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미국감리교회 선교사들의 사회복지 사업 1885~1960년 - 한국기독교학회 제14회 소망학술상 수상 저서
황미숙 지음 / 동연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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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감동적인 의료선교사들의 이야기! 아프리카나 다름없는 당시 개화기 척박한 조선에서 온힘을 다해 병을 치료하고, 여성들을 교육하고, 유아 사망율을 기적적으로 줄였네요. 논문이지만, 논문같지 않은 잘 읽히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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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집
정경섭 지음 / 레디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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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경섭 <민중의 집>

 

지난 연말 개표방송을 보다 말고 방에 들어가 홀로 멘붕을 겪었을 사람들은 이튿날 날이 밝자 하나둘씩 학교나 일터로 나가 혼미한 정신을 추스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날 하루만큼은 멍 때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남들은 뭘 하나 궁금해져 SNS를 기웃거리거나, 포털사이트에서 헛된 클릭질을 할 때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

“이따 저녁 때 술 한 잔 어때?”

이처럼 감격스러운 제안이 또 있을까? 멘붕의 심정을 오롯이 나눌 동지들이 있다는 걸 왜 잊고 있었는지 초췌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 한 가닥 띄웠을 그들. 자칭 타칭 진보진영에 속해있던 이들은 대선 후 술집에서 모이는 횟수가 잦아졌다.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이런 사람들이 모이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 바로 민중의 집. 노동자들이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러 들르는 곳, 노조원들이 회의와 집회 준비를 할 수 있는 곳, 진보정당이 정치토론회를 열 수 있는 곳, 지역주민이 영화를 보거나 요가를 배우는 곳, 동네 꼬마들이 방과후 예체능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민중의 집이다.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 <민중의 집>(레디앙, 2012)은 ‘마포 민중의 집’을 운영하며 진보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저자가 민중의 집 본고장인 유럽으로 건너가 전역에 흩어져있는 민중의 집을 찾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45일간의 기록이다.

알음알음의 소개,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나 전화번호 한 줄, 그도 저도 안 되면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상호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열정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였다. 저자가 찾아간 수십 개의 민중의 집은 그 나라의 정치현실에 따라, 지역민의 참여도에 따라 흥하기도 망하기도 하는 상태였다.

 

유럽의 민중의 집 실무자들은 멀리 동양에서 민중의 집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낯선 손님을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진보정치를 꿈꾸며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의 벽을 허물고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한 때 찬란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후예들이지만 지금은 보수정권의 우세와 중도정당의 우경화, 그리고 거듭된 좌파정당의 분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지역정당 활동가들과 면담을 하며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성적표를 뼈아프게 되새김질하고, 좌파 정당의 쇠락으로 ‘민중의 집=좌파의 집’의 등식이 깨진 남유럽의 현실을 목도한다. 그러나 이념적 성격은 퇴색했어도 그곳엔 “술과 음식, 놀이와 유흥이 빠지지 않는 흥겨움이 살아있고, 일상과 놀이와 정치를 하나로 합쳐 지역공동체의 삶 생활의 모든 것을 담아온 역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스페인의 민중의 집은 “사회주의 정당과 노조를 탄압했던 과거 프랑코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면서 역사적 경험이 소실”되었고, 이 점은 “현대의 사회노동당과 노총의 결별과 함께 민중의 집의 현재적 복원의 큰 걸림돌”이 되고있었다.

