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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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편리성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가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과거로의 ‘회기’ 혹은 ‘퇴행’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된 것은 약 1만 년 전이고 문명 이전의 세계는 무려 599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기에 ‘어제까지의 세계’는 무척이나 길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말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다양한 전통사회의 사례들을 현대사회와 비교분석하며 두 사회를 저울질한다. “차이점과 유사점의 이런 복잡한 혼재가 외부인에게 전통 사회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라는 저자의 시각은 무게의 추를 현대사회보다 전통사회에 실으며 먼지가 쌓여 보이지 않았던 전통사회의 특징들을 선명하게 찾아낸다. 현대사회의 관점으로 전통사회를 바라보는 시혜적인 태도도 아니고, 전통사회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은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몰라도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진단해준다.

일례로 책의 ‘2장. 사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보상’에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해결하고 보상하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모습이 소개된다. 현대국가의 민사사법이 피해를 다루는 데 집중하고, 악감정의 해소와 화해는 부차적 문제로 다루는 데 비해, 전통사회의 보상 협상의 목적은 양쪽의 감정을 화해시켜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다. 국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분쟁 대부분은 전에도 서로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다시는 거래하지 않을 사람들 간의 문제인 반면, 전통사회에서의 분쟁은 지금도 어떤 관계가 있거나 앞으로도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사람들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사회의 맥락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각각의 사회가 취한 행동이 납득가능한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후에도 책에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변화, 위험에 따른 대처방법의 변화, 종교의 기능적 변화까지 흥미로운 주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실 744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진입장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을 단숨에 상쇄할 만큼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무척이나 자세하고 친절하며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 게다가 저자가 50년에 걸쳐 뉴기니와 인근 섬들을 비롯해 아프리카, 북미, 남미 등의 방대한 지역에서 진행한 현지 관찰과 연구 성과를 이만큼이나 압축했다는 건,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낸 ‘정수(精髓)’라는 뜻이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599만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사회를 한 발 한 발 내 딛는 느낌이다. 어느 소설에서 ‘모든 미래는 과거를 품고 있다.’ 라는 문장을 읽었다.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전통사회를 얘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렇기때문에 가장 정확하고 진득하게 문명의 ‘미래’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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