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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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하지만 한없이 무거운 말, ‘사랑’. 나는 늘 사랑하고 있지만 한 번도 사랑이 쉬웠던 적도, 사랑을 알았던 적도 없다. 사랑을 잘 몰라서일까, 사랑이 두렵기 때문일까. 김소연 시인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완성해가는지를. 김소연 시인의 통찰력에 늘 감탄한다. 때문에 내가 무지하고 두려워하던 ‘사랑’에 대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었다.

p.13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잃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한 권의 책을 다 읽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두 키워드는 ‘사랑의 본래의 얼굴’ 그리고 ‘사랑의 적’이다. 사랑의 내면에서 스며나오는 사랑의 적들로 인해 나는 단 한번도 진짜 사랑의 본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외로움과 상처만이 사랑의 적은 아니다. 사랑의 또다른 모습이라 생각했던 두근거림과 설렘 기대들 역시도 사랑의 본래 얼굴은 아니었다. 김소연 시인의 글을 통해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랑의 적들이었음을, 그 적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p.223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 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가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 서로 다른 지점에서 공감하고 아파할 것이란 것이다. 각자 가장 두려워한 사랑의 모습이, 그로 인해 새겨진 기억이 서로 다를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김소연 시인이 사랑에 대한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 얻은 것들을. 어른의 삶에 대하여,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랑의 단상들에 대하여, 그리고 사랑과 다른 얼굴을 한 사랑함에 대하여. 그리고 기대하게 되었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를 바탕으로 시작될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래서 매일매일 기다린다. 오롯이 외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외로워져서 감각들이 살아나고 눈 앞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지나가는 바람의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녀만의 시간을. - P122

사랑은 아떤 것인지를 잘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불가해한 사람을 겪고 크나큰 낙담을 하게 된 사람일 것이다. 낙담 뒤에는 무엇이 올까.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사랑 앞에서 지혜로워 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세상 곳곳에 그 대답은 넘치지만 끝끝내 그 대답들이 성에 차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모든 지혜를 바쳐 사랑에 대해 감각할 기회가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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