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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대 그리스 신화 판도라 이야기.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만큼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지고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제우스가 창조한 최초의 여자 ‘판도라’는 남자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창조물이자 ‘아름다운 재앙’으로 불린다. 인간 에피메테우스가 신의 창조물인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실수는 결국 판도라가 에피메테우스의 저택에 있는 항아리를 열게 되면서 재앙으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온갖 것들이 봉인되어 있었던 항아리, 판도라는 그 안을 확인해보려는 유혹으로 시달리다가 결국 살짝 열어보게 되고 인간 세상의 재앙이 시작된다. 죽음과 병, 질투, 증오, 배신과 같은 수많은 해악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사방에 흩어지게 된 것이다. 급히 그 항아리를 닫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그 안에 아직 존재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이번 작품 《허즈번드시크릿》은 앞선 판도라 이야기를 모티브로 구성되었다. 남편이 남긴 편지 하나를 열어보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몰입감이라는 꼬리를 물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내용의 반전과 긴장도는 마치 판도라가 금단의 항아리를 열어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던 것처럼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유혹을 던진다. 그리고 신화 속에서 유일하게 항아리 속에서 남아 있었던 ‘희망’을 전한다.
3개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묶어 하나의 공통점으로 만든 소설 《허즈번드시크릿》은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해악들이 그러하듯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증오, 배신, 비난, 불륜 등 다소 무겁고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결코 간단하게 쓰일 수 없는 내용이기에 보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소재다. 그리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결론적으로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그 삶에 반영해보기에도 충분하다.
3가지 파트 세실리아 편(편지봉투.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테스 편(남편인 윌과 사촌 동생 펠리시티의 불륜), 레이첼 편(어머니이자 시어머니, 손자의 할머니의 역할을 해내는 레이첼. 그리고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짐)은 초반에 각 각의 독립적인 내용 요소와 주제로 시작되나 점차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서로 연결된다. 마치 3개의 색을 가진 실들이 서로 엮이고 꼬여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줄들은 점점 더 복잡하게 조여 온다. 하지만 꼬인 실은 결국 풀어지듯 증오와 배신의 감정들은 곧 화해와 용서로 승화되며 그 실타래가 풀린다.
주목해서 본 부분은 존 폴의 판도라 상자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비밀 편지 내용이다. 놀라운 반전을 가졌던 부분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 전개는 마치 식스센스와 같은 반전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편지를 발견하고 절대 읽지 않겠다고 생각한 세실리아. 하지만 신화 속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던 것처럼 그녀는 곧 편지를 읽게 된다. 그렇게 등장한 재앙에 그녀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침을 느낀다. 책의 서두에서 ‘베를린 장벽’이 계속 등장한 것은 곧 닥칠 세실리아의 자신의 벽을 나타내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치밀한 내용 전개와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 의미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세실리아의 마음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친 것처럼 오싹하고 무시무시한 변하지 않는 사실로 돌아왔다.
- 책의 내용 中 237쪽
그리고 그 반전 속에서 귀중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작 범인은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것. 편견은 곧 진실 된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다는 가치 말이다. 이 또한 판도라의 해악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괴물의 얼굴이야. 저 눈 좀 봐. 사악하고 시꺼먼 동굴 같잖아. 심술궂게 말려들어간 저 입술 좀 보라고. 레이첼은 벌써 비디오를 네 번이나 보았고, 볼 때마다 그렇게 확신했다.
- 책의 내용 中 239쪽
인간인 이상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판단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쪽을 택할지가 중요한 것. 《허즈번드시크릿》은 우리에게 실수를 하더라도 그 후의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잘못 된 것은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용서하고 화해할 것을 강조한다. 비가 내린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그것을 안고 나아가도록 말이다.
이런 증오의 물결이 지나가면 또다시 잔잔한 사랑이 찾아올 거다. 그 사랑은 진지하고 잘생긴 남자와 함께 걸으며 느꼈던 젊은 신부의 단순하고 넘치는 사랑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안다. 자신이 그가 한 일 때문에 존 폴을 얼마나 미워하든, 자신은 언제나 그를 사랑할 거라는 걸.
- 책의 내용 中 529쪽
신화 속 판도라 상자 안에 희망이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는 늘 그 희망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기대가 없으면 주어진 고통과 절망이 너무 무겁고 아플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씨앗이 자라 결국 사랑과 용서가 싹틀 것이다. 이러한 새싹들이 자라서 우리 세상이 더욱 푸르고 아름다워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