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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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많은경우, 소설의 작가는 굳이 머리말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소설가는 소설로서 말할 뿐,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저들은 머리말에 냉정했고 그것이 저들의 멋이고 맛이라고 생각했다. 김훈은 그 많은 경우를 비껴간다. 서문을 덧붙이고, 굳이 하는 말이라 부른다.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소설의 끝을 찍고, 무심하게 읽었던 그의 하고자 하는 말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 본다. 그는 그때의 고통을, 그때의 절망을, 그리고 희망을 기억하고자 한다. 초판일을 보니 춘사월이다. 그러니 겨우내 말()과 싸웠으리라. 치욕을 견디고 엄동설한을 걸어가야 했던 힘 없는 자들의 눈물을 그도 역시 말로 잡아 꾹꾹 눌러 써야 했으리라. 하여 봄마다 자전거로 남한산성을 다닌 그의 허송세월은 헛되지 않다.

남한산성. 산성의 성질 상 그것은 지키기 위함이다. 1 3,000여 병력과 1 4,000여 석의 양곡이 있던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소녀는 아비의 흔적 조차 발견할 수 없고, 젖먹이는 얼음판에 내동댕이쳐지며, 혹한으로 손과 발의 마디 마디가 떨어져 나가는 그곳에서, 일상의 평범을 지켜갈 수 없고, 내일의 안녕을 말할 수 없으며, 한 끼 밥을 약속할 수 없는 그곳에서 멋들어지게 굽이치는 남한산성은 부끄럽다. 허물어져가는 명()에 기대고, 시대를 담아낼 수 없는 성리학으로 목숨과 맞바꾼 저들의 행보가 헛헛하여 한참을 웃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킬 수 없기에, 힘 없는 것들은 침묵한다. 소리를 잃어가는 도성은 아득하다. 밖에서 싸워야 할 힘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말로써 말을 겨루는 동안, 힘 없는 것들은 소리를 잃어갔고, 점차 말라갔다. 말 울음소리가 그치고 소 울음소리가 멈추자, 개 짖는 소리도 사라졌다. 닭 우는 소리가 멈춘 그날, 수라상에 올려진 닭다리는 어떤 맛이었을까? 적막이 몰고 온 죽음은 그렇게 조용히 산성에 내려 앉았다.

인조의 이름은 왜 인조(仁祖)인가? 당초 그의 묘호는 열조(烈祖)였으나 인조(仁祖)로 고쳤다. 신하로서 임금을 내쫓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킬 수 없었으며, 아버지로서 아들과 며느리를 죽이고,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죽인 인물에게 쓴 어질 인()자가 부끄럽다. 그는 삼경에 중곤을 맞은 수어사를 걱정하고, 사경에 적병을 지나 성에 들어온 계집아이를 생각하여 곶감을 내리는 어진 임금이고 싶었겠으나, 그럴 능력이 없다.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는 지도자의 무능이 그를 어질지 못하게 했다. 삼전도로 가는 그의 걸음에 수치를 느낄지언정,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성벽은 역사의 슬픔을 끌어안고 그곳에 서 있다. 지키고자 하는 자들은 여전히 힘써 지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정말 지킬만한 것을 지키고 있는지 물어본다. 짓고 허물고를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헛헛하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키지 못함으로 침묵하는 것들은 침묵하기에 지킬 수 없다. 그러니 걸음을 멈추고 희망을 걸어 자세히 들여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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