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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 좋아한다.
역사소설 좋아한다.
그러면 역사추리물은?
가장 좋아하는장르다. 물론 좋아하는 장르라고 모든 작품이 좋지는 않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그만큼 더 기쁜가보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평들을 접하고 이거다 생각했다.
당시 내 여행버킷리스트 제일 위를 차지한 터키의 이스탄불이 무대.
시대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
등장인물들은 화가와 그 주변인물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만든 듯한 작품이라니
게다가 수많은 수상경력으로 터키판 <장미의 이름>인가 하는 기대에 설레었다.
하지만 정작 주문하는데만 1년은 망설인듯 하다
이유는 많은데 너무 오래 지나서인지 딱히 기억이 안나는 이상한 상황.
그래도 일단 손에 잡았으니 하루만에 끝내주겠어 하는 마음으로 의욕을 가지고 시작
하지만 '나는 죽은 몸' 장을 지나 '내 이름은 카라'를 끝으로 책장 한귀퉁이에서 대기만 타는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잊혀지다가 즐겨보던 예능프로에서 김영하 작가가 이 책을 언급한다.
서양의 원근법이 가져온 파장을 이야기하다가 나왔던 것 같다.
오호~화가가 주 등장인물임을 지나 본격적으로 미술이 미스테리의 장르로 쓰이는 건가?
그래서 다시 집어들었는다.
하지만 역시나 "내 이름은 카라" 다음 장 "나는 개입니다"에서 책을 놓았다.
낯설다. 나는 내가 이렇게 그 세계를 모르는지 몰랐다. 언급되는 인물, 사건, 예화, 등장인물들의 생각 자체까지 모든게 낯설다. 설상가상으로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는 구조도 낯설다. 개가 화자인 것만도 부담스러운데 종이에 그린 개란다.
그렇게 내 손을 다시 떠났던 작품을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예기치않은 여유시간이 다시 불러왔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은 여행준비로 바빴을텐데. 대신 책속에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낯설고 낯선 1591년 이스탄불로 말이다.
다시 읽으며 다시 알았다. 왜 두번이나 손에서 놓았는지. 왜 다시 읽기 까지 5년이 걸렸는지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어떤 인물에도 공감이 안간다는 점
낯선 만큼이나 내가 이책을 읽는데 힘들었던 이유인 것 같다.
내맘대로 역사로망아트미스테리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고 익숙하지 않은 문자에 당황하고 입에 맞지 않은 현지식에 실망하면서도 막상 그곳을 떠나기가 아쉬웠던 그 어떤 여행같았다. 생각과는 다른 작품이지만 내가 의도하던 여행대신 택한 책여행의 취지에는 딱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슴 한편이 뻐근해지는 듯한 감동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런 쪽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전 보았던 알라딘 실사영화보다 더 실감나게 내 눈앞에 1591년의 이스탄불을 그려볼 수 있었다. 도대체 눈이 멀어가면서 추구하는 그들의 세밀화 세계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하다. 그들이 그토록 죄악시 했던 르네상스의 그림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찾아보고 감동을 받는데 이들이 술탄을 위해 그렸던 그림들은 어디서 볼 수 있는거지? 이스탄불을 방문하면 볼 수 있으려나?
작품은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세밀화가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죽은 살인범의 정체를 알아가는 한 축. 이스탄불의 소문난 미녀 세큐레를 향한 카라와 하산의 연정과 딸을 곁에 두고 싶은 아버지 에니시테 사이의 미묘한 심리가 묘사된 또 한 축. 하지만 제일 돋보이는 것은 예술가들의 고민이다. 전통화풍과 새로운 화풍 사이에서 또 신성모독과 예술적인 것 사이에서 그들은 살인도 합리화할 정도의 고민을 한다.
원근법을 사용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 화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그리는 것
이런 별 생각없이 접했던 미술의 기술들이 긴 세월과 수많은 저항을 이기고서 살아남아 우리앞에 놓여져 있는 가치라는 생각에 뭉클
16세기로 떠났던 시간여행이었다.
터키의 이스탄불로 떠났던 공간여행이었다.
세밀화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배부르게 그림을 들은 미술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