 

한편 북유럽 스웨덴 민중의 집의 출발은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지만, 세계에서도 유명한 복지국가체계가 “어떻게 지역사회의 민주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궤적”과도 같았다. 사민당과 노총의 성장기반이 되었던 스웨덴 민중의 집은 노동자와 도시 서민에게 문화, 유흥, 평생교육, 만남과 연대의 공간으로 그 규모와 서비스를 준관공서처럼 키워갔고, 현재는 소외된 이주노동자들을 품는 장소의 역할도 하고 있다. 시대는 흘러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차별받지 않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민중의 집 핵심철학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울 좌파에서 명랑 좌파로

마지막 장에 저자의 홈그라운드인 마포 민중의 집을 소개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2008년에 세워진 마포 민중의 집은 마포 지역내 6개의 노동조합, 6곳의 상인회, 문화연대, 진보신당 등 16개의 지역단체가 회원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돈을 통하여 나누지 않는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탁소 아저씨가 다리미질 강좌를 열고, 호텔노조의 요리사들은 지역주민을 위한 요리교실을 연다. 돈에 의한 관계 형성이 아닌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무엇’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하여 무한 경쟁 자본주의와는 차별을 두는 협업과 비자본주의적 교류방법과 대안적인 생활 문화를 창출해내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민중의 집을 만들고 가꾸었던 좌파들의 공통된 노력이었다. 여기에 오락과 흥겨움이 곁들여지면  완고하고 음울했던 좌파는 온순하고 명랑한 좌파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대한민국 진보의 부침을 다른 이유보다도 ‘기초 체력의 부족’으로 꼽으며 ‘현장에서 진보와 대중이 서로 소통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업과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주민, 지역운동, 진보정치, 협동조합, 도시 공동체, 지역네트워크 등의 키워드에 이끌리는 사람이라면 민중의 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겠다. <공산당 선언> 마지막 문장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현대의 가치를 담아 바꾼다면 ‘진보적 시민이여! 네트워크하라’ 쯤이 되지 않을까? 이것을 공간의 힘으로 현실화 할 수 있으니 주민과 함께 하는 진보정치를 원하는 이라면 민중의 집을 꿈꿔볼 만하다.

 

공간은 힘이 세다

비록 분열되고 우경화되었다 해도 진보정당의 역사를 100년 넘게 쓰고 있는 유럽에서 민중의 집은 진보정당과 발걸음을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당과 노동조합이 민중의 집 건설을 주도했고, 이곳은 추상적 공간이 아닌,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구체적 장소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산업혁명시대 시골에서 막 상경한 농부들이 도시노동자로 적응하기 위해 모인 곳이 민중의 집이었으며, 이곳에서 그들은 노동자의식을 배우고 공동체정신에 입각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쳤던 시대에는 혹독한 탄압을 받아 폐쇄되거나 친권력적 형태로 변질되거나 단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로 쇠락하기도 했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살아있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민중의 집은 정치이념과 함께 음악회, 전시회, 영화상영, 연극공연, 다양한 배울거리, 맛있는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공존했었고 이를 지역주민이 맘껏 향유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 협동조합, 노동조합 등을 연결해주는 허브의 역할을 하며 지역정치의 힘을 키워주었다.

 

공간이 지닌 힘은 생각 보다 세어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 손잡고 따라와 민중의 집 앞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노인이 되어서도 이곳을 찾아와 지킨다.

 

에스엔에스(SNS)와 팟캐스트 등 온라인 공간의 왁자지껄한 여론 형성만으로는 진보집권 플랜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보고 수다떨며 토론하는 아날로그적인 운동방식은 산만하고 더디어 보이나,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도를 차근차근 회복시켜주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는 두 자리 수의 지지율을 안겨주는 기적의 바탕이 될 수도 있겠다.

 

1층은 술집과 찻집으로 꾸미고, 2층은 정당, 노조, 지역단체 사무실이 입주하고, 3층은 강의실과 소극장을 만들고.... 이런 상상만 해도 가슴 뛰고 행복해진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100년 전에 어떻게 그것을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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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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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화작가 로알드 달이 지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재미난 동화다.


