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 정식 한국어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초판(2016년)을 읽고 남겨둔 메모를 올려놓는다.


1.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서술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고백이나 독백이 아닌, 대화로 (재)구성된 하이젠베르크의 이 자서전은 자신을 둘러싼 타인을 설정하고 그들과의 관계와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백으로 이루어진 여타 자서전과 대비된다. 이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언급되는 플라톤의 대화편인 <티마이오스>는 저자가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에서 드러내는 자연과학적 세계상에 대한 천착에 몰두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뿐만 아니라, 이 자서전에 드러난 형식적인 영향 역시 반영한다.


2. 또한 '부분과 전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인간의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미시적인 영역과 거시적인 영역의 양 극단의 방향에 대한 탐구를 암시하며,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변증론에서 언급하는 두번째 이율배반과도 연관된다. 그래서 총 2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한 가운데 "양자역학과 칸트철학"이라는 장이 들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칸트가 그의 학문에 끼친 중대한 영향을 드러낸다. 이 점은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여러 번 인용하는 실러의 경구("왕[칸트]이 공사에 착수하면 일꾼들[칸트의 주석가들]에게 일감이 생긴다", <Xenien>, 53번)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3. 구체적으로 위의 장에서 제시되는 하이젠베르크가 회고하는 칸트주의 철학자와 자신을 포함한 양자물리학자들 간의 대화에서 이들은 고전물리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관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지각을 객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만약 대상이 감성에 주어져서 그것이 지성에 의해 사유될 때 성립하는 것이 경험이라는 칸트식의 설명을 “보이는 대로 아는 것”(202쪽)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으며 칸트 역시 이에 동의한다고 가정한다면, 칸트가 맞닥뜨릴 수 없었던 새로운 ‘원자적 현상’을 관찰자가 완전히 객관화할 수 없다는 점이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칸트주의자를 논박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칸트는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경험영역에서는 더 이상 ‘사물 자체’ 혹은 … ‘대상’이라는 모델에 의거하여 지각된 것을 정리할 수 없음을 예견할 수 없었어요. 간단히 말해서 원자는 더 이상 사물이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에요"(205쪽). 칸트가 말하듯이 우리는 ‘사물 자체’를 지각할 수는 없는 반면,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는 직관과 개념의 형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지만, 위와 같은 새로운 미시적 차원의 '현상'에서도 칸트의 설명이 여전히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다시 말해 ‘라듐B원자’라는 미시적인 물체를 더 이상 ‘대상’ 혹은 ‘객관’으로 부를 수 없다면, 이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의 형식뿐만 아니라 인과성과 같은 범주를 통해 대상 혹은 객관으로 삼을 수 없는 어떤 물체가 실제로 관찰된다는 것을 뜻하며, 이에 따라 앞선 직관의 형식과 범주에 선험적인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경험의 가능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위의 대화에서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경험이 아닌가? ‘라듐B원자’와 같은 것을 대상, 심지어 사물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면 이것은 어떻게 우리 지각과 관찰 상황에 나타나는가? 이에 대한 위의 하이젠베르크의 답변은 칸트의 경험 또는 경험인식 모델이 지닌 불충분한 대상 혹은 객관의 규정방식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은 단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직관에 포착된 다양에 우리의 선험적 표상이 적용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러한 적용 범위를 벗어나면서 동시에 실제로 관찰되는 물체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원자는 그러한 선험적 표상이 적용될 수 없는 물체이지만, 분명 그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객관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우리 인식 주관과 관계없이 객관이 존재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경험의 영역을 뛰어넘는 미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거시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영역은 경험세계의 차원에서 어떻게 철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가? 실망스럽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 대화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관찰 상황 앞에서 '사물 자체'라는 한계개념을 설정한 칸트식의 경험 모델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과학자와 철학자 간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의 세계상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4.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은 이들이라면 본문에서 '노벨상'이라는 말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일찍이 하이젠베르크의 천재성과 명성을 각인시킨 상징일 뿐만 아니라 닐스 보어, 볼프강 파울리, 막스 플랑크, 막스 보른 등 이 책에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상의 수상자임에도 말이다. 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이들의 대화 속에서 '노벨상'은 결코 거론할만한 주제가 못 된다는 것이다. 물론 노벨상이 갖고 있는 명성과 역사성은 현재와 80년 전 사이에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오늘날 현대물리학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그들 중 누구도 노벨상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한 이들은 없으며, 이 점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이 상은 단지 이들의 진지한 연구과정에서 주어진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 정식 한국어판의 뒷면에 새겨진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이니 "자사고 특목고 추천도서" 같은 이 책의 본질적인 가치를 떨어뜨리는 선전문구는 한국에서 노벨상을 둘러싼 비루하며 결과지향적인 담론의 일면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정식 한국어판'을 낸 '서커스출판상회'라는 새내기 출판사 역시 베스트셀러와 고급자기계발서를 보유하기 위해 분투하는 여타 출판사와 다를 바 없는 비루한 사명(社命)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선전문구 없이는 책이 팔리지 않는 이 사회의 현실과 독자의 수준을 반영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5. 59쪽에 "질량X속도=힘"이라고 돼 있는데, 여기서 "속도"는 '가속도'(Beschleunigung)의 잘못이다.


