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은 - 6집 공무도하가 [리마스터링 재발매]
이상은 노래 / 블루보이 / 2008년 12월
평점 :
혁명적인 앨범은 분명히 존재한다.
'혁명'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어떤 앨범이 혁명적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혁명적 앨범'을 내 기준에서 판단해 본다면
나는 "음악을 듣는 재미를 깨닫게 해준 앨범"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지극히 개인적 기준을 뛰어넘어서
음악의 잣대에 대한 모든 가치판단을 리셋하게 해주는
그야말로 음악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재정의하게 해주는
앨범들을 정말 드물게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만날 때가 있는데
내게 이 앨범, 이상은의 6번째 앨범 [공무도하가]가 바로 그 앨범 중 하나다.
이상은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았던 건 누구나 그렇듯이 <담다디>를 통해서였다.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라면 <담다디>의 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노래가 전해주는 강렬한 인상은 코찔찔이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에게도
뇌리에 박힐 정도로 인상 깊었다. (훅 뿐 아니라 훅까지 진행되는 멜로디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상은이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알았던 2000년 발매된 리체의 베스트 앨범을 통해서였다.
글쎄.. <담다디>를 부른 롱다리 이상은의 앨범을 왜 사려고 마음먹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음악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박준흠의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라는 책에 수록된
이상은의 인터뷰가 너무나도 인상깊어서였던 것 같다. 박준흠과의 그 인터뷰에서 나는
<담다디>의 이상은이 아니라 '아티스트' 이상은을 어렴풋이 보았다.
사실 2000년 발매된 리체의 베스트 앨범은 '아티스트 이상은'의
면모를 보여주기엔 약간은 부족한 앨범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이 앨범 [공무도하가]의
<공무도하가>가 수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7집 [외롭고 웃긴 가게]의 전 곡이 저작권 문제로 인해
수록되지 못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토이의 베스트 앨범 같이 반쪽짜리 베스트 앨범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너무 오래>와 <벽>같은 곡들은
이상은을 <담다디>의 아우라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정도로 훌륭한 음악들이었다.
그렇게 아티스트 이상은과 조우했고, 이후 테잎으로 들었던 [공무도하가]는
내 음악 인생의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도 아직까지 의문이 드는 건 어떻게 이 앨범같은
'기적'이 우리나라에 갑자기 툭 튀어나왔냐는 것이다.
물론 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저변이 넓었고 시대적 상황이 '아티스트'들을 인정해주었던 조건이었다 할 지라도
이런 앨범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무도하가>를 조악한 테잎 음잘로 처음 들었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하나의 혁명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공무도하가'를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하나의 음악적 이미지로 형상화 할 수 있었을까.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대도하"라고 읊조리는 이상은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여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있던 수많은 여성 뮤지션들의
일체의 가치판단을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질 정도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처음 음악을 듣고 받았던 충격은 반복해서 듣다보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무도하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서 시도하고 있는 라운지, 일렉트로니카 음악들은
결코 <공무도하가>의 동양적 선율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다. 명반의 가치는......
세상에 명곡들은 많이 나올지 모르지만 명반들은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하나의 싱글로 봤을 때 훌륭했던 곡들이 앨범과 함께 섞여있을 때
그 매력이 감소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 어떤 경험적 요인을 뛰어 넘는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몽롱한 상태에 빠지곤 한다.
<새>에서 보여주는 감수성과 <보헤미안>에서 보여주는 울림,
<September Rain Song> 등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아이덴티티.
이건 대중음악계의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는 90년대 중에서도 가히 어떤 '경지'의 수준이다.
너무 과장하는 것 같다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이러한 모든 일반화를 한번에 날릴 수 있는 게 바로 이 앨범이다.
한국 대중음악계가 지금까지 하찮게 느껴지는가.
역시 우리나라 음악은 촌스럽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주저없이 이 앨범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껏 이런 '포스'를 보여준 앨범은 만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분명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정점'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