초라하고 을씨년스러운 찰리네 판잣집 풍경과 죽도 못 먹은 것 같은 빼빼 마른 소년 찰리, 아흔이 넘어 ‘마른 자두처럼 쭈글쭈글해져’ 스물 네 시간 침대 신세를 지고 있는 조 할아버지 조세핀 할머니 조지 외할아버지 조지아나 외할머니, 이들을 부양하는 치약공장 노동자인 아버지 버켓 씨에 대한 묘사는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런던의 슬럼가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가난 속에 위태롭게 둥지를 튼 어느 가정의 고단한 일상 속으로 읽는 이들을 데려간다.  우울한 동화적 판타지를 잘 그려내는 팀 버튼 감독이 눈독을 들일만 내용이다.


네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양실조 직전의 손자 찰리에게 영양가 있는 초콜릿을 듬뿍 먹여보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고, 찰리 역시 멀건 양배추국 대신 달콤한 초콜릿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다. 그러나 찰리는 일년에 딱 한번 오직 생일날에만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고통스러운 인생이 바닥을 칠 때, 그 비명이 우주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법, 그때서야 구세주가 기회라는 옷을 걸치고 나타난다. 가장 원하던 실체로 말이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는데 찰리네 아빠는 실직을 하고 생활은 더욱 곤궁해져서 하루 세끼 먹는 것도 힘들어진다. 그러나 찰리네 가족에게도 희망이 찾아온다. 평생 동안 초콜릿을 공짜로 맘껏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유난히 허기가 심하던 어느 날, 찰리가 운 좋게도 ‘제과업계의 귀재’ 윌리 웡카 사장이 전 세계에 보낸 5장의 황금초대장 중의 한 장을 손에 쥐게 된다.


상상력의 제조공장이라 할 수 있는 웡카 사장의 초콜릿 공장안으로 다섯 명의 꼬마와 그의 부모들이 들어간다. 초콜릿을 섞는 폭포, 사탕으로 만든 미나리아재비 정원을 지나 초콜릿 강을 건너 진귀한 신제품들을 구경한다.

그 와중에 중도하차하는 아이들이 생기는데, 하루종일 껌씹는 아이, 버릇없이 떼쓰는 아이, 텔레비전만 보는 아이, 식탐 많은 아이 등 찰리를 제외한 네 명의 꼬마가 윌리 웡카 씨의 장난스런 마법에 걸려 벌을 받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 동화가 어린이들의 필독서라는데, 이 대목 때문에 부모들이 앞 다투어 책을 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더욱더 초콜릿과 친해져 사달라고 조를 것이 뻔한 자녀들의 역습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 1순위 초콜릿을 더욱 맛있게 더욱 달콤하게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훌륭하게 그려냈는데, 어찌 초콜릿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어른인 나도 책을 읽다 말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평소 입에도 안대는 초콜릿 하나를 큼직한 놈으로다가 사왔는데 말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빼빼마른 찰리가 안쓰러운 웡카 사장이 초콜릿 강에서 진한 초콜릿 한 사발을 떠서 몸에 좋을 거라며 쭈욱 들이키라고 하는 장면이다. 중독성마저 있는 초콜릿이 졸지에 보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웡카 사장이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이가 썩을 거라는 말 한마디 해주었더라면 지금의 부모들이 훨씬 덜 시달렸을 텐데 아쉽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동화 속에 버젓이 드러난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조 할아버지가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한 대목. 윌리 웡카 사장의 놀라운 초콜릿 제조 솜씨를 부각하기 위해 선정된 우화는 ‘어리석은 인도 왕자’ 이야기다. 웡카 사장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으로 지은 궁전을 아까워하던 인도 왕자가 초콜릿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는 것. 하고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인도 왕자인가? 인도는 왕정국가도 아닌데 말이다. 바람둥이 찰스 황태자가 있는 자국 왕족을 거론하기 껄끄러운 일이라면, 이웃에 수두룩하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텐데..


동쪽으로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가 있고, 북쪽으로는 스웨덴, 노르웨이가 있고 남쪽으론 스페인이 있다. 같은 유럽이라 빗대기 뭐하면 멀리 동양에 일본이 있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인도인가. 영국인에게 인도는 여전히 자국의 시인 한 명보다도 못한 나라인가 보다.


