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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좋으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 향과 사랑에 빠진 조향사가 들려주는 향의 세계
정명찬 지음 / 크루 / 2024년 4월
평점 :
1장 향수 브랜드의 비하인드 스토리
2장 향이 발전하게 된 역사
3장 향수 계열 10가지
4장 향 고르고 사용하기까지의 사용법
5장 숨겨진 향의 힘
내가 즐겨 뿌리는 향은 러쉬의 FRESH AS와 조말론의 ENGLISH OEAR & FREESIA이다. 두 브랜드 다 향수로 유명하지만, 조금 더 대중적인 샤넬과 딥디크 등의 향수가 선물로 주고받기에는 제격인 거 같다. 1장은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법한 브랜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낸다.
"저는 잘 때 샤넬 넘버 5를 입어요"라는 문구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마릴린 먼로에게 "잘 때 무엇을 입나요?"라는 무례한 질문을 한 기자에 대한 지적이고 우아한 답변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영어로 향수는 wear 을 사용하고 한국어로도 향을 입히다, 착향 하다 같은 말을 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사실에 첫 장부터 흥미로움이 증가했다.
니치 향수 브랜드 딥디크가 파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생제르망 34번가에 위치한 딥디크 매장을 지나면 장미 정원에 들어선 듯한 환상을 선사한다고 한다. 파리에 가게 된다면 꼭 방문해 보고 싶다. 특히 무화과 향로 유명한 ‘필로시코스’ 는 그리스에서 보낸 여름의 추억을 향으로 담은 것이라고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보니 궁금증이 더 커져 그리스의 풍경을 향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어졌다.
르라보는 사람의 체향에 따라 평이 극명하게 갈리는 브랜드로 전부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조향사 정신을 존중하는 르라보는 특정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서울의 시트롱28, 파리를 표현한 바닐라44, 뉴욕의 튜베로즈40 등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도시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서 미국에 간다면 르라보의 향인 튜베로즈44는 꼭 구매하고 싶다.
리더십으로 뛰어난 나폴레옹은 사실 오 드 코롱이라는 향수의 덕후였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오 드 코롱은 시트러스와 허브로 상쾌함으로 시작하여 우디로 마무리를 잡아주는 향으로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떤 향은 맡는 이에게 차분함과 시원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와 가장 유사한 향은 독일 쾰른의 'farina 1709'이라 구하기 어렵지만 국내에서는 4711 오 드 코롱도 비슷하다도 하니 관심이 있으면 맡아보면 좋을 것 같다.
2장은 향수의 길고 긴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향수를 뜻하는 영어인 perfume은 라틴어 연기를 통하여가 어원이며, 연기를 피워 신과 통하려 한 것이 향수의 첫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키프로스 섬에는 가장 오래된 향수 공장이 있고, 그곳의 향수 테마파크에서는 자생하는 식물과 복원한 토기를 활용해 향수를 만드는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정보를 향수 덕후인 친구에게 알려줘야겠다.
3장은 10가지의 향수 계열을 설명해 주는데, 좋아하는 향을 찾고 싶다면 이 파트를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바란다. 과거 향수 공방을 방문하여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 바질과 사과향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블렌딩한 향수 중 과연 내가 어떤 계열을 더 선호하는지는 헷갈려 했었다. 향을 잘 모른다면 단어만 들었을 때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찬다. 심지어 향을 맡고 있음에도 이게 무슨 향인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이 파트에서는 추천 계열, 추천 옷차림, 추천 상황 총 3가지의 예시를 들며 향을 설명해 주기 때문에 쉽게 감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 필자는 시트러스와 아로마틱 계열의 향과, 구어망드 계열의 향을 좋아한다는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요거트 향이 나는 헤어 미스트를 사용하는데 이건 무슨 계일인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하거나 씁쓸하고 달콤한, 즉 디저트와 비슷한 향들은 모두 구어망드라는 책 속 설명 덕분에 궁금증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책에서 얼그레이나 우롱차 같은 음료 향수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일본 니치 향수 브랜드 시로의 '얼그레이' 향수를 언급했는데, 구어망드 계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나는 바로 구매해버렸다. (후에 향수가 온다면 추가로 몇 글자 더 적어보겠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향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분하고 단정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베르가못의 향긋함으로 시작하여 오크모스로 끝나는 시트레 향이 적합하다고 하여, 모던 시프레의 대표주자인 샤넬의 31 뤼 깡봉을 맡으러 가볼 예정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여정은 언제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맛집 탐방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도 서점에서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구절을 발견하는 것도. 다음은 취향(趣香) 탐방을 떠나보아야겠다.
좋아하는 향을 찾는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이제는 그 향수를 어떻게 보관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알 차례이다. 4장에는 향수 레이어링 공식, 향수의 유효기간 등 슬기로운 향수 생활을 위한 각종 꿀팁들이 적혀있다. 그중 필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점은 향은 보관만 잘하면 잘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집에 기간이 지난 향수가 하나 있어 버리려던 중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무사히 쓸모를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더하여 좋아하는 향을 즐기고 싶다면 목과 귀, 다른 사람에게 오늘의 향을 어필하고 싶다면 팔꿈치와 허리, 향이 증발하며 남기는 흔적을 느끼고 싶다면 발목이나 무릎 뒤 오금이라는 향수 뿌리기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다. 새로운 만남이 있다면 이 사실을 참고하여 허리에 향을 뿌려봐야겠다.
필자는 복숭아 향을 맡으면 초등학교 6학년 하교 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나고 흥에 겨운 어린 나를 스쳐 지나가던 같은 동에 사는 3~4살 정도 언니에게서 나는 향이었다. 향수라는 것을 잘 몰랐던 나이라 그랬을까? 중고등학생은 모두 저렇게 뒤돌아보게 하는 향을 하나씩 가지게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 이렇듯 특정한 냄새는 기억을 불러온다. 이 효과는 프루스트 현상이라 하며 향이 가진 숨겨진 힘에 대해 설명하는 장이 바로 마지막 5장이다. 향은 향기뿐만 아니라 기억을 불러오고 첫인상에 영향을 주며, 환경에 변화를 일으킨다. 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향을 빼고 싶을 때도 우리는 향을 활용한다. 화장실 냄새를 없애고 싶다면 디퓨저보다는 습기도 제거되는 향초가 제격이며, 즉각적으로 향을 없애고 싶다면 스프레이 타입의 탈취제도 좋다고 한다. 이 사실은 냄새로 고민하던 모든 이들에게 해답이 될 것 같아 독후감에 꼭 적고 싶었다.
요즘은 생일선물과 집들이 선물에서 향과 관련된 제품이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책을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저자는 개성이 트렌드가 된 현대사회에서 향이 자신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향은 우리의 삶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향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맛있는 빵 가게를 지날 때도 케이크에 촛불이 꺼질 때도 비가 오고 난 뒤 축축한 흙냄새도 모든 것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향수를 즐겨 뿌리지 않더라도 이렇게 늘 가까이 있는 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즐겁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향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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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향을 찾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 향기를 선물하는 건 어쩌면 하루하루를 지켜 내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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