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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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이 실패하는 생각은 전적으로 기억하는 자아의 관점이다. 이혼은 막판에 불협화음을 낸 교향곡과 같다. 끝이 나쁘다고 해서 전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당신 태도는 지속 시간 무시의 안 좋은 사례다. 당신은 나쁜 부분보다 좋은 부분을 열 배 길게 경험했는데도 두 부분에 같은 비중을 두고 있다.”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지난주 들은 정재승 교수님의 강연에서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걸 보고 떠오른 책, 바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인간은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이 책은 인간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1과 이성적 사고를 하는 시스템 2, 상반된 두 개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시스템으로 상황을 판단하느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이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은 별도의 노력과 수고를 들이기 싫어 주로 시스템1에 의존하여 결정하는데, 이때 시스템2를 통해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성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책 속에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사례가 등장한다. 저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올레타가 죽기 전에 알프레도를 만나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하고, 마무리가 어떤지에 따라 그 이야기에 대한 정서적 판단을 크게 바꾼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안 좋은 결말이라도 그 과정은 행복할 수 있으며, 과정이 안 좋다면 마무리를 잘함으로써 전체의 기억을 좋게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 인간의 비합리성을 무시하거나 극복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저자의 태도는 인간을 시스템 주체의 자리로 옮기며 우리 삶의 외연을 한층 넓히는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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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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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회사 안팎에서 철저히 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아찔한 높이의 옥상을 찾아간다면 대부분 그리 반갑지 않을 일 때문일 것이다. <옥상에서 만나요>의 주인공 또한 밀려오는 나쁜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옥상 환풍기를 의자 삼아 쉬던 한 사람이었다. 두세 달 간격으로 줄줄이 결혼한 회사 언니들에게 남편을 불러내는 비책이 적힌 고대의 주문서를 받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옥상에서 만나요>가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자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것은, 아찔한 옥상으로 밀어 넣는 절망이 있어야 사랑을 손에 쥘 높이에 오르기 때문이다. 매일 겪는 훈수와 고충을 벗어나기 위해 도피성 결혼을 생각했던 주인공과 언니들이 서 있는 옥상은 이제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만큼 낮은 높이에 있다. ‘주문으로 남편을 불러낸다.’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을 믿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지옥 같은 현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소설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편을 부르는 주문서는 없지만, <옥상에서 만나요>가 우리에게 날개를 찾아줄 것이다. 절망을 딛고 올라야 만나는 사랑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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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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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나 살다 보면 반드시 비를 만나게 되는 법이란다. 진짜 비와 개자식들과 다채로운 헛소리들 말이야." 할머니의 말씀을 살짝 바꿔보았다. 과연 할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누구나 자기 몫의 비극이나 광기,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공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으니까. 고통이 없으면 위안도 없으니까. 나는 이토록 거대한 슬픔을 느낄 수 있으면서 동시에 거대한 행복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쁨의 매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살아간다.”

/제니 로슨,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中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미국판. 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저자가 '살아남기'보다 '살아가기' 위해 블로그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이 책은 사회에서 규정한 정상인은 과연 무엇이며, 그 범주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어떤 문제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욱더 어려운 일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인정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 점에서 자신이 미쳤다는 걸 알고 이를 시작점으로 삼는 저자의 태도는 무척이나 용감하고 결국에 변화하는 사람은 누구일지에 대한 모범 답안이 되어준다.

 

이 책의 원제인 <FURIOUSLY HAPPY>, '격하게 행복하라'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저자가 고안한 운동이다. 정상인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극단적 기쁨을 경험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저자의 경험담을 읽고 있다 보면, 사회에서 규정한 정상의 범주에 들기 위해 감정의 스펙트럼을 최소한으로 줄여나가는 현대인들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깨닫게 된다.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저자의 뇌 속을 온몸으로 여행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무척이나 낯설어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인데, 이는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는 현대인들이 그간 느껴본 적 없는 격한 행복앞에서 아직은 반응할 감정이 남아있다는 청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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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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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파일명 서정시> 中


무언가를 잃지 않고서는 대각선이 될 수 없지

낙엽들은 나무를 잃고

나는 오래된 계곡 하나를 잃었지만

그렇다 해도 기억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진 않겠어


다만 비스듬히, 비스듬히, 말하는 법을 배울 거야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길게 성호를 긋고 사라지는 별똥별에 대해

수많은 대각선의 날들, 날개들, 그림자들, 핏자국들에 대해

대각선의 종족이 남긴 유언들에 대해

/<대각선의 종족> 中


시인의 표현을 직접 빌리자면 나희덕 시인은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나평강 약전>中) 같다. 시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흔들리며 써나간 시를 읽다 보면, 어둠 속을 걷는데 길을 잃지 않는 느낌이다. 


시집의 제목 『파일명 서정시』는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이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던 시기, 서정시가 두려워 이를 가두려 했다는 것만으로 서정시가 가진 힘이 얼마나 컸는가를 입증해준다. 


힘이란 무언가를 얻음으로써도 생길 수 있지만, 어떠한 힘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발휘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잃지 않고서는 대각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잃었을 때만 보이는 세상이 서정시에는 있다. 버림받고 취약하고 학대당한 존재들을 향해, 관망하며 쓰는 시가 있고 직접 그 존재가 되어 생으로 답하는 시가 있다.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는 전적으로 후자다. 우리에겐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보다 어둠을 함께 걸어주는 불꽃이 필요하다, 불온한 말이 필요하다. 서정시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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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 폭력과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의 기원
로버트 거워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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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역사적으로 죽음이나 고통참상 등이 일어났던 지역을 여행하며 깨달음을 얻는 여행을 일컫는다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일본 히로시마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체르노빌 구소련 핵발전소 부근 등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지역이다.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는 승전국에 가려져 다루어지지 않던 패전국의 관점에서 전후 세계를 바라보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로 다크 투어리즘을 떠난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을 비롯한 패전국들에도 공평하게 적용되었는지 다루는 부분은 이 책이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를 얼마나 신중하고 균형 있게 재해석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개념은 승전국의 우방으로 간주된 민족(폴란드인체코인남슬라브인루마니아인그리스인)에게만 적용되고적으로 간주된 민족(오스트리아인독일인헝가리인불가리아인터키인)에는 적용되지 않았는데이는 윌슨이 패전국들이 위선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기존의 역사가들이 동유럽과 중유럽이 문명화되고 평화적인 서구에 비해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전후 세계를 조망했던 것과 달리저자는 패전국 지역에서도 다양한 정치 실험이 진행되었다고 밝히며 균형 있는 관점을 이어간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하지만 중유럽과 동유럽에서는 대전의 영향력이 20세기가 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내용은 전쟁이 어느 국가에선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말해준다끝나지 않은 전쟁을 패전국의 관점으로 복기하는 것이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해주는 이 책은전쟁의 재발을 막고 인류의 진일보를 돕는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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