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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악마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5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평점 :
오래전 나는 세로쓰기로 출간된 동서추리문고를 여러 권 헌책방을 뒤져서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새책으로 구입하기도 했다.책의 가격은 고작해야 몇 백원. 하지만 당시 내게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책의 뒤편에는 이 문고판에 있는 책의 면면들을 볼 수 있도록 간단한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었다.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는데, 바로 이책이 그랬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추리소설의 인기가 바닥이던 당시에 이 문고는 결국 외면 속에 절판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시 복간된 동서추리문고.
정말 기대 속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한 권씩 되집어 나가고 있다.
예전처럼 부담없는 문고판의 가격은 아니지만, 책의 리스트를 보면서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느낌이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내내 그 옛날 읽은 <마인> 이라는 책이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지금은 모르겠다. 아마도 마인을 다시 찾아서 옆에 놓고 보면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에도가와 란포라는 일본의 대표 추리작가가 지은 대표작이다.
단숨에 읽히는 줄거리로 별로 추리력을 시험해야 할 여지는 없지만, 작품이 주는 특이한 분위기가 있어서 기억에는 오래 남을 것 같다.
드라미틱한 모험을 자연스럽게 예고한 뒤, 밀실상태에서 연인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조사를 의뢰받은 아마추어 탐정까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살해된다.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주인공은 친구와 함께 남쪽의 외딴섬으로 떠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지옥, 바로 그 자체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에도가와 란포의 기괴 미스터리 걸작.
이렇게 설명되어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쏘우> 시리즈 같은 극단의 잔임함을 그리는 영화들에 오염되어서 왠만한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지옥' 이라는 표현에 붙이지도 않는다. 이것이 세월이 부여한 이 작품의 첫번째 단점이라면 단점일까?
좀더 본격적인 흠이라면 바로 제목이다. 제목에서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하고 있다. 글을 읽으며 도대체 외딴섬이 언제 나오는 지만 주의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작품을 읽으며 느낀 불쾌감은 등장인물 사이에 형성되는 우연이다. 주인공을 사랑한 친구는 우연히 범인의 아들이며, 그가 택한 탐정은 우연히 범인이 살고 있는 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열심히 나열된 우연 속에서 통속적인 연속극이라도 보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되다니.
오랜 기다림에 비해 실망도 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