해왔다. 올해도 그랬고, 아마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문학이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이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그 이야기를 가장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단편소설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혹시 여러분도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올해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수상작품집을 추천한다. 단 몇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