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4집 - H-Logic
이효리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솔직하게 말하자.
지금까지 이효리가 '가수'로 다가왔던 적은 <10 Minute>때가 유일했고,
이효리가 가장 화려하게 보였던 적은 <Hey Girl>을 부르던 그 무대였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Any Motion>도 나쁘지 않았고, <U-Go-Girl>도 괜찮았지만,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너무나도 극심한 이미지 소모탓에
그녀의 음악에서 '자부심'이랄지, '아이덴티티'랄지,
'매력'을 느끼기엔 어려웠다. 그렇게 '가수' 이효리는 내게 잊혀져 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앨범은 일종의 '반전'이다.
 
나는 솔직히 이효리의 이번 앨범이 이정도로 잘 빠질 줄 몰랐다.
정규 앨범의 텀으로만 치자면 2집에 이어 2년 만에 나왔던
3집 [It's Hyorish]보다 비교적 빠른 시일에 나왔기 때문에
퀄리티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고,
사실 2년만에 나온 3집도 밍숭맹숭했기에,
그리고 워낙에 활발한 연예 활동을 보여주었기에
음악에 신경 쓸 시간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앞서서
별 기대감 없이 들었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앨범이다. 
 
<I'm Back> <Love Sign>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이어지는
첫 세 곡의 파워풀함은 이전까지 이효리의 앨범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황금 라인이다.
쉴 새 없이 세게 때린 후 쉬어가는 타이밍에서도 발라드와 같은 진부한 작법으로
숨을 고르는 게 아니라 <Feel The Same>같은 앨범의 균형미를
전혀 떨어뜨리지 않는 '성의 있는' 곡으로 살짝 브레이크 타임을 건다.
<Get 2 Know> <Want Me Back> 등 여느 가수들의 '타이틀 곡' 감인 노래들이
앨범 전체를 수놓고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앨범으로서 <그네>라는 곡의 존재감에 대한 모호함과
자의적인 가사에서 오는 약간의 거부감, 혹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How Did We Get>에서 느껴지는 작위적 팝 넘버의 의무적으로 느껴지는 수록 등
단점이 아에 없는 앨범은 아니지만 앨범을 포장하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은
이런 몇몇 단점들을 덮기엔 충분하다. 
  


단언하건데, 이 앨범은 가수 이효리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아가서 한국 주류 음악 씬에서 댄스 가수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다고 보여진다.
송라이팅의 결여가 댄스 가수가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이라면,
좋은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준다면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한번에
뒤집을 수 있는 게 댄스 가수가 가지는 '유리한 점'이다.
 
독창성이 아쉽다, 누구누구가 떠오른다 하기 전에
난 이 정도로 '누군가가' 떠오를 정도로 하이 퀄리티에 근접한 곡들이
앨범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앨범이 나왔다는 것, 그 자체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
게다가 곡들을 꼼꼼히 뜯어봐도 단순히 모방, 담습으로 치부해버리기엔
그 됨됨이가 꽤나 세련됐고 수준 높지 않나. 굳이 탓을 하려면 모방, 담습적
음악조차 지금껏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낮은 수준의 대중음악계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이효리는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음'에도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비로소 이 앨범에서 깨달은 듯 하다.
갈수록 절망적인 가요계에서 이렇게 '성의 있는' 앨범은 얼마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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