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책 - 일상이 허기질 때 밥보다
김은령 지음 / 책밥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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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번역가이자 잡지사 기자인 이 책의 저자는

일상이 허기질 때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그것도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한가로이 책을 읽으라는 게 아니라

밥 먹는 것 제쳐두고 책 먼저 읽으라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헐~"이다.

 

소설가 한창훈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존재의 근원이다.

그는 바다에서 허기를 충족하고 포만감을 얻는다.

그래서 그는 수시로 바다를 찾다가 아예 바닷가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다.

저자 김은령에게 책은 무엇일까?

그녀에게 책은 삶에 위로와 자극을 주는 정겨운 동반자다.

일상은 지리멸렬하고 실망과 체념의 연속이지만

그나마 책이 있어 지혜와 통찰과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듯

책을 읽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고 홀로 뒤쳐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변함없이 밥을 먹듯 책을 읽는다.

 

그러면 <밥과 함께 책>이거나

<밥 먹듯이 책>이 아니고

왜 하필 <밥보다 책>일까?

밥은 누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는다.

배가 고프면 먹을 걸 찾는 건 학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본능이다.

하지만 책 읽는 건 대단한 노동이다.

정신 노동만이 아니다. 책을 오래 읽으면 눈이 침침하고 어깨와 허리가 쑤시고 아프다.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제 돈으로 책 사서 다 읽고 독후감 쓰는 것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밥보다 책> 정도의 각오를 해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밥보다 책>은 독서를 권하는 책 제목으로서는 딱이다.

 

이 책에는 수 십 권의 책을 읽은 저자의 맛깔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소설, 에세이, 여행서, 요리책... 장르도 다양하다.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느끼며, 남은 게 무엇지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독서가 훈련이듯 책을 읽고 감상을 정리하는 것도 훈련이다.

내가 읽은 그 책을 저자는 이렇게 읽고, 이런 것을 건져냈구나를 비교하는 것,

그것이 독후감 도서를 읽는 맛이자 묘미다.

 

저자의 글은 참 진솔하다.

MSG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천연의 재료를

온갖 정성을 다해 버무려 내놓은 어머니 밥상 같다.

그래서 고맙고, 반갑다. 

나도 저자처럼 열심히 밥보다 책을 읽으며 살다 보면,

마음을 다해 책 밥상을 차려내다 보면,

언젠가 내 부고장에 이렇게 쓸 수 있게 될까?

"beautiful day, happy to have been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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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ryoung 2019-09-2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매혹자
예선영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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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봄에 출간된 책을

이제서야 알게 되어 구매했는데,

책을 받아든 순간 모양새가 너무 예뻐 펼치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들여다보기만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는 사이

제 마음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점점 가득 차 올랐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뭔가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삶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차인데,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애잔한 글과 해맑은 그림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렇듯

잃어버렸던 서정과 에너지, 그리고 생의 의지와 희망을 선사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인 예선영 님은 스스로를 삶의 매혹자라고 부릅니다.

사전적 의미로 매혹이란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린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바로 매혹자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녀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책을 읽으며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아주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주변과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자신이 겪은 사건들에 대해 표현하면서 감정을 드러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도 비리지 않은 맛이고,

어색하지 않은 자태이며,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함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뜨거워집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살아 있어서 참 좋다고.

사랑이면 늘 옳다고.

우리들의 평화로운 꿈은 다 이루어질 거라고.

그러니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고,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 마세요.

별이 한 개도 빛나지 않는 밤이라고.

밤이 많다고 염려하지 말아요.

우리가 빛나고 있으니까요.

여기 사람이 빛나고 있어요."

 

"뜨거운 밥 한 그릇.

아! 밥이 달아요. 밥이 맛있어요.

시국이 풍비박산 험해도

나는 밥값 하고 살아요.

밥 먹으며 밥값 해요.

밥값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죠.

만사가 형통할 사람은 밥을 바르게 먹어요."

 

"사람이 다치거나 아프면

시간이 해결 안 해 줍니다.

사랑이 우리를 낫게 합니다."

 

"초조한 사랑, 애가 타는 사랑, 네가 하늘이야 하는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런 사랑이 힘이 좋지요.

사랑하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 우리 말해요."

 

어떠세요?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글들입니다.

제 말이 맞다고 느끼시죠?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미친듯이 사랑하다가 지구별에서 사라질 거예요."

책을 덮으며 저자는 다시 한 번 이렇게 인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어찌 저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선영 작가는 글만 쓰는 분이 아닙니다.

그림도 잘 그립니다.

책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글만큼 많습니다.

관객들을 꿈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림들입니다.

샤갈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닙니다.

고흐처럼 온갖 색깔을 조화롭게 펼쳐 놓았습니다.

고갱처럼 은유와 절제가 녹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예술사가인

페터 라우스터는 자신의 책 <사랑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의 비밀은 영혼의 깨어 있음과 자유이다.

그런데 깨어 있음과 자유의 비밀은 용기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들을 똑바로 선입견없이 정확하게 바라보는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작가 예선영 님을 가장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성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다들 그녀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제게 마법 같은 일이 만약 일어난다면,

아니 혹여 꿈이 현실이 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책 속으로 들어가 예선영 님과 함께

미친듯이 사랑하다가 지구별에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그렇게 홀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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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존중 성교육 - 십대 우리 아이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줄 부모와 교사를 위한 성교육 길라잡이!
김혜경 지음 / 성안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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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성교육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봐서 무슨 뜻일까 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교사로서,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십대 아이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어느덧 아이들 스스로 바른 가치관을 갖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는

저자의 강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한 말이었다.

 

이 책은 이론을 다룬 책이 아니다.

