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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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작가님이라고 해야 할까, 교수님이라고 해야 할까.

본 직업이 나무칼럼리스트니까 그럼 이게 맞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솔숲닷컴 운영자라고 해야 하나.

나는 강의에서 처음 뵈었기에 교수님이라고 이 분을 언급해야겠다.

기자로 시작해 방향은 조금 바뀌었지만,

그래도 계속 글쓰기를 일로 삼아온 분이다.

덕분에 나는 대학에 와서 듣고 싶었던 글에 관한 구체적인 새로운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특히 시험으로 논술문을 적기 위해 봤던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에 나온 구절을 가끔 들춰보곤 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와 가장 흔한 악기에 속하는 피아노의 일 년간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교수님은 나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과연 글로 표현해낸 게 그 나무의 전부인지,

제대로 본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김예지 님과의 만남이 특별했다.

나무를 본다는 것을 곧 안다는 것과 동일시해도 괜찮은지,

나아가 시각으로 세계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 외

더 현명한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할 만큼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그게 불가능할 만큼 오랫동안 학습되어온 나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 김예지의 지혜를 구하고 싶었다.

슈베르트와 나무

목적이 뚜렷한 독서였음에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지금도 가끔 교수님이 보내주시는 나무편지를 가끔씩 읽는다.

일간 이슬아처럼 구독해서 메일로 받는 글인데,

이슬아 작가와 같이 삶의 반경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무의 말이 좋아서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동백꽃

김유정 작가가 쓴 작품에서 동백꽃은 붉지 않다.

그리고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

나는 여기서 한 번도 의문이 가져본 적이 없다.

수능 문학 작품 중 감정이 만져지는 몇 안되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소작인 아들과 주인집 딸의 상황을 그리기도 바빴다.

이 나무의 말이 좋아서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김유정 작가가 춘천에서 집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백 나무의 수목 한계선이 충청도 서천이어서 춘천에서 붉은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

그럼 작가는 무엇을 말한 걸까?

바로 생강나무이다.

결국 노란 꽃과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생강나무를 작가는 잘 짚어낸 것이다.

적어도 다섯 번은 봤을 노란 동백꽃의 단어에 시선을 주었지,

이 꽃의 모양과 향기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동백꽃을 이해하고 젊은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면,

더욱 절실히 이해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연두의 향연 속에서 마음을 끄는 사진과 문장이 있다.

신록의 계절인 오월의 문단에서 나왔던 구절이다.

겨우 내 조용하던 넒은잎나무마다 물을 길어 올리고 잎눈을 연다.

솜털 뽀송한 연두빛 잎으로 청춘을 부른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창공을 가득 메운 신갈나무 잎사귀 실루엣 사이로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만난다.

-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의 <오월>에서도 청춘을 만난다.

p. 59

이런 글의 특성인지, 말투에서 옛 것의 내음을 계속 맡게 된다.

아무래도 묵직한 단어와 문체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런 와중에 만난 문장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다가 마침내 독자에게 건네는 말과 같아서 반가웠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그 다음 사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머물고 싶은 풍경이 청춘의 시기와 맞아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칠월 숲은 나뭇잎 소리로 분주한다.

하늘을 가득 채운 잎사귀들이 만드는 스킨십이다.

서걱서걱 여름 소리에 마음이 열린다.

p. 79

녹음의 계절, 칠월을 상징하는 어구.

녹색으로 잉태된 여름에 녹색이 또 얹혀 그야말로 녹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녹색의 흐름을 따르는 여름의 준엄함에 사람 세상의 위세도 꺾여 느릿하게 움직인다.

마음을 다시 달궈주는 건 숲이 들려주는 노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는 충절가 포은 정몽주를 향한 태조 이방원의 유혹이다.

이 대목에서 공생을 떠올린다.

공생은 서로 이득을 주고받고 위기에 합심하는 관계여야 한다.

꽃과 나비, 도토리와 다람쥐처럼 숲에는 수많은 공생이 있다.

하지만 칡의 무차별적 확장을 보면,

이방원과 정몽주의 공생이라는 게 애초에 가당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칡덩굴이 다른 나무를 기어오르는 것은 공생을 빙자한 배신의 전형이다.

더 큰 이득을 위한 적과의 동침, 그리고 배반일 것이다.

p. 108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정말 감탄했다.

식물을 통해 사람의 관계를 미리 짐작해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나무는 뿌리로 이웃 나무와 만난다.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심지어 다른 나무 사이에도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한다.

간밤에 추위는 잘 견디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매일매일 안부를 묻고 산다.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덜 힘들고 오래 살 수 있는지 나무는 이미 아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나무들이 공종의 뿌리를 매개로 함께 물을 저장하고 겨울을 난다.

이웃나무가 배고파하면 자신의 영양분도 보내준다.

(서로 사랑이 깊어 한 몸체가 된 연리목도 있다!)

나무들마다 확정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이웃과 끊임없이 공존을 이야기한다.

서로를 위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이타적 공존을 배우게 된다.

그들이 일구어놓은 곳을 대수롭지 않게 걸어다녔는데,

항상 위를 보며 아름다운 빛깔과 소리에 홀리기만 했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뿌리 사이로 발을 딛게 될 것 같다.

생태와 역사의 조합 말고도 과학을 아우르며 다채롭게 펼치기도 한다.

드높아진 하늘에 청량한 가을바람이 부는 구월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제 낮의 길이도 짧아지고 기온도 낮아진다.

사람의 몸도 이를 알아채고 반응한다.

일조량이 줄어드니 세로토닌 분비도 줄어든다.

대신 반대로 밤이 길어지면서 기분을 가라앉히는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세로토닌 멜라토닌 스위치의 정상 작동이다.

아울러 비타민 D 합성도 적어지고, 특히 남자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저하된다.

세로토닌 감소, 비타민 D 감소, 테스토스테론 감소, 멜라토닌 증가.

그러고 보니 모두 울적한 쪽으로 작용하는 기제이다.

생각이 많아지고 고독을 느끼는 멜랑콜리 센티멘털의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p. 122

센치해진다는 표현이 가을에 나오는 건 우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계절에 따라 식물과 사람의 몸이 변화를 같이 한다.

잔가지를 뻗어 온기를 공유하는 겨울도 그렇다.

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알려주는 계절이기도 한다.

모든 생명이 생각을 정리하며 멈춘 듯 성장한다.

참고 견디며 계속 길을 묻는다.

나와 같은 그들에게 위안을 얻게 된다.


좋아하는 나무도 생겼다.

참나무.

말 그대로 참 좋은 나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다.

지금은 참나무 채棌라는 한자가 있지만,

과거에는 참 진眞에 나무 목木으로 쓰였다.

잎, 줄기, 열매 어느 것이든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릴 게 하나 없는 쓸모가 많은 나무라고 한다.

속명도 라틴어로 아름다운 나무를 뜻하는 Quercus로,

동서양 어디에서나 좋은 나무로 인식하고 있다.

나의 이름 중 마지막은 참 진眞을 쓰는데 돌림자다.

갓 태어난 세 아이, 나의 오빠와 나의 여동생과 나에게

부모님이 쓸모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담고 지어주신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다던,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그들의 살아온 방식처럼

사계절 여느 때나 존재의 이유를 답하며 아름답게 살고 싶어진다.

생각을 게을리했다면 존재하지 못했겠지.

세상을 읽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진심을 다해왔기에 나무는 지금을 산다.

p.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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