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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 - 그리스도인을 위한 길 위의 신학
요르그 리거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3월
평점 :
지난 3월, 65세 이상 되신 교우들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효도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같으면 5월의 한 날을 정해 당일치기 여행을 했을 터인데, 여러 사정을 무릅쓰고
무리를 한 것은 곧 구순(九旬)을 앞두신 한 권사님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권사님은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고단한
일생을 사시느라 이렇다 할 여행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시다. 거동이 점점 힘들어지시는 권사님께
더 늦기 전에 좋은 여행 한 번 계획해드리자는 선의가 모아졌고, 경비 절감을 위해 성수기가 시작되기
직전으로 일정을 잡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쉰다는 전제 하에 최소한의 경비를 산출하고, 또 그것을 반값으로 낮추기 위한 후원금을 모아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은혜의 여행이 꾸려졌다.
그렇게 급조된
13명의 제주도 원정대는 2대의 휠체어를 싣고 제주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특한 생각을 축복하시듯 연일 좋은 날씨를 내려주셨고, 세월의
깊이만큼 주름진 얼굴엔 기분 좋은 봄바람이 스쳐 연일 어린아이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연세를 생각해서
최대한 일정을 가볍게 잡으면서도 내심 걱정했는데, 그 모든 것이 기우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시는지, 세상의 모든 봄기운을 물려 받은 듯, 잘 드시고 잘 쉬시고 어느 것 하나 놓칠세라 두 눈 가득 담아두시는 모습을 보며, 그 안에는 여전히 호기심 많은 소녀가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지나간 효도여행에 대해 이토록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기독교 전통은 여행과 깊은 연관이 있어서 여행 없이는 그 진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말처럼 구약과 신약 성경은 온통 여행 이야기이다.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도(道)를 좇는 사람들로서 인생을 바꾸는 여정에 합류한 것이다(64).” 특별히
저자는 이 시대의 여행 형태 중 세 가지, 즉 방랑과 이주와 순례에 주목한다. 이 모두는 권력과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리이며, 때문에 여행자는 체제에
순응적일 수 없다. 길 위에서 경험하는 여행은 힘과 돈으로 통제하려는 제국주의에 대한 신학적 저항의식을
고양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의 관광이나 선교
여행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시야가 넓어지고 삶이 변화되길 기대하지만, 정작 변화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만 간다(27). 관광산업은
여행의 당위성을 한낱 유흥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여행의 미덕을 환원시켜줄 대안을 찾자고
말한다. 그가 고대하는 것은 정적인 기독교에서 동적인 기독교로, 순응하는
기독교가 아닌 저항하는 기독교로의 회복이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해방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그의 이력을 볼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성경은 길 위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인가? 정말 그렇다.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체제를 뛰어넘는 자유와 저항정신을 고양시키는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주장에 동의만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는, 여행이라는
담론 자체가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물든 여행의 변질과 그것에 대한 우려는 깊이 공감하지만, 여행의 희로애락을 저항정신 하나에 담아내기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단적인
예로 여행을 대하는 사람의 감정은 저항정신 이전에 흥분이요 설렘이다. 때문에 여행 이야기 자체인 성경에는
그토록 많은 시편들과 자연만물에 대한 경이로 가득한 것이 아닐까? 때문에 기분전환 용으로 전락한 관광을
우려하면서도, 관광 또한 여행의 한 항목이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를 격려한다. 주류 신학이 발견하지 못한 여행 담론을 신학적으로 좀 더 풍성히 발전시켜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여행의 저항정신뿐만 아니라 여행이 간직한 오감을 고스란히 드러내주길 바란다.
그래서 새로운 성경 이해로 이끌어 주면 좋겠다. 저항정신만으로 여행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꼬리로 몸통을 흔들 듯, 부자연스러움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성학자 리차드 포스터는 기쁨에 대해 말하길, 다른 모든 것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과 같다고 했다. 의미와
목적도 중요하지만, 기쁨이 있어야 사람은 끝까지 갈 수 있다. 마치
마블링이 잘 된 고기가 부드럽게 먹히는 것처럼, 살코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제주도 효도여행을 하는 동안 아침마다 경건회로 하루를 열고, 수요일이
껴 있어서 자체적으로 수요예배를 드렸다.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내내 천국 소망이 가득했다. ‘잠깐 맛보는 여행도 이렇게 경이로운데, 천국에서 마주할 새 기쁨은
얼마나 충만할까?’ 여행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든 마음을
몰아내버렸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현실과 싸워야 할 이유와 새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기쁨이었다.