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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설교 룻기 ㅣ 읽는 설교 시리즈
조영민 지음 / 죠이선교회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내
방은 부엌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살림이 많은 집이었다면 창고로 썼을 법한 작은 방에는 책상과 서랍장이
들어가고, 한 사람이 누우면 딱 좋은 공간이 남았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어릴 적 그 방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아침마다 들려오던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 때문이다. ‘칙칙폭폭’ 요란한 압력밥솥 소리와 ‘또각또각’ 야채 다듬는 도마 소리에 눈을 떴고, 방문을 열면 요리에 열중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어김없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막 지은 밥 냄새와 구수한 국 냄새가 내 속이 비어 있음을 일깨웠고, 그렇게 어릴 적 아침은
풍요로웠다. 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 같은 소리와 똑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내 어릴 적 아침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머니의 곡진한 사랑이 나는 아직도 그립다.
<읽는 설교 룻기>를 대하며 어머니의 밥 짓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마라’(쓴 물)라 부르며 애통해하는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채워가시는가? 나오미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수 천 년을 뛰어넘어 이 시대의 아픔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헤세드, 무한한 긍휼로 베풀어지는 사랑. 이방 며느리 룻의 헤세드가 보아스의 헤세드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헤세드로 변주되는 이야기에서 교회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저자의 헤세드도 읽힌다. 생명의 양식을 전하기
위해 말씀과 씨름했을 저자의 모습이 어머니의 그것과 닮아있다.
저자의 설교는 화려하지 않으며 눈을 번쩍 뜨이게
할만한 성공의 약속도 없다. 그러나 진실하다. 희망 고문과
긍정적 사고로 허물어진 공허한 가슴을 정직한 복음으로 채워간다. 세상이 부러워할만한 약속대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저자의 설교는 집 밥과 같다. 물리는
법은 없으되 건강은 확실히 챙길 수 있겠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시선을 끌 수 없는 세상에서, 정도(正道)를 따라가고자
하는 목회자의 우직함이 읽혀서 좋다. <읽는 설교 룻기>가
인상 깊은 이유이다. 지역 교회를 말씀으로 성실히 섬겨가는 목회자의 발견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