6. 241쪽에 나오는 "국민학교"라는 말은 'Volkschule'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일제강점기 유산의 한 연원이 독일에 있었다는 점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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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19년 한국에서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가 연출하고 출연한 연극 <887>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는 점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고 싶다. 원래 희곡을 먼저 읽고 해당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지만 (연극은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동시적으로, 일회적으로 벌어지는 일인데, 이 행위의 참여주체인 관객이 무대 위에 서기 위해 연출가나 배우들이 수백 번도 더 읽었을 해당 희곡을 읽지 않고 관람한다는 것은 연극을 이해하길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베르 르파주라는 연출가 겸 배우에 대한 과문함보다 호기심이 더 앞섰기에 예정에 없이 공연을 관람했다. 연극을 본 결과, 2019년 한해를 넘어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연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연극은 기억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연출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연극은 시간과 기억의 예술이므로, 이 연극은 연출가 자신의 기억을 소재로 삼아 연극 속에서 기억의 문제를 성찰하는 메타 연극이라고 볼 수 있다. 연출가는 시를 암송하는 행사를 위해 어느 시를 외우는 데 겪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목이 가리키는 주소지에 있던 어릴 적 자신이 살던 퀘벡(Quebec City)의 아파트를 기억술에서 사용하는 '기억의 궁전'으로 삼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어릴 적 가족과 집을 둘러싼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 기억의 문제에 접근해나간다. 이를 바탕으로 당대 퀘벡과 캐나다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며, 그 기억 속에 잠재해 있던 언어적, 문화적, 계급적 갈등 양상 역시 풀어낸다. 배우는 기억술, 기억과 예술, 기억과 매체, 개인적 기억과 집단기억, 역사적 기억 간의 관계, 기억들 간의 투쟁, 기억과 망각 등 기억과 관련된 온갖 문제들을 무대 위로 소환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연극이라는 예술이 얼마나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기억의 이면에 놓인 망각은 등장인물이자 연출가 겸 배우의 할머니가 겪었던 치매가 암시하듯이, 일차적으로 신체적 노화와 질병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인간에게 신체의 연장체가 돼 버린 전자기기에게 기억하는 능력 혹은 기억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과도 맞닿으며, 나아가 기억의 예술인 연극이 오늘날 처한 위기와도 연관된다. 고대 시인 호메로스가 무사 여신에게 의탁하여 서사시를 읊었다는 것이 신화가 돼 버린 오늘날의 이런 상황에서 시를 암송한다는 것, 더 나아가 무대 위에서 기억을 바탕으로 일회적인 공연을 한다는 것은 이제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인 일이 돼버린 걸까? 온갖 멀티미디어 장비를 동원한 이 마술 같은 연극에서 르파주가 전달하고자 하는 대체 불가능한 본질적인 연극적 경험은 그런 위기상황을 연극이 극복해나갈 수 있는 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르러 예정된 '시의 밤' 행사에서 열변을 토하는 연설자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미셸 라롱드(Michèle Lalonde)의 <Speak White>라는 시는 (아래의 영상에서 시인 자신이 낭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흑인 노예에게 영어로 '백인처럼 말하라'는 인종차별을 배경으로 한 원래의 말뜻을 되살려,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말하라'는 당대 퀘벡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를 고발하면서 동시에 영국계 지배계급에 맞서는 날카로운 문화적, 계급적 저항시이기도 하다. 이 시가 가진 이러한 역사적 맥락 역시 기억을 통해 행사장이자 무대 위로 그대로 이어져 시와 예술이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린 '시의 밤' 행사장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가식적인 유명인사들 앞에서 과연 주인공 자신이 이 시를 읊고, 과연 그들이 이 시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되물으면서 예술이 가진 계급적 차별성을 폭로하는 동시에, 기억의 힘에 의존하는 시와 연극이 어떻게 합일하여 두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그 힘을 관객들이 무대를 통해 생생히 경험하도록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이 연극을 끝맺는다. 이 연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무한히 재생, 반복 가능한 영화가 보여줄 수 없는 연극의 일회적 경험이 가진 힘과, 그 힘의 원천인 인간의 기억, 그것을 경험하면서 관객이 받는 고유한 감동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Hello Fred, it's Robert here. I know there's not enough space on your answering machine to leave a long message, but still, it's probably quite a bit more time than you spent summing up my entire career. So let me ask you this: Does thirty-five years in the theatre mean nothing at all? If something has never been electronically or digitally recorded, does that mean it never existed? If so, then the fundamental philosophical question is this: If a tree falls in the forest, and no one is there to record it on their goddamn iPhone, does it make a sound? Am I to understand that a five-minute cameo on a Radio-Canada comedy show is worth more than thirty-five years in the theatre business? Or was that the only clip you had in your archives?" (Lepage, Robert, 887: A Play, trans. Louisa Blair, Pref. Denys Arcand, Toronto: Arachnide, 2019,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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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19년
서승 지음 / 진실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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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저자교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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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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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정체성
마이클 크로닌 지음, 김용규.황혜령 옮김 / 동인(이성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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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론- 드라이든에서 데리다까지의 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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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의 '불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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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경의 탄생- 인도 불경의 번역과 두 문화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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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월과 이산-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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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의 정신사- 남.북.일 세 개의 국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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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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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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