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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대통령이 아닌 사람.사상가가 아닌 사람.대학교수가 아닌 사람.유명하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에세이를 쓰는 일은 참 달가운 일이다.더 이상 책을 쓰고 내는 일이 '인세'를 위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자 하는 창구로서의 의미가 강해져, 상업성을 크게 갖지 못하는 책들도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는 것들이 썩 보기 좋다.명확하게 책의 제목과 책의 표지가 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나에게는 버거운 2018년이었다. 다사다난이라고 하기에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고 힘들었으며, 바쁘고 지치는 시간이었다.가해자 없는 사건 속에 난 피해자가 되었고 그걸 이겨내길 강요받았다. 시간이 지나 이겨냈다기보단 무뎌지고 지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나는 다시 욕심을 냈고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좋게 말하면, 내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고, 또 얼마만큼의 고통과 충격을 어느 정도의 기간을 소비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행복 회로의 결과물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표지는 나에게 달콤했다.흰 종이 위에 투박하게 그린 팬 그림, 몇몇의 채색. 햇볕이 들어올 것 같은 창가에서 서로를 향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두 명의 인물까지. 나의 지난 일 년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더 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폭풍 같은 일 년을 잔잔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이 책을 골랐고 그 시도는 적잖이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부분은 제본 부분에 있었다. 책 제본의 실과, 접착제(?)가 그대로 드러난 책의 모습은 하나의 책이라기 보다, 하나의 엽서들의 묶음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이 책의 감성을 잘 보여주는 출판사의 센스였지 않을까.이렇게 되면, 책이 굉장히 빠르게 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 책은 재질부터 내용과 그림까지 그 감성의 총체로서 함께 늙어가는 느낌이함께 상해 가는 느낌이 나름의 의미를 보여주는 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별것은 없다. 다만 특별하지 않지만 내 눈에 아름다운 것들. 넉넉하진 않지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들을 장마다 담았으니 이러한 삶을 계속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책을 그저 담담한 태도로 읽어달라고 하는 작가의 말
"다가온 시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어제의 삶에서 한 발 나아간 시간을 살고, 내 몫이었던 시간을 무엇으로든 기록하는 것. '기록'이란 시간을 거역하는 일. 그것만으로 우리는 비로소 시간이란 삶과 나란히 서서 당당하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우리의 시간을, 아름다운 생의 그림들로 채워가면서."기록이란 시간을 거역하는 일.그것이 사진이 되었든, 영상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기록하는 것은 시간을 거역하는 일.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끌어당겨 존속시키는 일.그래서 난 이 책을 기록하고이 책을 읽은 나를 기록한다.오늘의 나를, 미래에 존재하게 하고 싶다기 보다,오늘의 나를, 미래에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책을 읽다가 이내 이상한 점을 한가지 발견했다.글씨체와 화자가 계속 바뀌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이는 작가가 두 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키였다.보통 작가가 다르면, 목차마다 누가 해당 부분을 썼는지 쓰여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책이 탄생하는데이 책은 박조건형 작가님이 시작하고, 김비 작가님이 마무리를 지은 책이라는 것처럼박조건형 작가님이 쓴 부분과, 그 부분-상황-시점의 김비 작가님의 말이 함께 담겨있었다.박조건형 작가님은 바닥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나가는 느낌이었지만, 김비 작가님은 그런 박조건형 작가님을 바라보는 듯한 시점으로 쓰인 책이라 느꼈다. 김비 작가님이 얼마나 박조건형 작가님을 사랑하는지 글에서 풍겨져 나와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박조건형 작가님의 그림이 신기한 것.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A를 그리면, A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그림을 배운다.그렇기 때문에 그림이 추상화가 아니라면, 작가가 의도한 대로 대상을 독자가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그런데,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대놓고 삐뚤빼뚤 쓴 글씨로 각 대상들이 어떤 것인지 이름을 쓰기도 하고 설명을 쓰기도 했다.처음엔 참 충격적이었다. 그림을 이렇게 그려도 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그런데 이 작가님이 일상 일러스트레이터, 일상 그림 작가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었다.단지, 그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이 담겨있는 그릇이고, 스토리의 하나의 소재이기 때문에 어떤 그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나하나 설명해나간 점이 오히려 좋은 그림 방식이었다고 느껴졌다.
독자에게 좋은 그림과 잔잔한 인생사와 젊은 부부의 따듯함을 보여주고작가 스스로에게 하나의 좋은 일기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별것도 아닌데 참 예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