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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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군가를 위한 썩는 밀알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민음사, 2007)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의 구슬에 대한 설명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러하다. 나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상호관계 속에서 그 결국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0세기 문학, 철학, 심리학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는 호들갑스러운 찬사가 과연 그러한지 의구심을 갖고 들여다 본 그의 소설은 사람 사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축소판이다. 이들은 유혹하고 사랑하며 증오하고 분노한다. 비웃고 떠들며 주먹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사랑의 속삭임을 건넨다. 꼬리가 꼬리를 물 듯, 얽히고 설킨 관계 속을 따라가다 보니,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혹은 정의 내리지 못했던 이들의 속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겹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내게 친절하지 않다. 하나같이 수다스러운 등장인물들 때문에…. 더욱이 말문이 터졌다 하면 숨도 안 쉬고 몇 장씩 넘어가는 독백 같은 대화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쫓아가기에도 숨찼다. 워낙 유명한 소설인지라 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던데, 도대체 이런 엄청난 대사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싶은 생각에, - 보지는 못했지만 - 배우들도 내 마음 같지 않았을까? 원래 사람 만나는 일에 피로함을 쉽게 느끼는 성정인지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임이 끝나길 기다리는 내 본심을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저자는 성경에서 가져온 한 구절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방인 몇 명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했던 말씀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소설 전체의 내용을 갈무리하는 이 말씀은 결국 죽어야 살고 살고자 하면 결국 아무런 열매도 없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죽음이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이 모순은 머리 속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몸으로 살아내기란 여간 내기가 아니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보편적인 방식은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싸우며, 성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저 죽으려고만 한다면 결코 얻을 것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모두에게는 어리석을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관계는 하나같이 불편하다. 돈으로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이들의 관계가 슬프고, 치정극으로 치닫는 이들의 모습이 불행하다. 서로를 모욕하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휘둘러대는 돌무더기로 인해 아프다. 폭력 앞에 아이가 학살을 당하고, 영웅이 되어야 마땅한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된다. 모두에게 추앙 받던 이는 이내 의심과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썩는 밀알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흥미롭게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알료샤를 꼽는다. 책 서두에서 그는 알료사를 나의 주인공이라 부르며, 그의 주인공됨을 끝까지 신신당부한다. 주인공 같지 않아 보이겠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실제로 카라마조프 가의 셋째 아들인 알료샤는 주인공답지 않다. 큰형 드미트리처럼 열정적이지도 못하고, 둘째 이반처럼 아버지를 살해할 만큼 강렬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 비하면 알료샤는 자기 주장도 없이 그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동조하는 나약한 인물처럼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알료샤를 유로지비라고 부른다. 유로지비(iuroduvyi)를 굳이 번역하면, ‘성스러운 바보(holy fool)’ 쯤 되겠다. 이들은 자기 이득을 좇지 않고 무기력할 정도로 자신을 내팽개치는 존재. 때문에 실제 생활에서 전혀 욕심이 없고 의식주 문제마저도 무심한 존재이다. 그러니 자신의 궁핍을 해결하고자 남을 해코지하는 일도 없다. 욕심이 없어 마음이 가난하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질서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유로지비의 삶을 사는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썩는 밀알’, 결국 세상 법칙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알료샤는 주인공 같지 않지만, 결국 가장 주인공답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다. 영향을 주고 받으며 괴로워하고 기뻐한다. 이반 때문에 스메르자코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동력을 얻는다. 반대로 이반은 스메르자코프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는 이성의 초라함을 깨닫는다. 드미트리는 처음에는 그루센카의 성적 매력에 매료되었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순수함에 끌려 참된 사랑을 깨닫는다. 결국 이것이 동력이 되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 죄의 처벌을 달게 받는다. 계산적이고 냉소적인 그루센카는 어느 순간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순정파가 된다. 그런 그루센카로 인해 실의에 빠진 알료샤가 새 힘을 얻기도 한다. 일생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한 순간 마주한 유로지비의 경험이 이들을 변화시킨다.

복잡하게 얽힌 인생사. 그 속에서 나는 누군가에서 어떤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눈물과 분노가 될 수도, 혹은 소망과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썩는 밀알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인공답지 않은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그렇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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