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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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귀족 가문 그리고 패전이라는 배경으로 가즈코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나오지, 소설가 우에하라. 이 소설은 전쟁 후 현실에 적으하지 못하는 이 네 사람의 안타깝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라는 인물은 흥미롭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점점 생명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사라졌던 동생 나오지의 등장 후 더 궁핍해져만 가는 삶 속에서 그녀는 '사랑'이라는 끈을 잡는다. 처음엔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6년 전 한 번 만난 우에하라를 갑자기 사랑한다고? 
가즈코는 우에하라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 소설 속 주가 되는 인물들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채 기울어져 가지만, 가즈코만은 혁명을 삶에 혁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p.52 다른 생물들에게는 절대로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것. 그건 바로 비밀이라는 거죠. 어때요?

가즈코와 나오지는 비밀을 가진다. '사랑'이라는. 같은 비밀을 지녔지만, 누나인 가즈코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자신의 삶에 혁명을 일으킨다. 결과가 무엇인든 상관은 없다. 그 자체가 그녀를 살게 한다. 반면 나오지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비밀을 간직한채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비밀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지 몰라도 비밀만으로 인간은 살 수 없다. 나오지는 수많은 방황과 괴로움 속에서 결국 자살한다.

p. 76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라고 그 공책에 쓰여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불량, 삼촌도 불량, 어머니조차 불량하게 여겨진다. 불량하다는 건 상냥하다는 뜻이 아닐까.

소설 '사양'속 인물은 하나같이 불량해보인다. 기울어져 가는 삶 속에서 불량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량하기에 현실을 버틴다. 불량하기에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상냥하다. '사양'의 인물들이 정말 애처롭게 느껴졌다. 패전 후 일본의 상황이라는 배경을 떠나 어떤 시대나 존재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언제가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를 닮은 나오지와 우에하라의 삶 또한 이 소설을 애잔하게 만드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 삶과 인간에 대한 다자이 오사무만의 표현들도 아름답다. 지금, 이 가을에 읽기에 너무 좋은 소설이다.

p.107 파괴 사상. 파괴는 슬프고 애처롭고 아름답다. 파괴하고 다시 짓고 완성하려는 꿈. 일단 파괴하면 완성할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해야만 한다. 혁명을 일으켜야만 한다.


p.118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이런 게 행복감이라면 폐하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지금, 행복한 거다. 고즈넉한 가을날 아침. 햇살 따사로운 가을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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