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독일작가의 작품이라 하면 약간은 생소하다. 아무래도 과가 독일어 관련이다 보니 독일문학 하면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괴테나 쉴러를 떠올리곤 하니 말이다.(사실 이 둘의 작품이 정작 독일에서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허균과 정철의 작품을 끈덕지게 읽고 연구하고 있겠는가!) 어느 정도 그런 딱딱하고 다가서기 힘든 고정관념을 깨준 독일작가가 쥐스킨트(좀머씨 이야기)였는데, 이 작가 또한 거기에 일조했다. 책이 일단 예쁘장하다. 독일 현대 문학의 현주소를 알고자 한다는 명분을 핑계삼아 충동적으로 사긴 했지만 만족스럽다.

그러나 내용이 혹시 브리짓류(브리짓존스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요즘 그러한 아류가 너무나 많이 출판된다는 점이 짜증날 뿐이다)가 아닐지 걱정이다. 직장인에 미혼에 여자이야기. 그리고 약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아아..역시 충동구매였나..생각하고 책장을 넘기는데 책 귀퉁이 어딘가에 신문에 개재된 서평이 있다. “당신이 욕실에 이 책을 들고 들어간다면 몇 시간 뒤 손과 발이 쭈글쭈글해서 나오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강 이러한 내용의 글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대로 되었다. -_-;

내용 자체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가볍다. 제목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 전화. 얼마나 소소하고 일상적인,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 애를 태웠을 일이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인연의 끈을 어떻게든 잡아 끌고자 안간힘을 쓰는 여자의 모습이 가련하고 귀엽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남자는 여자의 이런 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겠지.. 오해와 오해가 뒤섞여 직접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결국은 호탕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자, 직장인, 소소한 문제로 고민하는 주인공들에게 화려한 연예계나 사교장 같은 세계가 가끔 등장하는 것은 약간 거슬린다. (브리짓의 저자의 또 다른 작품, 설레브에서도 그러하지 않았는가…혹시 여자의 부질없는 허영심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그러한 배경을 집어넣은 것은 주인공을 좀더 부각시키고자 한 의도였을까. 단지 이 작가의 작품 뿐 아니라, 비슷한 소재를 주제로 한 소설에서 이러한 소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용상으로 보자면 거슬릴 데 없이 물 흐르듯 훌륭하게 술술 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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