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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강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인 형인 징역을 살며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로 책은 시작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엄청난 흡입력을 느꼈고, 이 두꺼운 책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소설을 읽고 어떠한 해답도, 정답도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책 <편지>의 결말도 이럴 수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살인을 저지른 가해자 가족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포기해야하만 했던 주인공의 젊은 나날들이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어 무언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고, 슬프고,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하여 답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가해자의 가족의 삶이 아닌 피해자의 가족의 삶으로 돌아가니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타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그 피해자는 무슨 죄며 그 슬픔을 오롯이 쥐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의 삶이 어떨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은 두 입장, 두 개의 삶 모두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참으로 와닿는 문장들이 너무너무 많았는데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정당하나, 그 죗값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에 저자도 큰 고민을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를 집어들고는 너무 묵직해서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 초입부터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은 영화 초입부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도살인을 저지른 형의 사유는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살인을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강도짓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을 저질렀고, 그렇게 형은 살인자가 되었고,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 동생은 살인자의 가족이 되었다.
사회는 나만 빼고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렷을 적부터 몸만 써오는 일을 한 형은 더이상 일하기도 힘들었고, 남아있는 동생은 본인보다 명석했기에 꼭 대학에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놈의 돈이 왠수였고, 돈을 구해야하는데 일을 못하니 강도짓을 계획한 것이다.
우선, 강도짓부터가 잘못됐다. 그리고 살인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형이 왜 강도짓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감되어 나의 마음을 계속 되집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쁜짓을 저지른 사람인데 왜 그사람한테 동요가 되냐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이미 강도살인은 저질렀고, 형은 감옥에 갔다. 그리고 남은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동생이다.
책은 이제 살인자의 가족의 시점에서 많은 걸 이야기해준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살인자만 생각했지 그 가족을 들여다본적이 없다.
살인자의 가족 역시피해자 가족 못지않게 굉장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사회적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했고, 그것은 본인 뿐 아니라 본인의 가족, 본인의 자녀까지.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 연결될지 알 수 없었다.
첫사랑도 실패했고, 결혼했으나 이웃주민이 없어졌고, 자녀에게는 친구들이 없어졌다.
나는 가해자의 가족도 이렇게 죗값을 받고 있구나하는 마음에 이 동요되는 심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가 말해주듯 전기회사 사장의 말이 정답이다 싶었다. '어쨌든 죗값을 치뤄야 한다는것'말이다.
죄는 내가 아니여도 가족임으로 감내해내야한다는 것이 뭐라 정의내릴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제 뉴스에서 살인소식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득 뉴스에서 한 살인자의 어머니가 본인의 아들에게 최고로 높은 형량을 달라는 이야기를 한 소식이 떠올랐다.
아들은 살인을 왜 저질렀을까. 아들의 형량을 최고로 많이 달라고 부탁한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의 살인의 사유도 <편지>에서의 형의 사유같은 이유에서 비롯됐을까.
감옥에서 형은 동생에게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보낸다.
형은 늘 그 속에서 매우 평온해보이기까지하고, 고생하나 없는 듯한 평온한 말투로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사회에서 온갖 불평등을 온몸으로 느낀 동생은 나혼자 그런 고통을 감내하는 것 같아 그런 형을 이제 받아줄수가 없어 가족임을 거부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형도 동생만큼 본인의 죄에 고통받고 있었고, 결국 이 모든 사단은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로 돌아왔다.
동생의 등록금을 위해 강도살인을 한 형의 잘못인지, 형의 고민을 알아채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못한 동생의 잘못인지, 아니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자신들의 잘못인지, 그것도 아니면 가난한 부모의 탓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 형제가 이런 경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죄는 벌어졌고 이 죗값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디까지 해야하는지도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다.
정말. 책의 마지막 동생의 말에 마음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