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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425/pimg_7632201181194108.jpg)
누군가의 심장에 손을 얹고 온도를 재어본
사람은 안다. 그 심장은 내 손의 온도에 의해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는 것일 뿐,
원래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손을 대는 순간 알게 된다. (38p.)
뭐랄까.. 책을 보자마자 역시 황경신!!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만큼 이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그리고
서명을 보자마자 그동안 내가 저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느낌을 그대로 적용시킨듯한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한마디로 취향저격,
이었다.
요즘에는 신간도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표지도
예쁘고 서명도 잘 지어, 점점 표지와 제목만으로는 책을 고를 수가 없는 시대인데,
(사실 나는 어떤 순간들은, 내용을 하나도
보지않고, 표지와 서명만으로 책을 골라 읽기도 하는 독자이다.)
어느때에도 저자의 책은 늘, 내 마음을
움직였다. 표지와 서명만으로도 충분히..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네가 내게
등을 돌리고 손을 잡을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나는 기꺼이 가해자의 역할을 맡아준
너의 대담함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으로서의 예의가 아닐 것 같아, 그냥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너는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완벽한 끝을 원했으므로, 모든 말을 삼키고 몸을 돌려, 햇살이 한없는 거리를 걸어, 네게서 멀어졌다. 너의 사랑도 나의 사랑도
믿은 적 없으니, 나는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 정도는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지 못한 말들이 무거운 혀 끝에 매달려
돌처럼 단단해지고, 그 무게로 조금 휘청거렸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멀어질 수는 있었다. (34p.)
총 71가지의 단편들로 이뤄진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는 그녀의 시선으로 혼자 써낸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인 화백의 그림들과 함께 했는데
그 속에서 그녀는 여러 그림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함께 그리고 때로는 따로 그들을 풀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한 이번 신작은 사실 나에게는
두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하나는 황경신의 글은 동경할 수 밖에 없었고 그녀의 세밀한 표현력은 역시 늘 나를 놀라게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안하지만 이인
화백의 그림은 난해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림에 대해 알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을 다시봐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나를 읽으려 했던 당신과, 당신을 쓰려 했던
나는, 어쩌면 서로의 덧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마디쯤 덧붙여도 괜찮겠지. 더 이상 덧댈 것도 덧날 것도 없는 덧없음,
어느덧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 대해. (50p.)
내용을 보자면 그동안 저자의 책의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에도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께도 적당한듯 해서 '넉넉잡고 2~3일
정도면 다 읽을 수 있겠네..'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일주일도 훨씬 넘게 잡고 있었다. 뭐랄까.. 이 책.. 전작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내용면에서 기존의 밝고 따뜻한 느낌보다는 톤이 훨씬 다운된 그런 느낌을 받았고, 밝다기 보다는 어두웠다. 그리고 무거웠다.
글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는데 여기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인 화백의 그림까지 더해지니 정말 하나의 이야기들을 끝내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의 반복이 되었다.
전작과 다른 깊이의 이야기랄까, 농도짙은
무게감이 한장 한장 넘겨질 수록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도통 밝아질 줄을 몰라서 읽는 내내나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읽었는데,
어느새 가만히 그녀의 글을 보고 있자니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쩜 어떤 현상에 대해 이런 글을 쓸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묘사를 하고 이런 찰나를 관찰 할 수 있으며, 세밀하고 현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것일까? 정말이지 읽는 내내 감탄했다. 그리고 너무나
부러웠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나에게 낯설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서투름은 나의 진심을 증명하는 것임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모든
익숙함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 나의 삶임을,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순간, 꽃처럼 시들어버릴지도 모를 것이 또한 진실임을, 한없이 차오르는 것과 한없이 비어가는 것의
동일한 무게를, 희미하고도 선명한 시간의 직선과 곡선들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은 모순투성이의, 그 친밀하고도 낯선 엉망진창의 뒤엉킴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좋겠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좋겠다고. (157p.)
전작의 어떤 책보다도 진한 느낌을 받은 이
책은 한번 읽고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책에서 받지 못한 저 아래의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표현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몇번 읽어도 아깝지가 않았다.
풋풋한 설렘 가득한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찰나의 공감을 담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현실에서 있음직한 것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녀만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숨기거나 사소하게 드러내거나
사소하게 자랑하다가 사소하게 후회한다. 사소한 인연이 사소한 기억으로 가까워졌다가 사소한 망각으로 멀어진다. 나의 삶이 온통 사소함으로 채워져 있으나
사소한 행복은 가볍지 않고 사소한 견딤이 쉽지는 않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절망이
사소하지가 앖다. (1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