책상 위에서 연구를 거듭해 쓴 책도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딪히고 웃고 울면서 터득한

체험과 지혜로 가득찬 책이다.

이런 선생님과 부모님과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그런 교사와 부모와 어른들로부터

교육받고 사랑받고 돌봄받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교육 문제와 십대들의 성문제 상당 부분이 해결되고

맑고 건강하고 투명해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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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길일대와 임진록
현병주 지음 / 바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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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편집자의 의지와 역량이 또렷이 드러나는 책을 접했다. 책을 읽는 재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저자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다. 우선 저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현병주. 처음 접하는 저자다. 전두환 장군이 대한민국의 정권을 틀어쥐기 꼭 100년 전에 태어난 조선의 사내다. 서점을 운영하고 출판사를 경영하던 그는 조선의 보통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문물과 신학문을 접하고 수십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 비범한 조선 사내의 문장을 접하며 책보다는 사람에 더 주목하게 된 건 비단 나만이 아니리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조선의 사내들인 유영모와 김교신을 떠올렸다. 결은 다르지만 난세를 살다간 거목을 만나는 일은 한편 두렵고 한편 즐겁다. 유영모와 김교신에 비해 현병주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안다고 하기는 뭔가 쑥스럽다. 그의 다른 저작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편집자의 집요함과 끈질김이 기다려진다.

 

  내용 또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상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서술이다. 1592년부터 무려 7년 동안이나 계속된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역에 대한 저자 나름의 객관적 묘사가 이어진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이 우리 민족에게는 조선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영웅인 반면, 일본에게는 자국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룩한 위인을 살해한 범죄자로 취급받듯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일본인들에게는 전국을 통일하고 오랜 숙원이었던 대륙 진출의 꿈을 실천에 옮긴 영웅인데 반해, 한국인들에게는 국토와 백성을 처참하게 유린하고 온 나라를 피비린내로 물들게 한 전범일 뿐이다. 이토록 극명하게 대비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을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과연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진왜란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온전히 파악해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본시 아내와 불합하던 끝에 히데요시가 누이를 준다는 것이 비위에 당기어 먼저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주었던 히데야스는 도로 찾아오기로 하고, 히데요시의 누이를 데려왔다. 히데요시는 기어코 이에야스를 교토로 불러들이려 하여 다키카와 다쓰토시를 보내어 자기 어머니를 이에야스의 집에 볼모로 내어줄 터이니 오라하는 말을 전하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이쯤 하는데야 구태여 고집할 것이 없다 하여 단출한 일행을 이끌고 교토에 들어가 히데요시를 찾아보는데, 갑주를 벗어버리고 예복으로 히데요시의 앞에 나가서 관백에게 보이는 예를 보였다.

 

   히데요시가 2인자인 이에야스를 얻기 위해 끈질기게 삼고초려 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편은 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각종 문서와 소설,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은 그 처참한 실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7년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조선의 강토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요행히 살아남은 질긴 목숨에게는 초근목피조차 사치였다.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고, 부모가 자식의 살덩이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산목숨의 주린 배는 최소한의 규범도, 윤리도, 상식도, 체면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조선은 국가로서의 모든 기능이 무너져 내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그것은 나라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의무가 있다. 임진왜란에서 영웅 이순신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대해 유심히 살펴야만 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 이후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는 또 다시 병자호란의 참화를 맞기에 이르며, 300여 년 뒤 경술국치의 치욕을 잇달아 맞이하게 된다. 역사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같은 모습을 띤 채 반복된다.

 

   조선의 남도는 수백 년 동안 전쟁이란 것은 꿈에도 해보지 못하던 일이라 홀제 칼날을 번득이며 총을 놓으며 쳐들어오는 일본 군사 앞에서 수령 방백들이 억지로 민병대나 붙잡아들여 막는다는 것은 모래를 던져 폭포를 막으려 하는 셈이다.

   경성에서는 일본 군사가 부산에 상륙하였다는 급보를 받고 조정은 일변으로 도체찰사 유성룡을 내세워서 남로로 장수를 분발하는데, 가운데 길목은 순변사 이일이 내려가고, 왼편 길로는 방어사 성응길이 내려가고, 오른편 길로는 방어사 조경이 내려갔다. 조방장 변기는 조령 목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유극량은 죽령을 지키게 하고, 팔도순변사 신립은 남도를 순회하며 장수들을 지휘하기로 하였는데, 군안을 들여놓고 군사를 부르니 들어오는 군사가 모두 시정의 작란군(장난꾼)들이다.

   쓰나 못 쓰나 몇 명씩 거느리고 떠난 뒤에 신립이 떠나려 하니 군사도 없고 말도 없어서 군사는 뒤에 보내주기로 하고 대신 집의 말을 빌어 타고 나섰다.

 

   일국주의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삼국의 입장을 고루 반영하여 객관적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기술했다고는 하나 현병주 역시 임진왜란이 있은 지 300여 년이 지난 뒤에 태어난 사람이었기에 전쟁을 문자적으로 파악했을 뿐 경험적 혹은 실존적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가 300여 년 전에 태어나 조선 팔도를 누비며 일종의 종군 기자 역할을 했었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임진왜란에 관한 불멸의 역작 하나를 갖게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만한 저작을 통해서도 우리는 역사 앞에 홀로 마주앉는 두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문명을 배반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이라 일컬어지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4동 입구에 폴란드어와 영어로 쓰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에스파냐 출생의 미국 철학자 겸 시인이자 평론가)의 경구다.

   매일 같이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이 도도하게 타오르는 요즘, 이 말이 주는 의미와 무게가 칼날처럼 뼈와 살 깊이 와 닿아 한없이 쓰리고 아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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