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산 북스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추억하고 느끼며 편안해지는 시간을 선물하는 사람! 김창완

"쌓아 놓은 헌 책들 사이에서 찾아낸 글 묶음 속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풋사과 냄새가 났습니다. 몇몇 구절에서는 삶의 흔적들도 묻어나더군요. 그물 사이로 빠져나갔어도 하나도 아쉬울 게 없는 이야기들 일지도 모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잠깐의 프롤로그에서 만으로도 한편의 근사한 글을 적어 놓으니 이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민 없이 툭툭 써내려 같을 법한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고 읽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 무언가를 곱씹게 된다. 사람 김창완이 보인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의 김창완 님이 떠오른다던가..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한다.

p.158 학교를 오가는 일은 익숙해졌는데 한 가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종소리를 듣고 어느 것이 수업을 알리고 어느 것이 끝을 알리는지 구분할 재간이 없었다. 노는 시간인 줄 알고 나오면 다른 아이들은 다 교실로 들어가고 수업 받으러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곤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러곤 "창완인 자연인이야" 하며 속삭이셨다.

받아쓰기보다 더 어려웠던 종소리를 미소로 깨우쳐 주셨던 선생님. 선생님께선 말과 글 뿐만 아니라 자유와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

이런 사랑을 받으셔서일까?

p.170 꿈이 있지만 재능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때도 저는 그게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노자는 벽이 방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벽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절벽이다''마지막이다''내 재능은 여기까지다' 이렇게 생각하는 대신 자기 방이 생기는 거지요. 한계를 못 느꼈다면 내 방도 없습니다.

막연히 잘될 거야 해봐! 가 아닌 이미 당신이 만들어 온 당신의 방이 있는 것만으로도 방을 키울 자산을 가진 것이라는 위로를 해 준다.

p.175

고 놈 영리하게 생겼다.

...

훌륭한 사람 될 거지?.

...

어른들이 그렇게 물어본다고 냉큼 '장군이 될래요. 아니 대통령이 될 거예요." 하고 대답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한마디만 잘못 뱉었다 하면 어른들은 주책없이 떠벌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분명 나이 많은 어른인데 아이의 마음을 너무나 꿰뚫고 말한다. 눈 만 감고 있으면 대여섯 살 혹은 초등학교 2~3학년가량의 김창완이 떠올랐다. 어 뭐지? 이렇게 종횡무진 삶을 현실과 과거와 추억을 넘나들며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p.202

"자유에 대해 자유롭게 쓰세요"

"그러면 책상에 관하여 책상같이 쓰라는 건데... 야, 그거 골 때린다. '자유'에 대하여 자유롭게 쓰라는 게 자유를 주는 거냐 뺏는 거냐?

이 문장은 읽는 동안 피식 웃음이 났다. 너무나 김창완식이었다.

p.238 <별> 가장 마음에 남는 이야기이다.

꼬부랑 논둑길을 달려 미나리꽝이 있는대쯤 오면 누렁이가 달려 나온다. 자기는 진종일 놀았는데 나는 학교 다녀오니까 미안했는지 꼬랑지를 오른쪽 왼쪽으로 신나게 흔든다.

누렁이와 이렇게 소통을 잘 하다니 이분 머릿속엔 누렁이 친구도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 누렁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할멈에게 남겨진 세 살배기 아기가 '화 '라는 감정을 배우고, 엄마가 없는 걸 느낀 뒤 눈망울에서 떨어진 눈망울이 개미들을 헐레 벌떡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이입시키며 그려낼 줄은 몰랐다. 세 돌 지난 아이였다는데...

"엄마 보고 싶어?"라고 할멈이 물을 때마다 자는 척을 했다. 눈 감고 자는 척을 하면 눈물이 귓구멍 쪽으로 흘러내렸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꿀떡하고 눈물을 삼키면 "안자니? 달이 참 좋다." 하고 방문을 열어 젖혔다.

달빛은 시큼했다.

쉰 밥 냄새가 났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할멈의 웃음처럼 허전했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달은 서산을 넘어갔다. 그렇게 엄마 생각이 사라지면 잠이 들었다.

할멈이 간 곳을 이내 찾았다. 할멈이 간 곳은 내 여섯 살의 봄이다. 오늘도 별이 빛난다...

먹먹하고 눈물이 고였다.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 분은 먼저 계산이라는 것을 하는 법이 없다. 이쯤 살아온 사람이라면 잘난 척도 좀 하고 거들먹거리고 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많은 것을 이루어내 살아왔는데도 있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인 게 내심 부러웠다.

나는 김창완이라는 사람은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과식을 하면 체한다. 내가 자유에 얹혔을 때도 너무 많은 자유가 내 몸을 상하게 했다. 죽을 수 있는 자유까지 꿈꾼다면 그건 육체의 병이 아니라 정신까지 망가진 상태다. 재가 자유의 급체로 앓고 있을 때 친 친구가 물었다.

"너도 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냐?

...

자유에 대하여도 김창완만의 기준이 있었다. 자유는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충만감이라 믿는 대서 기인한다고 하며 조화로움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자 자유 줄게. 누려봐 하고 툭 하고 던지고 잡아 챌 수 있는 것이 자유는 아니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김창완 님의 삶의 뿌리가 되었다는 가장 사소한 이야기들. 결국 가수, 배우, DJ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삶을 이야기해주는 철학가이기도 한가보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는 기적. 이 책 안에 그 소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설레어 책장을 넘기고 가벼움 속에 숨겨진 무거운 진실이 느껴질 때 숙연해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에 나도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뾰족한 수가 없다. 넘치는 자유를 먹고 체하셨다는데, 그러면 자유분방할 것 같은 김창완 님도 사실은 적당한 자유 속에서 적당한 통제를 당하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게냐?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삶도 있구나.. 노래에도 김창완이 있고, 연기를 하는 데에도 그냥 김창완이 있다. DJ김창완도 있다. 애쓰지 않아도 하고 있구나 싶은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 이미 애쓰는 거네.

4부 삶을 무게로 느끼지 않기를 <제목 자체가 위로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무엇인가 인생의 발목을 잡을 때는 삶을 돌아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어쩌다 가수가 됐을까?" 오래전에 들어선 낯선 길을 내처 따라왔을 뿐입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지나온 길도 숲이고 앞으로도 온통 숲입니다. 음악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노래에도 주름살이 파인 것 같습니다.

하면 할수록 조금은 더 알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이 예술인지도, 인생인지도...

이렇게 매 순간 값진 이야기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웃으며 시작했다가 먹먹함으로 마무리되는 에세이집.

책장을 열고 글을 읽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는 그 시간 동안 시간 여행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내가 만들어 둔 어떤 기분 좋은 곳에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김창완

세상 복잡한 요즘 어디 한 곳 한눈팔 곳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