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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시모나 체카렐리 그림, 김영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평점 :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출간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림책으로 출판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가 대학생 때였으니 20년이 나도 읽은 지 20년이 지났다. 읽은 지 20년, 출판된 지 50년이라니 이제 [모모]는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된다. [모모]라는 책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온 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항상 눈에 띄는 곳에 있었는데 책을 읽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런지 [모모]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났지만 그림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억과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 신사들과 도둑이 훔쳐 간 시간을 찾아주는 주인공 모모에 관한 이야기.
작은 고대 원형 극장의 폐허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을 가진 작고 여윈 몸에 누더기 옷을 입은 모모가 살고 있었다. 모모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다.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있을 때마다 모모를 찾아갔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된다니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모가 엄청나게 똑똑해서 모든 사람에게 똑소리 나는 충고라도 해주는 걸까? 뛰어난 말솜씨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나? 아니면 문제가 있을 때 현명하고 공정한 판결이라도 내려주나?’
모모는 세상 어느 아이들처럼 그런 것은 당연히 못했다. 하지만, 모모만의 특별한 능력인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능력, 이 능력이 모모를 많은 사람들이 찾게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인지 아마 성인이 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아집에 갇혀서 말을 듣지 못하거나 나이가 많다고 말을 듣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고 말만 하거나 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작가는 모모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마을에는 '도로청소부 베포'라 불리는 늙은 할아버지가 있다. 말과 행동이 느려 사람들은 바보 취급 하며 싫어하지만 비질 한 번 한 번을 정성 들여 천천히 한다는 것과 자신만의 생각을 길게 몰두하는 것을 모모는 알고 있기에 모모는 베포 할아버지를 좋아하며 서로를 아낀다.
“있잖니, 모모야. 때로는 우리 앞에 길이 아주 길게 나 있어. 너무 까마득해서 도저히 끝까지 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지 ... (중략)...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면 조바심이 나서 서두르게 돼. 더 빨리, 마음이 아주 급해지는 거야. 문제는 그렇게 서두르는데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길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지. 그러면 와락 겁이 나서 아등바등 더 기를 쓰게 된단다. 하지만 결국은 숨이 차서 한 걸음도 더 갈 수 없게 되고 말아. 길은 갈 길은 아직도 아득한데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하면 안 돼 ... (중략)... 절대로 길을 한꺼번에 생각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냥 다음에 내디딜 한 걸음만, 다음에 한 번 숨 쉴 것만. 다음에 하게 될 비질 한 번만 생각해야 해. 계속 그렇게. 바로 다음에 할 거 하나만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일이 즐거워지면서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단다.”
베포는 현자처럼 모모에게 말을 했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라,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생각나는 말이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하고 마는 인생의 진리를 알려준다. 일이 너무 많아서 겁이 났을 때, 큰일이 나에게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며 우왕좌왕 거릴 때, 일이 꼬여서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김영사에서 동화책으로 출판한 [모모]는 소설책에서 등장하는 회색 신사 일당들과 호리 박사에 대한 내용은 과감히 삭제했다. 동화책의 분량으로 볼 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며 이야기의 핵심만 전달한다고 봤을 때는 아이들이 읽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모모]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들이 읽어야 될 좋은 책으로 보인다. 모모나 베포 할아버지가 하는 행동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재출판된 [모모], 기회가 된다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길 바란다. 천천히 하나씩 느리게 설명해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