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202
너대니얼 호손 지음, 곽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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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무슨 계기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래 남자 아이들의 짓궂은 놀이는 같은 학교의 한 여자 아이를 향해 있었다. 어디서부터 그런 이야기가 출발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그리 예쁠 것도, 혹은 그리 미울 것도 없던 평범한 여자 아이를 남자 아이들은 극도로 혐오했다. 그 혐오는 아무런 이유나 근거도 없어서, ‘아무개를 보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그 여자 아이 옆을 지나치며, 저들끼리의 눈짓을 주고 받기 일쑤였고, 어쩌다 그 여자 아이와 마주친 남자 아이들은 교실로 뛰어들어와 자신이 오늘 얼마나 재수없는 일을 겪었는지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러니 말이라도 섞은 날은 오죽했겠는가? 그 여자 아이의 아무것도 아닌 행동은 일종의 해프닝이 되어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그 여자 아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아이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던 나 같은 아이들도 그저 즐거운 놀이로써 혐오 심리에 동조하곤 했다. 그런 얼토당토 않은 행동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무려 1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아이에게 몹시 미안하다. 어느 순간 그 여자 아이도 남자 아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유별나다는 것을 눈치챘고, 친절한(?) 누군가로부터 자초지종도 들었으리라. 그리고 터무니없는 그 모두를 부정하기 위해 더욱 위협적으로 남자 아이들에게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남자 아이들은 그 모든 저항을 재수없는 여자애재수없는 행동으로 희석시켰다. 하여 여자 아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재수없다는 낙인을 안고 1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여러 번 교실에서 울었던 것 같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얼마나 많이 절망했을까를 생각하니, 못내 미안하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했다.

가슴에 큼지막한 주홍 글자를 안고 평생 살아야 했던 헤스터 프린을 들여다 보며, 잊고 있었던 옛 일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낙인 찍고 그 틀 안에 가두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또 그렇게 평가 당하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그러나 그녀는 엄격한 청교도의 윤리가 찍어 놓은 낙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에는 간통(Adultery)을 상징하는 ‘A’가 진한 주홍 색으로 새겨져 있지만, 그녀는 간통녀의 삶에 저항했다. 인생의 풍랑 속에 난파 당한 사람에게 그녀는 어김없이 긍휼의 손을 펼쳤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주홍 글씨가 간통이 아닌 남을 도울 줄 아는 능력(able)’을 상징하거나 천사(angel)’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명의 삶으로 주홍 글씨를 짊어지고 살았으며, 그것은 자신의 죄를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들여다 보게 된 덕분이었다. 자신이 지고 가는 인생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상처가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한편, 헤스터가 간통의 죄를 지고 죄값을 치르던 그 순간에 옆 자리를 지켜야 했던 그의 정부 딤스데일 목사는 심약한 마음으로 가장한 자기애로 인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는 남은 평생을 자신의 죄로 인해 괴로워했고, 그의 심신은 더욱 메말라갔다. 죄책감은 그를 괴롭혔으며, 마지막 순간 그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드러내 보인 그의 가슴은 헤스터와 같은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스스로를 괴롭히며 상처를 낸 흔적일까? 아니면 내면의 고통이 그의 표면으로 드러나도록 그를 괴롭힌 걸까? 아무튼 제 때 드러내고 회개하지 않은 그의 고통은 헤스터의 것에 못지 않았다. 그 역시도 주홍 글씨를 안고 살았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 노인이다.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남은 평생을 원수 갚은 일에 빠져 산다. 그의 노년은 악에 사로잡힌 세월로 인해 추하디 추하다. 죄의 압박과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갈등하던 딤스데일 목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많은 사람 앞에서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칠링워스 노인은 죽어서까지도 복수의 화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용서를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큰 불행 속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연약한 인간은 저마다의 주홍 글씨를 가슴에 품고 산다. 딤스데일 목사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간통 A자를 가슴에 새겼다. 칠링워스 노인은 분노’(anger) A, 반면에 헤스터는 간통 A라는 낙인을 극복하여 능력의 A, 천사의 A라 여기는 삶을 살았다.

저자는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 글씨는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결함이 없는 완전무결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낙인에 순응하여 하찮은 삶에 매몰되어 살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낙인에 저항하고 극복하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결국 우리의 가슴에 새겨질 주홍 글씨는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느냐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니 마땅한 방향을 향해 힘껏 발을 내딛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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