인도왕자 이야기는 애교로 봐주기로 하자. 작품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등장하는 ‘움파룸파 사람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까.

직원을 가장한 산업 스파이가 진귀한 신제품의 기술을 자꾸 빼나가자 윌리 웡카 사장은 직원을 모두 해고한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시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외부인은 공장 출입금지다.


웡카 사장이 고용한 노동자는 움파룸파 부족 사람들이다. 열대 밀림에서 코알라 마냥 영양가 없는 유칼립투스 이파리를 뜯어 먹으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을 맛있는 카카오를 실컷 주기로 하고 데려왔다는 것. 그들은 키가 허리에도 못 미치게 작고 사슴가죽이나 나뭇잎으로 옷을 입기를 고집하며 초콜릿 강의 노를 젓거나 심부름을 하고 기계를 돌리고 심지어 신제품 개발할 때는 실험용으로 쓰인다. 그러나 그들은 웡카 사장이 보장하는 안정된 생활 속에서 달콤한 초콜릿을 보수로 받으며 대체로 만족하며 산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이들이 더 끔찍하게 나온다. 움파룸파 족은 수백 수천 명이 모두 똑같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혹은 남미 원주민을 연상케 하는 움파룸파 족에게 개성이나 인격이란 없는 것이다. 웡카 씨의 수족이 되어 마치 뇌가 없는 것처럼 기계처럼 움직이고, 실험도구로 쓰이며, 때로는 흥을 돋우는 예술단이 된다.


초콜릿은 치아건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세계평화도 위협하는 과자다. 초콜릿 원료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유럽에서 나오는 게 있는가. 유럽에서는 포장지만 뜯을 뿐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열매는 아프리카에서, 설탕의 재료인 사탕수수는 아시아와 남미에서 재배한다. 식민지로 부리던 시절엔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빼앗아 왔고, 현재는 아주 싼 가격에 사온다. 원주민들은 이 같은 환금작물을 심느라 정작 자신들이 먹고 살아야 할 곡식, 즉 식량을 재배할 여력이 없다.


선진국 국민의 기호에 따라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폭발적인 선진국민의 휴대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 콜탄은 휴대폰 배터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광물이다. 정치가 불안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콜탄 광산을 두고 벌어지는 군벌들 간의 총질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는가 하면,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 동화의 결말답게 해피앤딩이다. 웡카 씨는 초콜릿 공장의 후계자로 찰리를 점찍고, 어느 방향이든 이동이 자유로운 유리 엘리베이터에 가족을 모두 태워 공장으로 데려온다. 가족 모두가 경제적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판타지가 실현된다.


웡카 씨의 후계 작업 재미있다. 공장이 문을 닫아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움파룸파 족 을 위해서’도 있다. 그렇다면 웡카 사장은 움파룸파 족에게 공장을 물려줄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생판 모르는 낯선 꼬마보다 헌신적으로 회사를 살린 움파룸파 족이 심정적으로 더 가깝지 않은가. 그러나 서양인에게 유색인종은 무뇌적 존재일 뿐이다. 찰리의 초콜릿에서는 너무나 불건전한 제국주의 냄새가 난다.


어릴 적 한창 빠져 읽던 동화책 한 권이 있었다. 연녹색 눈동자 세라 크루가 나오는 <소공녀>. 세라 크루의 아버지 크루 대위는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고 죽어 어린 세라는 하루아침에 구박덩어리가 된다. 고난에 찬 일상을 잘 이겨나가다가 어느 날 공상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 밤에도 이 책을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라도 세라 크루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 어린 세라처럼 어렸던 나는 군인이 왜 광산업을 하는지 의문을 갖지 못했다.


지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는 아이들도 움파룸파 족의 존재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을 것이다. 연녹색 눈동자 소녀 세라의 환상 세계가 더 매력적인 것처럼, 마법으로 만든 진귀한 초콜릿에 더 정신이 빼앗겨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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