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크고 거칠며 섬뜩한 이야기

유발 노아 하라리, 『 사피엔스 』(김영사, 2015)

 

크고 선명한 손바닥 지문이 호기롭다. 책 표지의 손바닥 지문은 가는 곳마다 정복하고 굴복시킨 정복자의 것과 닮아 있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제법 잘 표현한 듯 하다. 그러나 선명한 족적 뒤에는 더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법. 저자는 인류가 지나간 자리마다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는지도 잊지 않는다. 호기로운 손바닥 지문은 연쇄살인범의 것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의 역사교수로서 거시적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연구를 계속해왔다. 역사학자이지만 그의 책은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 현실을 설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 큰 그림을 그린다. 무려 7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어떻게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지, 긴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니 수명 연장의 꿈을 품어야 겨우 100년을 내다보는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가히 짐작도 되지 않는 장구한 역사이다.

책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지를 풀어 설명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던 동물이었던,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 밖에 위치하지 않던 호모 사피엔스는 6종의 인간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세 가지 혁명, 곧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그리고 500년 전에 시작된 과학혁명을 통해 역사상 가장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로 성장해왔다.

이 과정 속에서 인류는 대규모 협력망을 이루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상상의 질서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내서 협력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틈을 메웠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상상의 질서란, 판타지나 신화 같은 몽상적인 이야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의 질서는 사회를 지탱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제도와 같은 것들인데,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돈, 제국, 종교를 꼽는다.

돈은 종교, 사상, 인종을 뛰어넘어 통합된 세계를 이루는 기초를 닦았다. 돈은 역사상 극도의 관용과 융통성을 발휘하여, 기꺼이 협력을 불러오는 신뢰의 산물이다.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을 협업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이다.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 유신론적 종교의 쇠퇴와 함께 인본주의적 종교 즉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역시 종교로 분류한다. 이들도 종교가 가진 속성, 즉 초자연적인 질서와 불변의 법칙을 믿으며 심지어 예언서나 경전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은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연대를 통해 본격화되었다. 과학혁명의 핵심은 무지의 인정이다. 자연 현상을 모두 신의 섭리로 풀어 설명하던 과거에는 굳이 더 알고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근대에 들어 아직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문제를 풀어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는 중이다. ‘지적 설계란 창조론을 설명하려는 기독교의 신조어이지만, 이미 인류는 생명을 만들어내고, 조작하며, 변형하는 지적 설계를 진행 중에 있다.

인류의 시작부터 아직 오지 않은 종말의 모습까지, <사피엔스>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굵은 필체로 그려냈다. 이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 생물학, 고고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을 융합하여 종횡무진 역사의 무대를 바쁘게 누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라는 표현, ‘설명할 수 없는이란 표현이 난무하고, 그럴 때마다 눈에 거슬린다. 오랜 역사를 입증하기엔 너무 빈약한 증거들을 재료로 사상누각을 세워 놓은 것이 위태롭고, 빈 공간을 상상이란 진흙으로 채웠는데, 이게 언제 허물어질지 불안하다. 또한 우연과 설명할 수 없는 상상을 학문의 영역에 이토록 쉽게 허용해도 되는 건지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더욱이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종교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동의하기 힘든 불편함이 역력하다. 이런 기분을 전에 다른 작가의 책에서도 느꼈는데, 비전문가의 싸잡은 평가를 대하는 전문가의 생뚱맞은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그리고 다시 제설(諸說)혼합주의로의 종교 발달 이해는 종교에 대한 너무 쉬운 설명이다. 거대한 역사 이야기를 거칠게 표현할 때 발생하는 생략과 덤핑과 축약으로 인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살짝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이 끌어다 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에게 책에서 평가하고 있는 자기 분야에 대한 설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야 별 서평을 모아 보는 것. 흥미로울 것 같다.

긴 역사를 관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이 인류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 말한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1945년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정확히 똑같았는데,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 전통, 문화, 비슷한 기술을 가졌으나 그 결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었다. 인류의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행복한 유토피아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지옥도가 펼쳐질 것인가? 사피엔스는 생태계를 멸종시킨 연쇄살인범에서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음의 수렁에 빠뜨릴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인류의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행복한 유토피아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지옥도가 펼쳐질 것인가? 사피엔스는 생태계를 멸종시킨 연쇄살인범에서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음의 수렁에 빠뜨릴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