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정제된 단어에 담겨있는 뜻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고 행간에 머물며 시인의 침묵을 바라보는 것은 늘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 고요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없을 때 좋아하는 시인의 시 한 구절만 봐도 책 한권을 읽는것보다 든든하기까지 하니 시라는 건 요즘 말로 가성비가 참 좋다고 할 수 있다. 김호균이라는 시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제목이 특별하게 다가와서 읽게 된 시집이다.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 의미 자체도 그렇고 왜 과거형일까도 궁금했다. 지금의 시인은 더 이상 물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여러가지를 사유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시집을 볼 때 먼저 목차를 보고 책 제목과 같은 시를 찾는다. 특히나 모르는 시인일 때 더욱 그러한데, 시인과 편집자, 출판사가 모두 동의하여 책의 제목으로 붙일 만큼 자신있거나 꼭 보여주고 싶은 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차에서는 같은 제목을 찾지 못해서 처음부터 읽어나가다가 두번째 시의 첫번째 문장에서 책 제목을 발견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제목으로 만든 그 시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물 밖에서 개펄에 들어가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시인. '세상을 사뿐사뿐 가지고 노는' 소금쟁이와 '온통 멍 빛'인 물안을 떠올리며 시집의 초반부터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시를 읽어나갈수록 이 시인은 참 우직할 정도로 열심히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미련해보일 정도로 다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어가 돌아오는 가을 사람들은 다 상처투성이'라도 '발 딛고 사는 지금 이 순간을 두드려 보아야' 한다는 시인의 목소리에 우리는 왜 이토록 힘들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묵묵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시인의 나이 정도가 되면 나도 그렇게될지, 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달아놓은 채 시집을 덮었다.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시집이 생각난다면 추천하고 싶고 주변에 읽어주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