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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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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정상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문예출판사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여전히 창궐하고 있다. 희망 한 조각더 얹어도 모자를 판에 지난해 2020년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전망을 해본다. 마무리와 변화 없이 그저 시간만 지나가는 것 같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정치권에서 터진 성범죄 사건들과 그것으로 인한 2차 가해들이다. 2차 가해가 직접적인 가해 이외의 것이라 넓게 해석한다면 서울시민인 나 자신도 분명히 2차 가해의 피해자이다. 그만큼 이 문제로 인해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고 올해도 여전히 이 고통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으로 내가 오랫동안 관여해왔던 마을 잡지 모임에서는 8월에 예정된 여성과 마을 활동강연이 취소되었고, 그것을 도화선으로 이 모임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이것은 성차별과 세대 문제, 여성 인권의 정치화가 뒤섞인 문제로 발전했다. 또한 그동안 진보라 자칭해왔던 민주당에서 일어난 성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는 서울시와 민주당 그리고 남인순 의원을 비롯한 여성 의원들의 처세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남성 중심의 편견들(꽃뱀, 간택, 노랑머리 변호사, 증거 없음, 공소권 없음 등)를 대하며 시민 미만의 시민, 여성 미만의 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분노같은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될 불필요하고 부정적인 언어가 되었다.

 

자칭 대한민국 성범죄 2차 피해자인 나는 다행히도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를 벽초에 읽었고 이 책에서 느껴지는 분노가 반가웠다. 저자 이라영은 그녀가 머물렀던 미국 작가 21명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세상의 소외와 고통에 대해 방음벽을 해체하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독서에세이답게 진작 몰랐던 재능있는 여성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들의 삶까지도 서술해 놓았다. 그들의 피 같은 작품으로 나는 아주 많이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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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여왕 -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
해럴드 셱터 지음, 김부민 옮김 / 알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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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읽다

 

책을 특히 소설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어떤 삶에 관해서 알아가는 일이다.

그것이 1인칭 시점이던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던지 아니면 어두침침한 미로 같은 카프카의 소설이거나 짧은 찰나의 충격을 가하는 이언 맥큐언의 단편이거나 그 주인공들의 삶에 천착하는 일은 꽤나 흥미진진하다. 독자인 나는 그저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고 들여다보며 내 삶과 다르거나 같거나 하는 심리적 경험을 나눈다.

 

논픽션 소설 <지옥에서 온 여왕, 남자 도살자 벨 거너스>에도 제목처럼 어떤 여자가 남자를 도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벨 거너스에 대해서도 그녀의 도살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마치 저자 헤럴드 섹터가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사건이었다, 100여 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벨 거너스 사건의 연구자들은 벨의 사악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벨 거너스가 사춘기에 겪은 것으로 보이는 잔혹한 폭행 때문에 남성을 중오하게 되었다거나, 병적인 탐욕이 벨 거너스를 이윤을 추구하는 푸른수염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벨 거너스가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내보인 사악함은 이러저러한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연 벨 거너스가 불 속에서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미스터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성경에서 죄악의 신비라 부르는 미스터리와 말이다.’ -440p-

 

1970년대 연쇄살인범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인 1902년에서 1906년 사이에 연쇄살인이라는 죄악을 저지른 벨 거너스는 분명 지옥에서 왔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악의 화신일 것이다. 그녀가 겪은 지옥은 무엇이었을까. 악취가 났던 가난이었을까. 어린 나이에 당했던 폭력과 유산이었을까. 이 미스테리한 악을 서술하면서 작가 헤럴드 섹터는 존재하는 증거자료와 사료를 철저히 사용한 듯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래서 악을 집행하는 벨 거너스도 악의 현장을 대하는 형사와 주변 인물들도 모두 이 사건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 책을 읽는 이 시대의 독자마저도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인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헤럴드 섹터의 능숙한 필력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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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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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느낀 동질감

 

첫 번째 읽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읽으면서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갑자기 너무나 동질감을 느껴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성...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영혜의 기억 속에 있는 개의 비참한 죽음, 아버지의 폭력, 무심한 가족으로 표현된 모든 것들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영혜 남편의 생각은 보통 남자,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의 속마음을 영혜가 몰랐을 것 같지 않다. 언니 인혜의 소극적이고 다소 비겁한 처세에 대해서도 영혜는 충분히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혜는 탈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나마 나무나 꽃이라도 되고 싶은 영혜의 마음은 오히려 희망적이다. 형부와의 정사는 영혜가 정상인이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한 인간이고 여자로 건강하고 밝게 살 수 있었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베란다로 달려간 영혜의 형부처럼 어느 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면, 갑자기 주어진 삶을 거부할 권리는 <채식주의>를 읽고 나니 더 정당해 보인다. 일상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폭력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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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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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최근에 구입해서 읽었다. 사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안 읽어도 어떤 스타일인지 무엇을 말할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고 집에도 많이 있다. 그래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그의 나이가 86세라는 사실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기를 간절히 그리고 불안하게 기원하면서 주문서를 넣었다.

20여 년 전의 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운명의 춤등을 읽으며, 바라보며, 참으며, 생을 사유하고자 애쓰며 불안한 젊은 시절을 살아냈다. 그를 이해하기란 너무 어려웠지만  매력있고 흥미로웠다. 그의 문학론, 에세이 등을 사 모았던 것을 보면 얼마나 간절하게 이해하고 싶었는지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이 노작가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의 축제>를 통해 나에게 작별하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 거야, ’무한히 좋은 기분‘, unendliche Wohlgemutheit 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99 페이지-

 

 

네 주위를 둘러보렴.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건 아니란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진리 중에 제일 진부한 진리야. 너무 진부하고 기본적인 거여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을 정도지.’-132 페이지-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147페이지-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고 했던 작가가 이젠 그것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귀뜸해주고 있다. 용기를 내서 무의미를 사랑하라고 속삭인다. 아직도 그의 작품 속에서 헤매는 나는 이제 처음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그의 기분 좋은 유머와 내 의지가 아닌 삶을 사는 것, 하찮고 의미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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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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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파이 이야기>를 읽고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듭니까?”라는 질문 앞에 던져졌을 때, 영화<그래비티>를 보고 영화 관람이 아닌 우주에 다녀온 듯 그저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제발 누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문학평론가의 시선으로 본 영화 이야기이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 이야기는 편안하게 읽힌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영화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 전달해주는, 말 그대로 전령사 헤르메스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런 것이 저자 신형철의 힘이고, 전문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표지에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라는 문구가 있다.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만큼이나 정확하게 해석하고자 분투하는 사람도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일은 일종의 처방전과도 같았다. 고통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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