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3-104 일찍부터 자리 잡은 모순된 자존심이 그녀의 따듯한 동정심을 강하게 거부했다. 인간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쓰레기보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그런 종류의 자존심이다. P121 인간은 언제나 너무 멀리까지 보려고 한다. 그것은 때로는 병적인 집착에 가까웠다P122 인간의 언어는 별들의 중력과도 같다. 사람들은 수많은 타인과 부딪치며 여러 언어의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통합해나간다. 다양한 언어가 뭉칠수록 끌어당기는 힘도 덩달아 강해진다P162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버림을 받고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처절하기 울 수는 없다고......P188 그럼 인간이든 AI든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두가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득하게 먼 별에게서도. 이 책은 카카오페이지 × 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이고, 지난번 재미있게 읽은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가 있어서, 어쩌면 좋은 작가를 새로 만날 수 있다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기대하고 보았다. 매번 창비의 청소년 문학이나 젊은 작가상 등을 통해 반짝이는 신예 작가들을 만나고 있어 이번 책은 소개만 보고도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우주선이 만들어가는 서툴지만 용감한 인간 관계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면서 우리는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어설프게 복수를 한다거나 아니면 자기연민 혹은 자괴감으로 이어져 어둠을 헤매는 순간이 늘 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건 어쩌면 용기있는 행위다. 내 안으로 숨어버리는 게 사실 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바탕엔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경험과 이해관계를 초월한 용서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솔직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는 뻔했지만 인간의 모습을 배워가는 AI와 인간이지만 어리고 미숙한 룻의 우정이야기를 지켜보며 내내 흐뭇한 마음이었다. 엄마의 마음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아마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그런 심정으로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정제된 단어에 담겨있는 뜻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고 행간에 머물며 시인의 침묵을 바라보는 것은 늘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 고요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없을 때 좋아하는 시인의 시 한 구절만 봐도 책 한권을 읽는것보다 든든하기까지 하니 시라는 건 요즘 말로 가성비가 참 좋다고 할 수 있다. 김호균이라는 시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제목이 특별하게 다가와서 읽게 된 시집이다.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 의미 자체도 그렇고 왜 과거형일까도 궁금했다. 지금의 시인은 더 이상 물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여러가지를 사유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시집을 볼 때 먼저 목차를 보고 책 제목과 같은 시를 찾는다. 특히나 모르는 시인일 때 더욱 그러한데, 시인과 편집자, 출판사가 모두 동의하여 책의 제목으로 붙일 만큼 자신있거나 꼭 보여주고 싶은 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차에서는 같은 제목을 찾지 못해서 처음부터 읽어나가다가 두번째 시의 첫번째 문장에서 책 제목을 발견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제목으로 만든 그 시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물 밖에서 개펄에 들어가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시인. '세상을 사뿐사뿐 가지고 노는' 소금쟁이와 '온통 멍 빛'인 물안을 떠올리며 시집의 초반부터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시를 읽어나갈수록 이 시인은 참 우직할 정도로 열심히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미련해보일 정도로 다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어가 돌아오는 가을 사람들은 다 상처투성이'라도 '발 딛고 사는 지금 이 순간을 두드려 보아야' 한다는 시인의 목소리에 우리는 왜 이토록 힘들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묵묵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시인의 나이 정도가 되면 나도 그렇게될지, 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달아놓은 채 시집을 덮었다.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시집이 생각난다면 추천하고 싶고 주변에 읽어주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